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하지 못하고 그 장소에 간 것이 잘못일까,
MT가서 선배가, 동료가 권하는 술을 거부하지 않은 사람이 잘못일까.

교수의 원치않는 스킨십이나 성적농담에 강력하게 거부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학생이 잘못일까. 

그리고 또 성희롱,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가만히 참고 있었어야 하는데 신고한 사람이 잘못한 것일까.

 

  대중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또다시 배우게 된다.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침묵해야 한다고...

  왜냐하면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비난하고, 힘들게 용기내서 신고를 하면 너무 예민하게 대응한다고 또 비난하고, 그러는 동안 가해자는 처벌을 받지 않거나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쉽게 잊어버리니까.

  그러면서 가해자에게는 참 관대하다. 성폭력을 해도 ‘합의를 했다고’, ‘초범이어서’, ‘진지한 반성을 하고 있다고’, ‘우발적으로 한 일이라고’, ‘공무원이어서’, ‘서로 사랑한 사이였다고’, ‘의사여서’ 등 범죄를 저질러도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거나 감형을 하는 등 가해자의 입장과 상황을 참으로 많이 고려한다. 어찌 가해자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이렇게 너그럽고 공감을 잘해주는지 궁금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인식이 특정인 몇몇의 인식이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폭력 피해자의 대부분이 약자임을 알고 이를 악용했음에도 가해자를 옹호하는 분위기를 보여준다면 우리사회는 피해자에게 또다시 2차 가해를 하는 셈이다.

  성폭력은 힘(power)의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범죄행위다. 성희롱이나 성폭력 판단은 가해자의 입장이 아닌 피해 발생 시 상황적 맥락(context)과 피해자의 감정이나 생각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약자에 대한 사회적 억압요인과 불평등이 존재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는 문화’가 과연 피해자 보호의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가해자가 직장이나 학교, 가족 등 지인들에게 겪을 수치심을 염려하고, 가해자의 앞날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면서, 왜 그 반대편에서 고통과 불안, 공포 속에 살고 있는 피해자의 현실과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것인지....

  정말 우리 스스로 ‘나는 직접적인 가해를 한 적이 없으니 성폭력 발생과는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피해자가 겪은 성폭력 범죄에 침묵하고, 방관, 무관심하는 동안 누군가는 가해를 계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이 성폭력 예방을 위해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성폭력을 피해자 개인의 문제로 만들지 말자!!

  피해자가 된 그들과 가족은 아마도 ‘그 날’이 있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다.  ‘그 일’이 없었다면, 그들은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 것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피해자와 가족에게’ 향한 불편한 시선과 비난을 거두고 가해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성폭력은 우리의 문제임을 인식하자. 성폭력은 무관심과 침묵, 차별과 불평등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이니까.

 

 

 

이현혜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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