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전시하는 언론·사회 분위기가 원인
법으로 제한하는 것은 어려워
인식 바뀌는 것만이 해결책

 

▲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지난 5월, 신안의 한 섬에서 한 교사가 마을 주민들에게 성폭행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그만 섬마을에서 일어난 범죄에 전국의 관심이 쏠렸다. 자연스레 언론도 이 사건에 집중했지만 그 안에 피해자의 인권은 없었다. 선정적으로 재연 영상을 만들거나, ‘술 거절 못했던 이유는?’과 같은 기사 제목으로 책임을 피해자에게 넘기기도 했다.

  2012년 나주에서 초등생을 성폭행했던 고종석 사건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와 한국기자협회가 만든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을 비롯해 여러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언론의 2차 가해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도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살아가고 있다.

 

자극을 좇는 언론환경과 남성 중심적 사고
  성폭력 사건에서의 2차 피해는 독자의 관심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언론 환경에서 비롯된다. 지금의 언론은 ‘성폭력 재발 방지’라는 성범죄 보도 목적에서 벗어나 단순히 조회 수를 늘리고 대중의 관심을 받으려 성범죄 보도를 유사포르노로 재생산하고 있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목 하에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이 희생당하는 것이다. 윤태진(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국민의 알권리는 일부 사람의 저속한 호기심을 채워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현재 국민의 알권리는 기자의 알권리, 기자가 알릴 권리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의 책임 중 일부를 피해자에게 돌리는 관습도 2차 피해를 낳는 원인이다. 성폭력 범죄를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지 않고 피해자가 범행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식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현재 언론은 아동이 성폭행을 당했을 때보다 성인 여성이 성폭행을 당했을 때 훨씬 폭력적으로 접근한다”며 “인권감수성이 없는, 성인이니까 괜찮다는 식의 보도행태는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 사회에 남아있는 남성 중심적 분위기도 성폭력 피해자에 2차 피해를 주고 있다. 언론은 성범죄 보도뿐만 아니라 일반범죄 보도에서도 ‘XX녀’ 등의 표현을 통해 피해자가 여성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조재연 인권정책국장은 “피해 여성을 전시하고 비하하는 식으로 사건을 구성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말했다.

 

지켜지지 않는 성범죄 보도 준칙
  2012년 나주 고종석 사건 이후 언론계는 성범죄 보도 준칙을 마련하는 등 자정의 노력을 했으나 신안 섬마을 사건을 통해 변한 것이 없음이 드러났다. 고종석 사건 당시 언론은 피해자의 집 위치와 외관을 공개했고 집 내부 촬영 사진과 피해자의 상흔을 들춰내 찍은 사진을 보도했다.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피해자 아버지의 월수입을 공개하기도 했다. 과도한 취재로 피해자와 가족의 신원이 노출되고 심각한 2차 피해를 겪자 그 해 12월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이 만들어졌고 2014년에는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가 ‘성폭력 사건 보도 수첩’을 만들었다.
하지만 각종 성범죄 보도 준칙이 언론의 2차 가해를 막지 못했다. 신안 섬마을 사건 당시 언론은 사건과 관련 없는 피해자의 평소 행실에 주목했고 종편에서는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기에 급급했다. 채널A <종합뉴스>에서는 ‘여자가 꼬리치면 안 넘어올 남자가 어딨어’라는 주민의 발언을 그대로 내보냈고 헤럴드경제지는 지나치게 선정적인 제목의 기사를 게재해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조재연 인권정책국장은 “보도 준칙을 지키려는 언론사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며 “보도 준칙을 제정하는 등 2차 피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적인 노력이 있지만, 아직도 성범죄에 신중하게 접근해 다루기보다 하나의 상품으로 소비하기 급급해 이 문제가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이 언론사 최초로 2012년에 자체적인 성범죄 보도 준칙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은 긍정적이다. 경향신문은 자신들이 나주 고종석 사건의 피해자와 가족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와 피해자의 일기장을 보도해 2차 피해를 끼쳤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긴급 편집제작평의회를 열어 ‘경향신문 성범죄 보도 준칙’을 제정했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외부의 보도 기준에 추가된 것은 별로 없지만 만드는 과정 속에서 기자들이 준칙의 함의를 공부하고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법적 규제는 해결책이 아니다
  현재 성폭력 2차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는 법률은 없다. 피해자가 구제받는 방법은 직접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국민생각 김종호 변호사는 “경험상 피해자가 직접 자신의 피해를 주장하지 않는 이상 누군가 그들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며 “피해자의 적극적인 문제제기 없이는 언론사나 기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 자체에 대응하기도 힘겹기에 자신이 2차 피해를 받았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조재연 인권정책국장은 “2차 피해가 원피해보다 더 클 수도 있다”며 “2차 피해는 부차적인 문제가 아니라 성폭력의 핵심적인 피해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계 자체에서도 징계를 할 수 있으나 이는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론중재위원회와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개인적 법익을 침해한 보도를 자체 심의해 서면으로 시정‧권고하는 등의 조치를 한다. 김명서 한국시민윤리위원회 심의실장은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조치는 자율적 심의기구이기에 법적 구속력은 없는 권고적 조치”라며 “대부분 주의, 경고, 공개경고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론의 2차 가해를 법으로 규제하기는 어렵다. 그 법이 2차 가해를 잠시 해결할 수는 있지만, 훗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윤태진 교수는 “아무리 2차 가해를 하는 기자가 있더라도 법적인 처벌을 하는 것은 반대”라며 “보도 이후에라도 법적 처벌을 할 수 있는 조항을 만들면 그것이 어떤 식으로 부메랑이 돼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지 모른다”고 밝혔다.

  결국 교과서적인 해결책이지만 언론의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한 방법은 언론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고 독자는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를 소비하지 않는 것이다. 김언경 사무처장은 “2차 피해 문제를 공론화해 성폭력 보도가 범죄 예방이라는 목적을 다 하는가, 피해자를 보호하는가에 대한 사회적인 합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태진 교수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론이 변화해야 하고 사람들이 성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인식과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이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 할 수 있는 최소한은 반강제적으로라도 기자들에게 실질적인 교육과 지속적인 재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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