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이 각양각색으로 활용되고 있다. 곤충은 약재로 오랫동안 사용돼 왔고, 누에 등에서 추출된 실은 옷감의 재료로 이용됐다. 최근 곤충의 산업성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화장품엔 애기뿔소똥구리에 있는 항균펩타이드 성분이 들어가고, 인공각막은 인체에 무해한 누에고치로 만들어졌다. 이처럼 미용과 질병치료를 위해 곤충이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 누에 실크는 우리 몸에서 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아 의료용으로 쓰임이 증가하고 있다. 사진제공 | 농촌진흥청
 
곤충의 방어막인 항균펩타이드
곤충의 방어 기능은 크게 두 개로 나뉜다. 첫 번째는 곤충의 외피를 통해 물리적인 외부 공격을 막는 것이고, 두 번째는 몸 안으로 들어온 균을 잡는 체액성, 세포성 공격을 막는 것이다. 항균펩타이드는 50개 미만의 아미노산으로 체내로 들어온 미생물의 세포막을 파괴해 죽이는 작은 단백질(펩타이드)이다. 농촌진흥청 곤충산업과 황재삼 박사는 “항생제의 남용으로 항생제에 저항성을 갖는 세균이 계속 출현하고 있다”며 “최근 항생제에 대한 내성이 확산되지 못하게 하는 물질인 항균펩타이드가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항균펩타이드는 미생물의 종류와 상관없이 몇 시간 내에 작용하며 거부반응이나 내성의 문제가 없는 ‘자연항생제’ 역할을 한다.
 
항균펩타이드는 세포막에서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데, 항균펩타이드의 종류와 미생물의 종류에 따라 크게 ‘안테나형(barrel-stave)’, ‘카페트형(carpet)’, ‘도넛형(toroidal-pore)’ 등 세 가지 모델로 구분된다. ‘안테나형’ 모델은 다수의 나선 형태를 가진 항생펩타이드가 세포막에 축적되고 세포막으로 삽입돼 펩타이드의 기름처럼 물과 친하지 않은 소수성 부분이 미생물의 세포막 지질(지방)부분과 결합해 구멍을 형성해 미생물을 죽인다. ‘카페트형’ 모델은 항균펩타이드의 양전하를 가지는 부분이 세포막의 음전하를 띄는 지질 부분에 결합하여 세포막 표면을 덮는 것인데, 이 경우 펩타이드의 농도가 높아지면 펩타이드가 계면활성제 역할을 해 세포막 층 구조를 파괴하게 된다. ‘도넛형’ 모델은 나선 형태의 펩타이드가 세포막으로 침투해 세포막을 이루고 있는 물과 친하지 않은 지질층을 구부러지도록 하여 구멍을 형성한다. 황 박사는 “기존에 의약품으로 판매되고 있는 암피실린이나 페니실린은 단백질의 합성을 저해하는 물질”이라며 “반면, 항균펩타이드는 미생물의 종류에 국한되지 않고 반응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항균작용을 피부에 응용
화장품 업체들은 미생물에 종류 없이 항균작용을 하는 항균펩타이드의 기능에 주목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왕지네와 애기뿔소똥구리에서 항균펩타이드를 추출해 화장품과 의약품 개발에 성공했다. 항균펩타이드는 이를 구성하는 아미노산 수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애기뿔소똥구리에서 추출한 코프리신은 43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항균펩타이드로, 기존 항생제에 내성이 생긴 세균에 효과가 있다. 실험용 쥐의 피부에 상처를 내 균을 감염시킨 후 코프리신 항생물질을 처리한 결과 기존 항생제인 암피실린보다 상처 치료와 피부 재생에 효과적인 반응을 보였다. 코프리신을 이용한 피부재생 화장품 제조회사인 ‘이지함’ 화장품은 이러한 코프리신의 기능에 미백 기능을 더했다. 이지함 화장품 관계자는 “코프리신을 이용한 화장품은 기본적으로 항균펩타이드의 항균작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피부를 아름답게 만들자는 것보다는 피부를 손상할 수 있는 유해균들을 제거해 건강한 피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왕지네에서 뽑아낸 ‘스콜로펜드라신 I​(scolopendrasin I)’을 이용한 응용개발품도 출시됐다. 스콜로펜드라신 I은 14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항균펩타이드이다. 스콜로펜드라신 I은 ​생쥐를 이용한 실험에서 아토피 피부염을 치유하는 데 효능이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항균작용의 원리로 아토피의 염증을 없애는 방식이다. 박재삼 박사는 “기존에 아토피 약품들은 아토피 치료제보다는 아토피의 증상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스콜로펜드라신 I은 아토피 증상을 없애는 치료제”라고 말했다. 아토피화장품 개발 회사인 오아센의 관계자는 “기존 치료제는 대부분 증상을 완화하는 방식이고, 스테로이드를 사용한 약품은 빠른 효과를 내지만 그만큼 부작용이 수반된다”며 “스콜로펜드라신 I은 항균펩타이드의 기본적 기능인 미생물 제어와 스테로이드 성분의 면역조절 기능도 가지고 있어 스테로이드 약품을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누에가 만든 천연 산물: 실크
실크는 누에로부터 생산되는 천연단백질로 주로 의료용 봉합실과 의류로 사용됐다. 실크는 피브로인과 세리신 두 종류의 단백질로 구성돼있는데, 그중 실크 단백질인 피브로인은 생체적합성, 생분해성, 통기성 등의 특징을 지녔다. 실크 피브로인은 최근 매력적인 천연 의료용 소재로 인식되면서 새로운 응용의료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실크 단백질을 의료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실크 단백질과 면역의 관계 때문이다. 의료용 실로 신체를 봉합할 경우 몸에서 염증이나 감염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실크 단백질은 인체에 적합한 성분이어서 몸에서 면역반응을 일으키지 않아 염증과 감염이 생기지 않는다. <견사단백질을 이용한 고분자 및 합성수지 기능성 신소재 개발 농업특정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토끼 복부 피하에 동물의 창자로 만든 봉합실(catgut)과 실크로 만든 봉합실을 넣고 2개월간 조직을 검사한 결과, 동물의 창자로 만든 봉합실의 주위에는 상당한 수준의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난 반면 실크로 만든 봉합실 주위에서는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지 않았다. 농촌진흥청 잠사(실크) 분야 권해용 박사는 “면역반응이 일어나면 상처 부위에 고름이 날 수도 있고 세균에 감염될 위험이 있지만, 실크는 인체에서 면역반응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물질”이라며 “실크 봉합실이 인체에 그대로 남지만 시간이 지나도 인체 염증이 발생하지 않는 만큼 생체안정성이 검증됐다”고 말했다.
 
인공고막에도 실크가 사용될 수 있다. 인공고막은 고막과의 경계 부위가 깨끗하고 생체적합성을 가져야 한다. 인공고막은 실크에서 단백질인 세리신을 제거한 후 얻어진 실크단백질을 통해 또는, 실크단백질 복합체 용액을 탈염, 건조해 만든다. 이를 활용해 질환이나 갑작스러운 사고로 천공이 생긴 고막의 재생을 촉진하고 복원할 수 있다. 실크인공고막은 기존의 인공고막보다 고막 재생률이 높다. 2009년 농촌진흥청이 고막천공환자 50명에게 실크인공고막을 적용한 결과 70% 이상이 기존의 인공고막보다 빨리 재생됐다. 권해용 박사는 “보통 고막이 손상될 경우에는 종이로 만든 패치를 이용해 손상된 부분을 지탱하고 고막이 자라면 알아서 떨어져 나가게 하지만, 고막이 심하게 손상됐을 시엔 사용하진 못한다”며 “실크 고막이 그런 부족한 점을 완전히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누에고치를 이용한 치과용 차폐막도 개발되고 있다. 권 박사는 “연구자들은 실크를 기존의 생체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재료로 보고 있다”며 “실크를 연구한 사례가 점점 늘어나면서 많은 발전을 이룰 것”라고 말했다. 이처럼 곤충은 미용과 의료의 각 분야에서 발전과 활용 가능성에 높은 원자재로서 앞으로도 각광받을 전망이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