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예상했던 꼭 그대로 수재(水災)가 났다. 사람들은 산사태로 흙더미에 깔려 죽고, 가축들은 물에 빠져 죽고, 농작물은 떠내려가고, 집들은 내려앉았다. 여기에 그렇게 큰비가 올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며 속으로 하늘을 탓하는 책임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당장은 수재 의연금을 거두겠지만 좀 지나면 큰 댐을 몇 십 개는 더 지어야한다고 국고에다 눈을 돌릴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수재가 난 것을 보면 정말 큰 댐을 필요로 할 만큼 강의 본류가 넘쳐서 수재가 난적은 우리의 기억에는 없다. 모두가 둑이 터졌다든지, 배수펌프가 고장났다든지, 하천의 물길이 막혀서 넘쳤다든지, 산을 파헤치고 뒷마무리를 안 했더니 산이 무너졌다든지 다 이런 것들이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면 이런 일들을 깡그리 잊어버리고 산은 또 파헤쳐지고 하천 변은 또 침범을 당할 것이다.

근년에 홍수를 방지하기 위하여 댐을 건설한다 제방을 만든다 배수로를 건설한다 하면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큰 공사들을 많이 벌여 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홍수 피해는 오히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유엔의 통계에 의하면 매 십 년마다 홍수 피해 인구가 거의 배가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 이유를 지구 온난화에다가 밀어붙이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사실 근년에 예상치도 못하던 기록적인 큰비가 자주 내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어서 이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겪는 수해의 가장 직접적이고도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가 홍수를 막는 공사를 하는 것보다는 홍수를 일으키는 공사를 더 성공적으로 진행해 왔기 때문이다.

세계를 둘러보면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은 예외 없이 나무가 울창하여 숲이 물을 저장함으로 댐의 구실을 하고 또 하천 변에는 넓은 습지들이 있어서 많은 물을 저장하는 유수지의 구실을 한다. 그리고 강들은 이리 구불 저리 구불 흐르고 곳곳에 웅덩이들이 있어서 물이 되도록 천천히 흐르도록 해서 잠깐 동안 내리는 폭우가 한꺼번에 한곳에 몰리지 않도록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동안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일을 열심히 해왔다. 산림을 없애서 물이 숲에 저장되지 못하도록 하고, 땅 바닥을 콘크리트로 덮어 물이 지하로 스며들지 못하도록 하고, 하천변들을 개발하느라고 수로를 좁혀 놓았다. 그리고 물을 빨리 빼야 수해가 안 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빗물은 하수도로 뽑아 얼른 강으로 보내고, 강들은 직강화하여 최단시간  안에 하류로 내려보내기에 바빴다. 그러나 이는 단 시간에 내린 폭우가 한꺼번에 합류지점에 모여 오히려 홍수가 범람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나라 같이 여름에 한꺼번에 큰비가 쏟아지는 곳에는 경사가 급한 곳에다 맨땅을 드러내 놓는다든가 산에다 풀밭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이 다 위험하다.
 
요즘은 큰비가 올 때에 하루에 500 미리 가까운 비가 내리기도 하는데, 이는 영국에서 1년 동안 내리는 비의 양이다. 그런 영국 땅에서 되는 풀밭을 우리도 영국사람들처럼 골프를 쳐보겠다고 멀쩡한 산을 깎아서 모래흙을 깔고 그 위에다가 살짝 잔디를 얹어서 물이 잘 빠지도록 만들어 놓는데, 그러면 큰비가 오면 산은 사태요 아래 마을은 물을 뒤집어쓰고 만다. 한라산에도 보면 산사태가 난 곳이 많은데 사태가 난 곳은 거의가 다 나무를 베어내고 초지를 조성한 곳들이다.

여름에 큰비가 몰려서 내리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보다 더운 나라들은 대개 다 그렇다. 일본만 하더라도 여름이면 우리보다 더 큰비가 온다. 그러나 일본에는 우리처럼 큰 댐이 없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작은 저수지들이 좀 있을 뿐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같은 홍수피해를 연례행사로 치르지도 않는다. 우리는 홍수를 예방해야 한다고 곧잘 떠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홍수를 조장하는 공사들을 열심히 벌이고, 큰 예산을 딸 수 있는 댐 공사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만 적은 예산으로도 할 수 있는 둑을 정비한다든가 펌프를 손질하는 데에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해마다 수재를 만나는 것이다.

여름에 우리처럼 비가 많지 않은 유럽이나 미국을 본받아 산에다 위락시설을 만들고 하천변을 매립해서 땅 장사를 해나가면 몇 사람은 좋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재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의 기후와 지리적인 여건에 맞도록 국토를 가꾸어야 한다. 많은 재해가 알고 보면 사람들이 불성실하고 부주의한데서 시작된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작은 일에도 충성하며 앞을 내다보고 빈틈없이 대비하면 이번과 같은 수해는  예방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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