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마지막으로 교감하는 의식인 장례. 하지만 이런 장례마저 자본주의의 논리 속에 들어와 버렸다. 고독사하는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이 있어도 장례를 치를 돈이 없어 시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치러줄 가족, 지인조차 없는 무연고자들은 바로 화장돼 무연고 추모의 집에 10년 간 보관된다. 장례가 갖는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죽음은 무엇일까.

▲ 자소리 전략사업팀장(왼쪽)과 박진옥 사무국장(오른쪽) 사진 | 김주성 기자 peter@

-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
박진옥 사무국장 | “크게 두 가지의 장례가 있어요. 기초생활수급자 대상 장례지원, 무연고 사망자 대상 장례지원.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사망하면 75만 원의 지원금이 있어요. 하지만 평균 장례비용은 1200~1300만 원인데 75만 원으로는 장례를 치룰 수가 없어요.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일단 행정망에서 처리가 돼요. 지자체에서 가족을 찾고 연락을 한 후 가족이 없거나 있더라도 어떤 이유에서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에는 다른 절차가 진행돼요. 서울시와 계약한 운구업체가 장례식장에서 운구와 화장을 하는데 그 중간에 저희 단체가 들어가 장례식을 해드리는 거예요.”

 

-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면
자소리 팀장 | “아버지와 아들 모두 무연고 사망자로 돌아간 경우가 있었어요. 15년 전 아버지는 가족이 있었지만 시신을 포기해 무연고로 처리가 됐어요. 그리고 아들은 대장암 말기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났는데,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에게 연락해 물었더니 시신을 포기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시신 위임서 하나에 자식은 부모의 시신을 포기하고 부모는 자식의 시신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박진옥 | “죽음 자체는 항상 버겁고 힘든 것 같아요. 뭐가 더 중요하고 덜하다 표현하기는 힘들어요. 그 중 특히 더 마음 아팠던 사례가 있긴 한데, 제가 활동을 시작한 지 별로 안됐을 때 인천 쪽에서 엄마가 100일 정도 된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변사체로 발견된 거였어요. 부패가 심해서 이름도 모르고 신원도 알 수가 없었어요. 보통은 영정사진이라도 올리는데 이 경우는 이름도 없었어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이름으로 불렸을 사람들인데 이름이 확인도 안 되고 무명녀로 처리할 수밖에 없어 유난히 더 힘들더라고요. 특히 엄마가 아이와 함께 죽음이 별로 안 남았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마음이 어땠을까를 생각해보면 더 안타깝더라고요.”

 

-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박진옥 | “죽음은 삶의 과정이에요. 죽는 것은 당연한데, 지금 사회는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어요. 영국의 경우는 데스까페라고 해서 사람들이 만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문화가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어린 아이가 죽음을 물어보는 경우 ‘아직은 몰라도 돼’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하죠. 자연스러운 삶의 과정을 왜 두려워하고 배척할까. 사실 죽음을 받아들이면 삶이 더 윤택해질 수 있어요. 지금은 사는 것도 걱정이지만 죽는 것도 걱정해야 하는 사회인데, 만약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면 그 불안은 없어질 거예요. 저희가 장례를 지원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거예요. 누군가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해준다는 확신을 생기게 하는 거죠.”

 

-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
박진옥 | “이 기관이 없어지는 거예요. 사람들이 ‘누군가 죽으면 국가가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존엄하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사회적 보장제도가 만들어져야 해요. 지금은 단순히 시신을 방치하면 안 되니까 처리만 급급히 하고 있는 거예요. 시신을 처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게 할 수 있을까, 살아있는 사람과 마지막 정리를 잘 하게 할까 고민해야 해요.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 대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박진옥 | “이게 타인의 고통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나와 상관없는 누군가의 고통쯤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해요. 지금 고립돼 죽는 50대 분들이 과연 20대에 이런 고민을 했을까요? 마지막은 외롭고 사회로부터 단절돼 있었지만 그 분들도 이름으로 소중히 불렸을 시기와 화려했던 시기가 있었을 거예요. 저희가 장례를 치르면서 초점을 맞추는 부분도 이 부분이에요. 타인의 고통으로 보지 말고 자신의 일처럼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사회가 시신을 처리만 하듯 버리는 것이 아니라 잘 마무리해준다는 확신이 생기게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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