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일’은 인간의 노동력을 필요하지 않고 기계를 ‘일’의 주체로 만들고 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500만 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인문학포럼 이튿날에 진행된 ‘규범과 공공의 인문학’에선 인공지능기술이 인간의 문화생활에 일으키는 파장 중에 인간성의 상실로 이어지는 위험요소를 공공적 삶과 연관 지어 성찰했다.

▲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에게 기본임금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을 중독자로 만들 수 있다.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인공지능에 대한 섣부른 걱정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주장은 꾸준히 등장했다. 산업혁명 당시 테일러주의가 확산하면서 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하는 일이 생산현장에서 확대됐다. 1950~1960년대 생산공정이 더욱 자동화되며 기계에 의한 실업을 연구하는 미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위기감이 증폭됐다. 1970년대 이후에는 컴퓨터가 광범위하게 사용되면서 회계나 사무인력을 실업으로 내몬다는 두려움이 고조됐다.

  ‘누가 자율적 기계를 두려워하는가? 인공지능에 대한 역사적 고찰’ 강연에서 홍성욱(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최신의 혁신 기술에만 주목해서 미래를 가늠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첫 번째 문제는 최신 기술발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는 것이다. 구글의 자율자동차는 실측을 통해 미리 정교하게 제작된 지도를 지침으로 삼아 주행한다. 홍성욱 교수는 “무인 자동차가 돌발상황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도시에서 주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지만, 알파고는 1200개 이상의 컴퓨터 CPU가 클라우드(Cloud)로 연결된 시스템인데 이런 시스템이 만연하게 사용되는 것은 미래에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두 번째 문제는 직업을 포함한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기술이 대부분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오래된 기술이라는 것이다. 산업혁명 시기에 사람들은 증기기관과 기계화된 방직, 방적 산업에 주목했고 이런 기계들이 공장에서 노동자들을 쫒아낸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실제로 증기기관이 전체 동력 중에서 차지했던 비율과 방직, 방적 산업이 영국 전체 산업에서 차지했던 비율은 높지 않았다. 홍 교수는 “우리가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전산용량은 인간을 달에 보낼 때 사용했던 1960년대의 슈퍼컴퓨터의 용량보다 더 크지만, 우리가 매일 인간을 달에 보내면서 사는 것은 아니다”라며 “급격하게 변하는 새로운 기술은 항상 더 큰 주목의 대상이 되지만, 세상은 거의 변하지 않는 오래된 기술로 가득 차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문제는 새로운 혁신 기술에만 주목하는 것은 기술이 다른 기술들 또는 인간과 얽혀서 일종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산업혁명 시기에 개발된 ‘뮬(mule)’이라는 기계는 가느다란 실을 인간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서 자동으로 생산했다. 이것이 처음 도입됐을 때 손으로 실을 잣던 인력은 빠르게 대체됐다. 하지만 곧 뮬 기계는 이를 다루는 고급 숙련자 노동자를 만들어냈다. 또한, 1950년대 GE와 MIT 엔지니어들이 협동연구를 통해 개발한 수치제어 공작기계 때문에 숙련 노동자들은 컴퓨터와 장착된 자동기계로 대체됐지만, 곧 새로운 기계를 다루는 고급 숙련 노동자들이 탄생했다.

  홍 교수는 “인간 노동을 대체하기 위해서 도입된 기계는 새로운 노동을 만들어 내지만, 인간은 자신의 노동을 기계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대신에 기계로 하여금 그 일부를 담당하게 하고, 자신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 교수는 “기업의 한 영역에서 생산성이 오르면 다른 부분들이 이에 맞춰서 발전하기 때문에 더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한다”며 “병원에 도입된 IBM 왓슨 컴퓨터가 의사들의 일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의사들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사용되는 것과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중독자를 만들 수 있는 기본임금
  ‘AI의 출현과 실존적 인간(4차 산업 혁명 시대, 인간과 인공지능의 상호작용에 대한 현상학적 성찰) 강연에서 이종관(성균관대 철학과) 교수는 “이번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은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루어내는 4차 산업혁명에서 인간이 처하게 될 미래의 상황을 이미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며 “이 대결에서 주목을 받아야 할 존재는 역설적으로도 가장 존재감이 없는 존재, 아자황”이라고 말했다. 아자황은 구글 딥마인드의 대만계 엔지니어로 대국 때 알파고 대신 수를 놓는 역할을 맡았다.

  이종관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은 사실상 기술적 미래주의와 과학 기술의 힘을 빌려어 인간의 능력을 계발하는 트랜스휴머니즘에 의해 주도돼, 인공지능에 의해 운영되는 포스트휴먼 경제로 질주하려 한다”며 “이 방향으로만 진행된다면 미래는 인간이 일을 잃는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이런 문제의 해결 방안으로 기본소득제를 제시한다. 이에 이 교수는 “기본임금은 일시적으로 경제적 궁핍과 사회의 양극화 그리고 총수요부족을 진정시킬 수는 있지만, 이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큰 오산”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정의하는 일이란 인간의 품격, 개인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인간의 실존적 처신이다. 일없는 상태는 인간의 실존적 삶에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 이 교수는 “철학적으로 가장 심각한 것은 인간의 삶이 진행되는 실존적 시간성이 병리적 상황에 빠질 위험”이며 “일이 없는 자들에게 경제적 궁핍보다 더 위험한 사태는 그들이 미래가 없는 권태에 빠져 결국 중독자로 전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때 중독은 어떤 바이러스가 아닌,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인간에게만 발생하는 독특한 시간적 질병이다. 이 교수는 “중독자에게는 변화의 가능성으로서의 미래가 오지 않기 때문에, 미래라는 시간과 절연된 상황인 권태 상태에 빠진다”고 말했다.

융화를 향한 새로운 방향 필요
  4차 산업혁명은 지능적 첨단기술의 발전이 모든 산업에 매끄럽게 스며들어 산업, 생산자, 소비자를 연결해, 지능적으로 운영된다. 이 교수는 “이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인공지능”이라며 “하지만, 인공지능으로 운영되는 경제는 인간에게 일을 빼앗아 미래라는 시간을 증발시키고 몸을 무력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런 문제점의 해결책으로 ‘적응형 자동화’를 내놓았다. 적응형 자동화(Adaptive automation)는 인간을 일로부터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에 인간과 기계의 협업을 조율하는 역할을 부여한 방식이다. 이 교수는 “트랜스휴머니즘과 같이 최고성능으로 인간을 제조하려는 기술이 찬양되는 상황에서 기술과 인간 그리고 일의 관계에 대한 본래적 인식을 회복해야 한다”며 “기술은 인간과 일을 매개해 인간의 실존적 삶을 미래로 성취시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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