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인도, 이탈리아 등지에서 보석 수집가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제적이나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며 살았지만 돈이란 게 사람을 지저분하게 만들더군요. 이제 나누면서 살고싶습니다.”

아이 세 명을 키우면서 입혔던 옷가지들과 장난감등 기증한 물건 하나하나에 사연을 적어 보낸 한 주부. 전라도 군산에서 새벽차로 옷 40벌을 비롯해 희귀한 LP판을 들고 안국동을 찾아 꼭 필요한데 써 달라는 불혹의 아주머니. 오늘도 ‘아름다운 가게’는 사람들의 나눔의 사랑을 담은 신상품들이 속속들이들어오고 또 팔리고 있다. 

아름다운 가게는 일종의 상설 벼룩시장이다. 쓰지 않는 헌물건이나 혹은 아직 사용하지 않은 새것이라도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을 이웃을 위해 무료로 내놓고 또 그것을 사는 상점이다. 수익금 전액은 불우이웃을 돕는데 사용된다는데 의의가 있다.

지난달 17일 처음 문을 연 안국점 1호를 시작으로 상설매장은 독립문점, 삼선교점, 서초점, 신대방점, 휘경점, 안산 상록수점 그리고 최근에 문을 연 홍대점까지 8개로 늘었다. ‘움직이는 아름다운 가게’까지 포함해 온라인 매장까지 합하면 총 11개에 달한다. 올해 말까지 신설동과 인천, 안양등  6개의 지역에도 아름다운 가게가 들어설 예정이다.

한가로운 평일 오후, 얼마 전 첫돌을 맞은 아름다운 가게 1호 안국점을 찾아 가봤다. 밝은 표정의 자원봉사자가 먼저 기자를 맞았다.

“어서오세요 아름다운 가게 입니다. 또 오셨네요. 반가워요. 꼬마도 안녕?”초입부터 자원봉사자들의 활발한 모습이 눈에 띈다. 안국동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는 52명 정도. 대부분이 40대 후반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대학생들의 봉사활동 참여는 저조해요. 있다 해도 봉사활동에 관한 학점을 따기 위해서가 대부분이죠. 하지만 방학 때 열심히 봉사하는 대학생이나 바쁜 와중에도 토요일마다 봉사하는 직장인을 볼 때마다 희망을 발견합니다.”

최용수 자원봉사자의 말이다. 희망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자원봉사자, 사람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이 말을 되새기며 아름다운 가게에서 우리사회의 희망을 찾아보고자 했다.

아름다운 가게의 하루 이용고객은 5백명 가량. 그 중 실수요자는 4백명으로 작년 연말 1천1백만원이었던 매출이 올해 8천만원으로 증가했다. 기부 문화가 낯설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로 시작한 아름다운 가게가 나눔을 통해 희망을 찾은 것이다. 가게 보증금부터 물류 운송 그리고 인테리어 비용까지 모두 보조금을 통해 만들어진 1백% 기부금 상점이라 더욱더 의미가 있다.

아름다운 가게의 주 소비층은 주부들이 많다. 가격이 대부분 1천원 대로 저렴하기 때문. 광고에서 나오는 큰 인형(단돈 5천원 시중가의 10분의 1가격이다)을 들고 함박웃는 아이들. 이곳은 어린아이들에겐 또 다른 놀이방이자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달에 한 번 네 살난 아들과 함께 꼭 둘러 보는 나들이 코스에요, 아이들에게도 제게도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고르는데 참 즐겁더라고요.”라며 한 주부는 활짝 웃는다. “이렇게 크게 두보따리나 샀는데 3만원도 안되요. 정말 저렴하죠”

신문에서 본 후 호기심에 아름다운 가게에 찾은 후로 집이 마포임에도 불구하고 자주 들르는 상점 팬이 됐다는 김윤희(여·54세) 씨.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어요. 주변에선 먼곳까지 가기가 귀찮지 않냐고 말들하지만 스팀다리미며 옷가지며 모두 기부했답니다. 그동안 무심코 버리던 옷들이 이곳에선 예쁘게 진열돼 팔려 도움을 준다니 그 날 이후부터 쉽게 옷을 못 버리겠더라고요.”오늘도 김윤희 아줌마는  행복을 가득 안고 상점문을 나선다.

초록색 앞치마를 두른 여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유달리 바쁘게 움직이는 한 봉사자가 눈에 띈다. 자원봉사자들 관리부터 상점 전체의 일을 도맡는 바로 유급 상근 간사. 일종의 매니져 역할이다.

“이일을 시작했더니 혹자는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냐고 물어보더라구요.(웃음)”

물품관리부터 자원봉사자들 관리까지 하루의 긴 24시간도 부족한 남재석 매니저의 모습에서 따뜻함이 묻어난다. NGO운동에 관심이 많던 그는 대학원에서 기부문화를 전공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코드와 잘 맞는 직업을 갖게 돼서 남 간사는 기쁘다고 한다. 직업의 특성상 보수를 목적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는 만큼 리사이클링 사업에 있어서 자신이 하나의 매개체가 되었다는 그의 말속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요즘같이 좌우이념이 편향된 사회 속에서 아름다운 가게는 이념을 초월한 곳입니다. 사회를 변화시킬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 참여와 실현의 장을 제공하는 일종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이죠.”

사회공익적 요소를 대중들에게 공감시키고 확산시키는 거점이 되는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가게는 이념과 갈등과 대립 이 모든 것들을 나눔이라는 미덕을 통해 하나로 묶어내고 있었다.

아름다운 가게를 지나 골목 안쪽으로 좀더 들어가면 ‘되살림 숲’이란 위탁 판매 가게를 만나볼 수 있다. 아름다운 가게가 100% 기증이라면 되살림 숲은 위탁 판매다. 자신이 못입게 된 옷이나 가방, 신발 등 주로 의류가 주류를 이룬다. 아름다운 가게가 생필품이 주를 이룬 느낌으로 실용적인 마트 같았다면 되살림숲은 고급스런 하나의 일반 전문 매장같은 느낌이었다.

“위탁하시는 분의 가격책정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일부에서는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을 부르시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 그런 물건은 안 팔립니다.”정말로 남을 도우려는 의도로 물건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적당한 가격을 매기기에 더 잘팔리고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을 돕게 된다는 것이다.

유명작가의 그림부터 사이즈가 작아 못 입는 명품 신발까지. 물건을 내는 사람은 일정의 돈을 벌고 남은 돈으로는 불우 이웃도 돕고, 일석이조 사업이다. 물건의 소중함을 알고 재활용을 하자는 물빛선생의 취지로 오픈한 이 가게는 현재 홍필규 씨가 운영하고 있다.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이 일을 시작했어요. 하지만 남을 돕는 일인 만큼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일입니다.”

‘움가맨을 아쉽니까?’

우리에게 친숙한 맨들은 누가 있을까. 슈퍼맨? 배트맨? 아니면 스파이더맨? 모두들 사회정의를 실현하지만 그중에서도 움가맨처럼 적극적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맨은 없을 것 같다. 바로 ‘움직이는 아름다운 가게’ 활동을 하는 그들. 그들이 바로 움가맨이다.

움직이는 아름다운 가게는 트럭에 물품을 싣고 직접 지역사회로 달려간다. 현실적 제약으로 가게를 찾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초청을 받은 곳을 포함해 전국 어느 곳에서나 열린다. 10월 마지막 금요일, 서울여성플라자 앞에서 열린 움직이는 아름다운 가게에서는 두명의 움가맨들이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1천원의 물건을 5백원으로 깎아달라는 할머니들에겐 무료로 드립니다. 그래도 지난달 매출이 1천2백만원 이었다니까요.”라는 지난 3월에 입사해 적극적인 움가맨 활동을 하고 있는 전상준 간사의 말속에서 움직이는 가게에 대한 시민의 호응을 엿볼 수 있었다.

“가치관이 편향돼 있는 현재의 이 사회는 나누는 삶에 대한 인식의 부재는 물론 그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식을 전환하는 사회 시스템이 절실하고 그 주축은 대학생들이 돼야한다고 봅니다.” 단순 노동을 비롯해 기획에서 인터넷 업무 그리고 통역까지. 아름다운 가게에서 대학생의 참여를 필요로 하는 활동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하다며 전 간사는 아쉬워했다.

나눔을 통해 희망을 실현해 가는 아름다운 가게 그곳엔 희망이 있었다. 그리고 사람이 있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우리가 희망이 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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