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그럼 뭐해. 달라지는 게 없는데.”

  민중총궐기가 있고 며칠 후였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어르신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거나 버스가 노선을 바꾸는 바람에 헛고생을 했다던가 하는 이야기도 잇따랐다. 그리고 ‘그런 방법’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 방법. 어르신들께서 말씀하시는 그런 방법은 사람들이 떼로 몰려가 아우성치는 것이었다. 그래봤자 청와대에 계신 분이 눈 하나 깜빡 하겠느냐는 것이 요지라면 요지였다.

  100만 명이었다. 대학로에서 시작한 발길은 시청 광장까지 그리고 내자동까지 꽉꽉 들어찼다. 누군가 걱정했던 물대포나 최루탄은 없었다. 길거리에서 시작한 노래와 누군가의 목소리, 그리고 촛불이 있었다. 시청 앞에는 걸음마를 뗀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걷던 젊은 부부가 있었다.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도 있었고 교복을 입은 채 무리지어 다니던 어린 학생들도 있었다. 청계천 근처의 상가를 지날 땐, 중년의 상인들이 거리로 나와 행진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정녕 달라진 것이 없는가. 그래, 아직 청와대에는 변한 것이 없다. 길라임이니 계엄령이니 하는 혼이 비정상이 될 것만 같은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그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자신과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는 백만 명의 시민과 함께 걸었다. 그 시민이 외치는 선창 뒤로 화답하는 묵직한 후창을 들었다. 길게 늘어선 의무경찰들을 향해 수고한다는 한 마디를 건넸고, 의무경찰들도 코앞까지 다가온 집회 참가자들을 진압하지 않았다. 간혹 술에 취한 시위대 한 명이 의무경찰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차벽 위로 올라가 무언가 마구 외쳤지만, 오히려 다른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진정시켰다. 작년 민중총궐기 때 일부 과격 시위대가 경찰 버스를 밧줄로 묶어 당기고, 벽돌과 쇠파이프로 경찰 버스 유리창을 깬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비폭력이, 그리고 국민의 힘이 폭력보다도 훨씬 강함을 알았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어느 누구에겐 그저 ‘그런 방법’이, 국가의 주인이 직접 목소리를 내는 가장 큰 힘이다. 변한 것이 없는 건 이제 단 하나뿐이다. 그 마지막 하나가 변하기 전까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이 지금까지 울려 퍼진 모든 목소리가 아무 힘이 없었다는 뜻이 아님을 안다. 우리는 변화를 목격했고, 그것이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 또한 알고 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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