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부검, 자살자의 심리재구성
효과 좋지만 법적 근거 미비
경찰과의 협조도 필수적

 
▲ 그래픽 | 김선희 기자 hee@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은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사망 당일 그들의 상태는 어땠을까. 혹시 주변 사람들에게 신호를 남기지는 않았을까.
 
심리부검을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다. 심리부검은 자살 전 일정 기간 동안의 심리적 행동 변화를 재구성해, 자살의 원인을 추정하고 자살자의 상태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유가족, 지인 등 주변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심리부검은 1986년 핀란드에서 처음 도입됐다. 도입 후 핀란드는 1990년 10만 명당 30.2명이었던 자살률을 2012년 15.8명까지 낮췄다. 우리나라도 높은 자살률을 낮추기 위해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심리부검 사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하고 제도적 지원이 미비해 유의미한 결과를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심리부검은 어떻게 진행되나
2009년 보건복지부가 ‘제2차 자살예방대책 5개년 계획’을 발표한 후 경기도, 부산시, 충청남도 등 각 지자체는 심리부검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기관마다 심리부검을 진행하는 방식과 도구가 달라 결과를 통합하기 어려웠다. 이에 2014년 설립된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심리부검 방식과 면담 도구를 한국형 심리부검 체크리스트(Korea-Psychological Autopsy Checklist 2.0, K-PAC 2.0)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중앙심리부검센터 고선규 부센터장은 “자살에 이르는 원인은 내부적, 외부적으로 다르지만 이에 대한 분석이 존재하지 않았다”며 “심리부검을 통해 사망원인을 분석하고 그 원인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과 대안을 마련하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부검은 유가족이 직접 신청하는 경우와 병‧의원, 경찰서, 각 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의뢰하는 경우로 나뉜다. 자살자 한 명 당 유가족 두 명이 면담에 참여할 수 있다. 지인은 유가족 한 명이 참여하는 경우에만 한 명에 한해 가능하다. 심리부검은 면담을 통해 자살의 원인을 추적하는 것이 주목적이지만 유가족과 지인이 마음을 추스르게 하는 기능도 한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털어놓으며 심리적 혼란과 어려움을 덜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선규 부센터장은 “한 명의 고인마다 다섯 명 정도의 유가족이 생기는데, 자살의 전염이 발생해 일반인과 비교해 유가족이 자살할 확률이 굉장히 높아진다”며 “심리부검을 통해 고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음을 가볍게 해 자살률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고 말했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면담 이후 치료와 상담이 필요한 유가족을 각 지역 정신건강증진 센터에 연계하는 등 유가족의 심리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진행된 121건이 대표성을 갖지는 못해
중앙심리부검센터는 2015년, 3년 이내의 121명 자살자를 대상으로 총 151명의 유가족을 면담하며 심리부검을 진행했다. 그 결과 자살자 93.4%가 자살 전 경고신호를 보냈으나 유가족의 81%는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 또한, 자살자의 88.4%는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었지만, 꾸준히 치료를 받은 비율은 15%에 불과했다. 사망 한 달 이내에 정신의료기관이나 정신건강증진센터를 방문한 자살자는 25.1%에 불과했으며 오히려 일반적인 치료를 위해 동네의원 같은 1차 의료기관을 방문한 비율이 28.1%로 더 높았다. 사망 당시 음주상태인 자살자는 39.7%였고 음주로 인한 문제가 있었던 자살자는 25.6%, 가족이 음주 문제를 가지고 있던 경우는 53.7%였다. 또한, 생존 당시 가족 중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살한 사람이 있는 자살자는 28.1%였다.
 
중앙심리부검센터는 이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1월 보건복지부에 자살 경고신호를 알리는 게이트키퍼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알렸다. 1차 의료기관이 자살 위험과 우울증에 대한 선별검사를 실시하도록 역할을 강화해야 하고, 알코올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 자살 유가족에 대한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당시 보건복지부 차전경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심리부검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자살까지 이르는 길목을 차단할 수 있도록 세심한 자살 예방대책을 추진할 것”이라며 “전 국민 정신건강증진, 우울증 등 정신질환 조기발견‧치료 활성화 및 자살예방 등의 내용이 포함된 중장기적인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을 2월 중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121건의 심리부검 결과는 △국민 정신건강 증진 △중증 정신질환자 지역사회 통합 △중독으로 인한 건강 저해 및 사회폐해 최소화 △자살위험 없는 안전한 사회구현을 목표로 하는 정신건강증진종합대책에 포함됐다.
 
하지만 121건이라는 사례로는 국내 모든 자살자를 아우를 수 없다. 지역, 성별, 나이마다 자살의 원인과 자살까지 이르는 과정이 다르지만, 현재는 의뢰되는 경우에 한해서만 심리부검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심리부검 사업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냈던 핀란드는 1987년 4월부터 1988년 3월까지 1년 동안의 모든 자살자를 조사했다. 고선규 부센터장은 “우리나라는 예산, 인력 등의 제약으로 핀란드처럼 전수조사 할 수는 없는 상태”라며 “샘플링이 정교하지 못해 자살 예방의 근거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충분한 예산과 경찰 협조 필요해
심리부검 대상자의 대표성이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예산의 제약이다. 예산의 제약은 인력 부족으로 이어진다. 현재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면담을 진행할 수 있는 인력은 7명에 불과하다. 친구, 지인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 전 방위적으로 원인을 분석해야 하지만, 인력의 한계로 충분한 분석이 불가능한 것이다. 중앙심리부검센터 김은화 상임팀장은 “다양한 사례를 확보하는 것 또한 중요하기 때문에 참여할 수 있는 정보제공자 수에 제한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심리부검 사업을 지원하는 법적인 근거도 부실하다. 고선규 부센터장은 “고인이 마지막에 방문한 의료기관, 연인관계에 있던 사람 등을 대상으로도 사망 원인과 과정을 분석해야 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 등의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중앙심리부검센터는 1년 단위로 위탁기관이 바뀌고 있다. 이는 인력의 고용상태를 불안하게 해 안정적, 전문적인 운영을 어렵게 한다. 2014년에는 아주대, 2015년에는 명지병원, 올해는 경희대가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고선규 부센터장은 “전문적인 영역임에도 매년 위탁기관이 바뀌어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경찰과의 유기적인 협조도 필요하다. 경찰은 모든 유가족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은화 상임팀장은 “경찰은 모든 유가족을 조사하고 사망의 원인이 무엇인지 심층적인 조사를 하게 돼 있어서 경찰과의 원활한 협조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8월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국회의원은 심리부검 사업의 법적 근거를 담은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법률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살원인을 분석하는 심리부검을 실시할 수 있으며 △보건복지부 장관은 중앙심리부검센터를, 시‧도지사는 지방심리부검센터를 설치‧운영할 수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심리부검센터의 설치‧운영을 민간에 위탁할 수 있고 비용을 보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현재 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에 상정돼 계류 중이며 보건복지부 등의 기관과 협의해 빠른 시일 내에 통과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충분한 데이터를 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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