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김시언 sean@

  현금 사용이 점차 줄어 신용카드 사용비중이 현금을 추월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은행은 감소하는 현금 사용에 맞춰 ‘동전 없는 사회’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에서 곧 동전 없는 사회를 넘어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아날로그 금융에서 디지털 금융으로 대전환 될 현금 없는 사회는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의 주요 화두다. 금융소외계층을 함께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과제를 지니고 있다. 

  사라져가는 현금
  # 대학생 A 씨는 현금 없이 산다. 카페에서 3000원짜리 라떼를 주문하고 카드를 내민다. 점심시간 친구들 밥을 먹고 계산할 때도 분할 카드 결제를 요구한다. 다음 주에 갈 과 MT 비용을 단체 카카오톡방에 있는 계좌번호를 복사해 간편 송금 앱으로 송금했다. 수업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스마트폰으로 웹서핑하다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해 간편결제 앱으로 결제했다. 
 
  A 씨의 현금 없는 생활은 결코 낯설지 않다. 결제의 비현금화는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이 성인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지급결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카드, 체크카드 등 비현금 지급수단의 이용이 급격히 증가했다. 현금결제 비중도 건수기준 전체의 26.0%로 2014년 37.7%에 비해 급격히 감소했고, 신용카드 비중은 2014년 34.2%에서 50.6%로 크게 증가해, 현금 비중의 2배 가까운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편의점 등에서 적은 금액도 카드로 긁게 되는 소액 결제화 경향도 두드러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4년 신용카드 건 별 금액이 3.2만원에서 2016년 2.3만 원로 크게 감소했다.  본교 정문 앞 편의점 점원 A씨는 “손님들 열에 아홉은 카드를 낸다”며 “현금을 내면 잔돈이 불편하니까 거의 다 카드를 낸다”고 말했다. 
비현금 지급수단의 비중이 늘었을 뿐 아니라 지급수단의 종류도 다양해졌다. 간편 결제, 간편 송금 등 모바일을 이용한 지급결제수단이 보편화되면서 언제 어디서나 모바일로 손쉽게 결제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우리에게 ‘00페이’로 익숙한 간편 결제는 온라인에서 이용자가 미리 등록해 놓은 카드와 인증수단을 이용해 공인 인증서 없이 간편하게 결제하는 서비스다. 스마트폰을 매체로 카드사와 가맹점 간의 카드 승인정보를 중개하고 정산을 대행하는 방식으로 제공된다. 이런 신종 전자지급대행서비스는 2015년 금융회사가 아닌 비금융 전자지급결제대행서비스 회사의 신용정보 저장을 허용하고 공인인증서 의무사용을 폐지하는 등의 규제 완화 후 본격화됐다. 

  온라인 결제가 지급대행서비스들의 등장으로 간편해지면서 인터넷 쇼핑을 하는 사람도 늘었다. 안예원(사범대 수교16) 씨는 “간편 결제 수단인 ‘네이버 페이’를 시작하고 난 이후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일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현금 없는 사회 논의 본격화 
  현금 없는 사회의 전초 단계로 ‘동전’부터 사라진다. 한국은행은 4월부터 ‘동전 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020년을 목표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동전 없는 사회’의 첫 단추다. 편의점에서 현금거래 후 남은 잔돈을 선불카드에 적립하는 방식으로 시범 사업이 우선 시행된다. CU, 이마트, T-Money 등 편의점, 마트 사업자와 선불사업체가 참여했다. 한국은행 전자금융기획팀 김정혁 팀장은 “거스름돈으로 동전이 생겨도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동전을 전자지급결제수단에 충전해서 사용하도록 해, 점차적으로 동전을 줄이고 전자지급수단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국은행의 동전 없는 사회 추진을 계기로 한국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에 대한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스터카드사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현금 없는 사회 직전 단계(Tipping point)에 속해있다. 이 구간의 국가들은 현금으로부터 탈피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요소를 갖췄다. 이제 국민들이 변화를 선택할지 여부에 달려있는 상태다. 정유신(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실상 동전 없는 사회로 간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현금 없는 사회로 간다는 것”이라며 “100% 예단하긴 힘들지만 편리성을 고려해서라도 현금 없는 사회로 나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디지털화폐로  
  현금 없는 사회는 단순히 지폐를 발행하지 않는 것을 넘어서, 아날로그 금융이 디지털 금융으로 전환되는 것을 의미한다. 인호(정보대 컴퓨터학과) 교수는 “현금 없는 사회란 아날로그 화폐가 디지털 화폐로 전환되는 전반적인 금융시스템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말했다. 아날로그 금융에서는 종이로 된 화폐를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특정 공간과 시간에 만나서 거래했다. 디지털 금융에서는 디지털 화폐를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는 비대면 거래가 가능하다.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의 편리성과 특수성은 기존 금융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P2P 네트워크에 거래 장부를 저장하는 방식의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는 거래의 시공간의 제약이 없고 한계비용이 매우 적다. 또 블록체인은 P2P 네트워크를 통해 장부 간 위변조를 서로 검증하기 때문에 동시에 51% 이상의 노드(Node)를 장악하지 않으면 해킹이 어려운 구조라 보안성에서 뛰어나다. 

  디지털 화폐만의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는 특성도 강력하다. 거래 간 중간자가 필요 없어 개인 대 개인이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생긴 것이다. 인호 교수는 “디지털 화폐는 돈에 위변조가 불가능한 특정 프로그램을 얹어서 목적에 맞게 쓰이도록 해놓으면 다양한 금융서비스들이 구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 보험이라는 금융서비스는 돈을 정기적으로 보험사에 납부하고 사고가 생겼을 때 보험사가 나서 보험금을 지급하는 형태였다. 하지만 디지털 화폐가 활성화 된다면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보험금을 자동 지급하도록 디지털 화폐에 프로그래밍 할 수 있다. 

  물론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 화폐의 한계도 존재한다. 모두가 참여하는 ‘퍼블릭 블록체인(Public Block-chain)’이라는 점에서 중앙 제어가 힘들어 통제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에 대한 논의가 중국, 영국 등 주요 국가들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국가가 경제정책을 펼치기 위해 중앙통제가 필요함을 전제로 한다.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는 기존의 퍼블릭 블록체인을 넘어 중앙은행 등 권한을 가진 관리자만 장부에 접근하도록 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Private Block-chain)’으로 구현될 수 있다. 정유신(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디지털 금융으로 가는 게 필연이라면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 화폐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외 계층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현금 없는 사회가 되면 거래의 투명성은 확보되지만, 취약계층에게 독이 될 수 있다. 현금 없이 거래가 디지털로 이뤄지면 모든 거래가 실명으로 기록이 남고 공개된다는 점에서 투명성이 확보된다. 이는 정확한 세수확보, 지하경제 축소 등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신용 취약계층에게 독이 된다는 우려도 있다. 정유신 교수는 “아날로그 경제일 때는 부채가 있어도 자산이 있으면 소비가 가능했지만, 디지털 경제가 되면 신용이 취약한 사람은 소비 자체가 힘들어진다”며 “신용 위기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처럼 신기술이나 디지털 화폐에 익숙하지 않은 취약 계층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 전문가들은 교육을 통해 극복해야 하며 노인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프로그램과 앱 개발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인호 교수는 “중국의 경우 알리바바 모바일 결제서비스를 보급하면서 노인들에 대한 교육도 충분히 실시했던 사례처럼 교육을 통해 해소 가능한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눈이 잘 안 보이는 노인을 위한 큰 글씨 전용 앱, 단순화한 프로그램 등의 출시도 이어지고 있다. 신한은행 홍보실 구도현 과장은 “노년층을 위한 앱을 개발할 때 글씨를 크게 하고 화면구성을 단순하게 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핀테크 혁신을 통해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에 대한 부담이 소상공인들에게 가중되는 구조에 대한 경계도 필요하다. 카드 사용이 보편화되기 시작했을 때 카드 수수료가 소상공인에게 부담됐던 경험을 잊어선 안 된다. 이에 소상공인연합회는 핀테크를 활용한 수수료 인하방안 연구를 발표하며 “핀테크가 발전할수록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결제수수료를 인하할 수 있는 기술개발과 정책 마련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희원 기자 smile1@
그래픽| 김시언 기자 s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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