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무역 시대가 다시 도래했다. 올해 3월, 자유무역의 상징 중 하나인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한다’는 문구가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회의의 공동선언문에서 빠졌다. 3월 17~18일 독일에서 열린 이번 회의에서 해당 문장을 두고 미국이 반대해서다. 작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2016년 7월 영국이 다자무역주의에서 탈피하고자 유럽연합(EU)을 탈퇴할 거라는 가능성이 높았던 때에도 해당 문구는 공동선언문에서 빠지지 않았다.

  당장 4월 美트럼프 정부의 환율조작국 지정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회의에 참석 후 “미국 측의 입장을 귀담아 들어 보니 환율 정책의 투명성을 특히 강조하는 부분이 눈에 띄었다”며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에 3월 23일 외교부와 한국국제통상학회(회장=최병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의 정무·경제·지정학적 함의’ 세미나를 열어 트럼프 정권의 통상정책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한국의 대응책을 모색했다.

 

중국 조준한 트럼프 행정부
  
美트럼프 행정부의 ‘American First(미국 우선주의)’ 전략이 관철되면서 향후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이 탄력을 받을 거란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주창한 보호무역주의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 인선을 시작으로 현실이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백악관 직속자문기구인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했다. 국가무역위원회는 대외무역 정책을 수립하는 상무부와 국제무역 협상 실무를 주도하는 무역대표부(USTR)를 산하에 두고 미국의 통상정책을 총괄한다. 문제는 국가무역위원회 위원장에 대(對)중국 강경파로 유명한 피터 나바로(Peter Navarro)를 임명한 것이다. 피터 나바로는 중국의 무역 팽창으로 미국 경제 위축과 일자리 유출을 언급한 저서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Death by China, 2011)>을 출간할 만큼 중국에 적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지지자를 의식해 반(反)중국과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인사를 기용했다는 분석이 많다. 전통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일부 지역의 저소득·저학력 백인 블루칼라 노동자를 위한 인사 결정이었다. 소위 ‘러스트 벨트(Rust Belt)’라 불리는 해당 지역은 1870년대부터 100년간 번영을 누렸지만, 세계화로 자유무역이 확산되면서 몰락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몰락의 원인으로 미국이 그동안 유지해온 무역정책을 지목했다. 최석영 교수는 “트럼프는 미국 제조업 불황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같은 미국의 통상정책과 다자통상규범을 기피한 중국 탓으로 돌리며 러스트 벨트지역의 유권자를 자기편으로 만들었다”며 “당장 트럼프 지지층에게 보여줄 경제적 성과가 필요하기에, 미국의 보호무역주의가 한동안 지속될 것”이라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은 중국을 향한 트럼프식 헤게모니 전쟁의 서막이다. 이시욱(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피터 나바로의 행적이 미국 경제의 무역정책보단 미국과 중국 ‘G2’의 헤게모니 다툼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시욱 교수는 “미국이 단지 무역수지 적자 해소란 경제적인 이유로 보호무역을 추진하기보단 아시아 지역의 경제·안보 주도권 확보를 일차적 목표로 둘 것”이라며 “이전 오바마 행정부의 ‘Pivot to Asia’ 전략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라 말했다.

 

4월로 예정된 ‘환율조작국’ 지정
  
트럼프 정부는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 조치로 당장 4월에 중국을 ‘환율조작국(currency manipulator, 환율심층분석대상국)’으로 지정할 것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환율조작으로 미국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국가들을 강력히 제재하겠단 의중을 수차례 밝혔다.

  문제는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16년 10월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주요 교역대상국 환율정책보고서에 ‘환율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으로 지정됐다. 같은 해 4월에 이어 연속으로 경고를 받은 것이다. 환율관찰대상국은 2015년에 수정된 ‘무역강화 및 무역촉진법(TFTEA)’이 제시한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 3개 중 2개에 해당한 국가를 의미한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해당국에 대한 미국기업들의 투자제한,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한 환율압박 등의 제재가 이뤄진다.

  이번 세미나에 참석한 국내 전문가들은 조심스럽게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을 낮게 봤다. 환율조작국 지정의 주목적 중 하나가 외국통화 가치를 떨어뜨리며 달러 가치를 높이는 것인데,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달러에 비해 한국 원화가 두 달간 절상된 상태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 와중에 3월 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에서 기준금리를 0.25% 올려 달러 강세에 한몫했다. 현대경제연구원 강인수 원장은 “앞으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3년간 3번에 걸쳐 금리인상을 예고해 달러강세가 계속될 전망”이라며 “현재 정부가 외환시장에 직접 관여하는 것이 민감하지만 스무딩오퍼레이션(Smoothing Operation, 정부가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통해 급작스러운 환율 변동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건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것인가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약 으로 “취임 첫날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말했고, 최근엔 “환율조작의 그랜드 챔피언”이라고 비판했다. 대다수 국내 전문가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선제공격을 할지 여부는 더 기다려봐야 알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이시욱 교수는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순간 불확실성이 더 커져 안전자산인 달러가 강조돼 무역마찰이 재차 발생하는 악순환이 이뤄질 것”이라며 “4월 6일과 7일에 있을 미·중 정상회담의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위협하는 주요정책
  
이번 세미나에선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통상정책들도 점검했다. 작년부터 한국 기업에 실질적 손해를 끼치고 있는 ‘반(反)덤핑 및 상계관세’ 부과가 먼저 논의됐다. 미국은 2015년 6월에 통과시킨 무역특혜연장법(TPEA) 개정안 중 776조 b항에 따라 ‘AFA(Adverse Facts Available, 불리한 가용정보)’를 활용해 한국 기업에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도록 했다. 반덤핑 관세는 수입물품이 정상가격 이하로 수입돼 미국 내 관련 산업의 피해를 막기 위한 해당 수입품에 부과하는 세금이다. 기업에 부과된 반덤핑 관세는 자국 기업의 신고와 소송결과에 따라 외국기업에 부과된다.

  하지만 개정된 무역특혜연장법에 따르면, 피소기업(외국기업)이 미 당국 조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으면 최종판결에서 불리한 가용정보(AFA)를 활용해 바로 반덤핑세 부과를 허용한다. 산업연구소 고준성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이 반덤핑세 조사 과정에서 국내 대기업과 계열사에 한 달 만에 준비하기 어려운 회계자료를 10일 내 제출하라는 등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조사과정의 불합리성을 강조했다. 이어 “불합리한 반덤핑세에 국내 기업들이 WTO 제소를 진행하고 있지만, 현재로썬 해당 관세가 적용된 철강 산업을 중심으로 다른 산업까지 확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재협상 도마 위에 오를 위기다. 3월 1일 미국 무역대표부가 의회에 제출한 ‘2017 무역정책 의제와 2016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FTA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급격하게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강인수 원장은 “미국의 한미FTA로 인한 무역적자 주장을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수입시장 내 미국 점유율이 FTA 발효 이전인 2011년에서 발효 5년 차인 2016년 사이 2.14% 증가했는데, 이 증가 폭은 최근 10년간 최대 수준이라는 것이다. 강인수 원장은 “미국 행정부가 발표한 미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한미FTA 지표들이 많다”며 “한미FTA가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홍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국제연대와 내실강화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국제 연대와 국내 협력을 강조했다. 최석영 교수는 “힘에 의한 양자주의가 진행되면 한국과 같은 중견 국가들은 연대와 다자 규범이 최선책”이라고 말했다. 대만과 같이 한국과 비슷한 처지인 국가들과 공동으로 목소리를 내며 트럼프 행정부를 다자통상체제 안으로 이끌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태호(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아시아 국가들이 EU와 함께 트럼프의 통상정책에 조직적으로 공동 대응하는 채널을 만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말했다.

  양자협상 준비도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시욱 교수는 한국의 통상정책을 다자주의 관점뿐만 아니라 양자주의 관점으로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WTO 체제 내에서 통상정책을 구상했다면 앞으론 외교·경제협력 정책들을 함께 조화시키며 양자관계 개선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원목(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는 “안보·테러리즘·이민이슈 등이 통상협정에 포함한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협상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근본적 대응책은 한국의 통상정책 체질 개선이다. 강인수 원장은 국내 통상 기능 위상과 역할 재조정을 언급했다. 현재 한국의 통상담당조직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통상차관보가 지휘하고 있다. 과거 외교부 소속 장관급인 통상교섭본부가 있었지만 2013년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되면서 차관보급으로 격하된 것이다. 강인수 원장은 “통상교섭본부의 부활이나 미국처럼 대통령 직속 통상교섭기구 설립 등 국제 통상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국내 통상전담조직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의 통상규제에 대한 역량 강화도 강조됐다. 특히 중소기업에 대한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고준성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의 경우 무역 구제대응을 위한 담당 부서나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의 경우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미국의 반덤핑 관세 같은 수입규제에 직면한 중소기업을 지속해서 지원해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글 | 김태우 기자 god@
그래픽 | 김나영 기자 me0@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