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부터 21년째, 정겨운 제기동 골목길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바로 대성집 박현섭(남·55) 사장이다. 박현섭 사장은 고향인 포항에서 80년대에 서울에 올라온 이후 줄곧 고려대 주변을 지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장사가 하고 싶어 안암동으로 올라와 로터리에서 분식집을 했는데, 그 당시에 분식집이 2개밖에 없어서 그런지 장사가 정말 잘됐어.” 군대를 제대한 후, 공고에서 배운 기술을 이용해 대기업 공장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박 사장이 다시 찾은 곳은 결국 고대였다. “군대 가기 전에 했던 분식집을 군대 가면서 5촌 아저씨한테 주고 갔는데, 84년에 제대하고 그 옆에 바로 분식집을 또 차렸지.”

  더 큰 가게를 운영하기 위해 제기동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처음부터 장사가 잘 되진 않았다. 젊은 분위기의 안암동과는 다른 제기동의 투박한 분위기 때문이었다. “안암동에서는 손님들이랑 인사만 하면 됐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더라고.” 박 사장은 대성집이 투박한 제기동 골목에 어울리도록 학생들 이름이 뭔지, 과는 어딘지 외우고 학생들과 형 동생관계로 지냈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학생들에게 가게를 통째로 맡긴 적도 있었다. “학생들이 술집에서 삼삼오오 모여 토론하고 그러면 날이 금방 가. 근데 애들이 갈 술집이 없잖아, 나도 퇴근을 해야 하고. 그럴 땐 그냥 학생들한테 놀고 싶을 때까지 놀라고 열쇠를 줘버렸어.” 가게 주인은 없어도 계산은 잊지 않은 학생들을 떠올리며 박 사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아직도 찾아오는 그 시절, 그 동생들은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어도 여전히 박 사장에게는 철없는 대학생이었다.

  학생들이 대성집을 찾는 이유는 가족 같은 사장님과 더불어 한 가지가 더 있다. 매콤한 닭갈비와 고소한 고추튀김이 그 주인공이다. “이 골목이 다 선술집이어서 분식을 팔기는 그렇더라고. 그래서 닭갈비를 팔았어. 닭갈비는 이 골목에서 내가 제일 먼저 만들었어.” 박 사장은 메뉴 개발이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메뉴는 건너편 집에 알려주기도 했다. “고추튀김이 인기가 많아서 건너 편 집에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주기도 했었어. 그런 게 사람 사는 것 같아.”

  작년 8월, 대성집엔 장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화재가 발생했다. 고연전 같은 축제로 학생들이 한참 술집을 찾는 9월까지 장사를 못할 뻔한 상황이었지만, 학생들의 응원에 힘입어 박현섭 사장은 복구에 열을 올렸다. “화재가 나니까 졸업한 애들도 찾아와서 팔아줬어. 내가 참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대성집의 벽에는 ‘우리가 진짜다!’, ‘즐거운 고연전 날에’ 등 학생들의 장난과 각오가 섞인 낙서가 가득했다. “작년 8월에 화재가 나서 가게를 복구하고 나니 애들이 대성집 치고 너무 깔끔하다면서 낙서를 하더라고. 뭐 어쩔 수 있나, 그냥 마음대로 하라고 했지.” 벽에 적힌 수많은 이름만큼 사장님에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학생들이 많다. “집이 가난한 학생이 한 명 있었는데, 나한테 돈이 없으니 외상을 부탁한다고 했었어. 후배들 사준다고 데리고 왔는데 내가 기죽이기 그렇더라고. 그렇게 졸업할 때까지 외상을 하더니 취직 하고 나서 다 갚았어.”

  특히, 박현섭 사장은 어린 학생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20살, 21살밖에 안 된 애들이 와서 힘내라고 하고 SNS에 올려주고 평생 못 잊을 것 같아. 고대 학생들은 어디 가서도 사랑받을 애들이야.”

  박현섭 사장의 삶에서 고려대학교는 뺄 수 없는 단어였다. “고대 말고 다른 곳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여기서 살고 돈 벌고 고대는 내 인생의 전부야.”

 

글|공명규 기자 zeromk@
사진|고대신문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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