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삶을 원하십니까? 안전한 작업일 때 보장됩니다.' 펜스의 문구가 무색하게 위협업무를 하청받은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사진 | 이민준 기자 lionking@

  경남 거제 삼성중공업 사업장에서 노동자 6명이 크레인에 깔려 사망했고,
2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5월 1일 노동절에 일어난 비극이다. 22일 서울 지하철 9호선 연장 공사 현장에서는 건설 장비가 넘어져 노동자 2명이 사망하고 1명이 다쳤다. 두 사건의 당사자들은 모두 사용자 측에 간접 고용된 노동자다.

  연일 노동자의 비극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여러 이유로 모든 노동자의 업무 환경이 안전하진 않다. 특히 간접 고용된 노동자에게 다수의 산업재해가 몰리는 실정이다.

계속해서 확산되는 간접고용
  현재 대한민국의 위험 업무를 담당하는 다수의 노동자는 간접고용 돼 있다. 간접고용은 회사(원청)가 파견·용역·하청 업체와 계약을 맺어 해당 업체의 노동자를 간접적으로 고용하는 것을 뜻한다. 간접고용은 인건비를 줄일 수 있고, 고용인원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청에 큰 이점이다. 간접고용 중에서도 동일 사업장 내에서 원청 정규직과 함께 일을 하는 사내하청 비율이 가장 높다. 2016년 고용노동부에서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의 사업장을 대상으로 벌인 고용형태 공시제에 따르면, 해당 조사에 참여한 사업장의 51.1%가 사내하청과 근로자 파견 등을 활용하고 있다.

  정부가 총액인건비제도를 유지하는 한 공공부문 기업들은 노동자를 간접 고용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은 기획재정부로부터 할당받은 인건비 예산 내에서 인력을 채용한다. 예산상의 이유로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는 경우, 각 기관은 간접고용이라는 선택지를 활용한다. 용역·파견·하청 업체와의 계약은 인건비가 아닌 사업비 사용으로 분류돼서다.

  민간부문에서도 정규직 채용에 대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민간 기업은 간접고용을 늘릴수록 금융기관과 주식시장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 기업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척도 중 하나가 매출액 대비 경직성 비용 지출 비중이고, 대표적인 경직성 비용이 정규직 직원의 인건비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박관성 연구원은 “이런 상황은 기업의 간접고용 사용 유인을 더욱 높이게 됐다”고 말했다. 

▲ 그래픽 | 김나영, 박주혜 기자 press@

간접고용에 따른 위험의 전가
  2014년 OECD 가입국 중 대한민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이 1위를 기록했다. 1년 동안 노동자 10만 명 당 1만 800명이 죽었다. 그중에서도 원청에 간접고용 돼 있는 하청 노동자가 위험한 노동 환경에서 더 많이 죽는다. 2017년 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원청 노동자의 7배가 넘는 하청 노동자가 업무상 사고로 사망했다. 하청 노동자 업무 환경의 안전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다.

  하청 노동자들의 산업재해 위험은 간접고용 구조 자체의 탓이 크다. 원청이 하청에 작업 기간 단축을 요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다수의 하청은 원청의 작업 기간 단축 요구에 노동자의 작업 시간을 연장하는 방법으로 대응한다. 이에 하청 노동자들은 작업 시간 연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작업을 빨리 마무리하려 한다. 촉박한 시간 속에서 서둘러 작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 위험이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중공업 하청에서 27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영배(남·54) 씨는 “원청이 원하는 기한이 다가올수록 심적 부담감을 느낀 채 작업을 하게 된다”며 “안전시설이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작업에 쫓기다 보니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원청과 하청의 계약이 6개월에서 2년 단위로 이뤄지는 것도 산업재해 위험을 증가시키는 요인이다. 재계약 시점마다 하청 노동자들은 고용 불안에 시달린다. 고용 불안에 따라 하청 노동자들은 잦은 이직을 하기도 한다. 이 경우 노동자들의 작업환경 적응도가 낮아 사고 위험이 증가된다. 박관성 연구원은 “결국 간접고용은 하청으로 하여금 작업 과정뿐 아니라 위험에 대한 비용과 책임을 전가한 것”이라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하청 노동자의 업무에 필요한 사전 교육, 작업 매뉴얼, 안전 보호 장비는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에 따르면 원청은 하청과 함께 노동자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공동노력의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일부 원청이 하청 노동자에게 안전보건교육을 진행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하청 노동자에게 교육이 제공되긴 힘들다. 다수의 하청이 교육을 진행할 형편이 안 돼서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박종식 연구원은 “하청 자체적으로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산안법에 따라 상시노동자 100인 이상인 사업장은 분기별로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실시한다. 하지만 간접고용이 일찍부터 발달한 건설업을 제외하곤, 하청이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참여하는 경우는 드물다.

원·하청이 같이 책임져야
  전문가들은 원·하청이 함께 하청 노동자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원청이 하청에 책임을 전가하는 현재의 구조가 단절돼야 한다. 하청 노동자가 직면하는 위험이 원청의 사업장에서 발생해서다. 박종식 연구원은 “원청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 소유의 시설과 장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경우 하청 자체적으로도 안전보건관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며 “사업장 전반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원청에도 부과하는 것을 기점으로 더욱 구체적인 방향이 모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원청은 산안법상 ‘근로자’의 정의를 들어 안전보건교육을 위해 하청 노동자를 소집하는 것이 불법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산안법상 근로자는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다. 이에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연구소 조기흥 실장은 “원청이 안전보건 교육을 위해 하청 노동자를 소집시키는 행위가 불법이라는 판결은 없었다”며 “하지만 논란의 여지를 막기 위해선 근로자를 ‘임대, 용역, 사내하청 등 계약 형태와는 관계없이 사업주의 사업 수행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바꿀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유해·위험 업무에 대한 사내하청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원청이 산업재해 발생으로 인한 비용 지출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 안전보건교육과 안전설비 설치 등을 위해 노력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한국노동보건사회연구소 정재현 상임 활동가는 “하청 노동자가 최소한의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보호받기 위해선 원청의 직접 고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조기흥 실장은 “유해·위험 업무에 대한 사내하청 금지가 어렵다면 사내하청 시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비용을 포함해 계약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재해 발생 시 원청 사업주에 대한 처벌 수위를 상향시키기 위한 법 제·개정도 요구된다. 산안법상 하청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할 경우 하청에 대해 최대 1억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원청에 대해선 최대 2000만원이다. 징역형은 웬만해선 부과되지 않으며, 부과돼도 임원이 처벌받긴 힘들다. 심재진(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산안법상 원청과 하청에 대한 형벌 수준이 경미하며, 형벌 수준도 다르다”며 “현재 법 체계와 법 논리로는 원청에 경각심을 주기 힘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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