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운산 자락에 위치한 본교 서울캠은 경사가 심한 곳이 많아 장애학생의 이동이 어렵다. 산을 깎아 만든 세종캠도 장애학생이 이동하기에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본교의 장애인 이동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재학 중인 지체장애학생 3인을 만났다. 장애학생들은 비장애인이 일상적으로 걷던 길을 ‘고군분투’해 지나가야 했다. 그들은 등굣길을 낭떠러지라고, 캠퍼스를 체념의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 유리벽이 된다
  이번 학기 본교 대학원에 입학한 변재원(대학원·행정학과) 씨는 본교 기숙사 입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홀로 보행하기 힘든 변 씨가 보호자인 아내와 같이 거주하길 원했지만, 본교 학생 기숙사에선 남녀 공동생활이 불가해서다. 교직원 기숙사는 공동생활을 허용하지만, 120만 원의 기숙사 비용은 학생 신분인 변 씨에게 부담이었다. 변 씨는 “학교가 시설 측면에서 장애학생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개강한 지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동안 변재원 씨는 많은 시설 문제와 마주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화장실이었다. 현재 법학관 신관 장애인 화장실은 청소도구함으로 이용되고 있고, CJ법학관 화장실은 문이 제대로 여닫히지 않는다. 변 씨는 “시설 수준 자체는 만족스럽지만 관리 점검이 되지 않아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불편을 겪고 있는 장애학생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는 인상이 든다”고 말했다.

  비장애인들이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 변 씨에게는 큰 위험 요소가 되기도 했다. 지난 5일 변재원 씨는 백주년기념관 화장실에서 크게 다칠 뻔했다. 화장실을 청소하기 위해서 뿌린 물에 목발이 미끄러져 넘어졌다. 변 씨는 “화장실 앞에 간이 팻말을 세우는 작은 노력만 했어도 문제를 예방할 수 있었다”며 “큰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장애인에 대한 관심만 있으면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법학관 신관, 청소도구로 가득 찬 장애인 화장실. 옆에는 청소도구함이 보인다. 사진 | 심동일 기자 shen@


자연캠과 인문캠을 편히 오갈 수 있다면
  이번 학기에 복학한 최지연(생명대 생명과학13) 씨는 듣고 싶었던 교양수업을 끝내 포기했다. 하나과학관에서 열리는 전공 수업을 마치고 시간 내에 교양 수업이 열리는 우당교양관까지 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최 씨는 “안암역 부근이 워낙 혼잡해 목발을 이용해 이동하는 것은 어렵다”며 “전동휠체어의 경우에도 이공계 후문에서 안암역 사거리로 내려가는 길이 좁고 가팔라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셔틀버스를 이용한다면 이동이 비교적 수월하겠지만, 본교 셔틀버스는 장애학생들이 이용하기 불편하다. 최 씨는 “본교 셔틀버스는 저상버스가 아니어서 전동휠체어를 사용할 경우 셔틀버스 이용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셔틀버스 노선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실제로 최 씨는 실험실습 수업이 있던 녹지캠퍼스에서 교양관으로 가는 버스 노선이 없어 곤란에 처하기도 했다. 최 씨는 “시간을 들여 개운사 차고지에 들린 뒤 라이시움 방향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 했다”며 “시간이 촉박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야 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수업에 늦은 적이 많아 교수님께 사정을 얘기하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최지연 씨가 기숙사에 편히 가기 위해선 방과 후 다른 활동을 할 수 없다. 5시 반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 막차를 놓치면 기숙사 가기가 힘들어져서다. 장애학생지원센터에서 전동휠체어를 대여해주지만 방과 후 다시 반납해야 해 기숙사를 갈 때 이용할 수 없다. 이 경우 목발을 사용해 경사가 심한 기숙사 길을 걸어 올라가야 한다. 최 씨는 “기숙사 가는 길의 경사가 가팔라 셔틀버스가 없으면 이동하기 힘들다”며 “학교 측에서 셔틀버스 배차 간격을 줄이거나 미니밴 등 장애학생을 위한 이동수단을 마련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현재 본교 양 캠퍼스에는 저상 셔틀버스가 도입되지 않아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학생이 불편을 겪고 있다. 사진 | 김혜윤 기자 cutie@


학교의 적극적인 문제 개선 노력 필요해
  손승욱(과기대 컴퓨터융합17) 씨는 현재 기숙사 진리관 1층에 거주하고 있다. 지체장애학생에게 기숙사 1층 호실을 제공해 생활 불편을 최소화하려는 본교 방침 덕분이다. 이처럼 장애학생을 위한 일부 정책이 시행되곤 있지만, 본교 다른 정책과의 괴리가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손 씨의 건의로 진리관 5층에 전자레인지가 설치됐지만, 손 씨가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데에는 여전히 제약이 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엘리베이터가 매달 홀수층과 짝수층을 번갈아 운행돼서다. 손 씨는 “짝수 운행 달에는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수 없어 답답하다”며 “장애학생 당사자 입장에서 시설 개선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씨는 학교 측이 장애학생 시설 보수에 대해 수동적이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실제 세종캠 장애학생 편의시설 보수의 대부분은 사후 학생 제보로 이뤄지고 있다. 학교가 제보를 받기 전에 문제되는 시설을 파악해 적극적으로 개선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에 종종 위험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일례로 손 씨는 지난 방학에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동기들과 농심국제관 뒷길로 내려가던 중 급경사에서 미끄러지면서 손 씨를 보조하던 친구와 함께 넘어졌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옆에 도랑이 있었기에 자칫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손 씨는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학교가 적극적으로 장애학생과 대화해 문제를 찾아 해결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 세종캠 농심국제관 뒷길은 경사가 가팔라 장애학생이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 사진 | 김민준 기자 ith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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