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박주혜 기자 joohehe@

학습지 방문교사, 대리기사, 방송작가, 보험설계사, 요구르트 판매원, 택배 배송기사…. 일상에서 항상 마주하는 이들 모두가 특수고용노동자다. 법률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되지만, 경제적으로는 사업주에게 종속돼있다는 점에서 일반 근로자와 유사하다. 그러나 이들을 지칭하는 행정용어는 근로자도, 노동자도 아닌 ‘특수형태근로종사자’다.

특수고용노동자는 1990년대를 전후해 교육과 운송, 판매 등 일부 서비스업무 직종에 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규직들이 특수고용노동직으로 전환되기도 했고 배달 앱 기사처럼 새로운 직종이 생겨나기도 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5년 발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특수고용노동자는 230만 명에 이른다. 이는 2014년 전체 취업자의 8.9%에 달하 는 인원이다. 노동자와 다름없이 일하지만, 각종 권리의 사각지대에 방치돼있는 특수고용노동자들. 이들의 권리 보호방안에 대한 논의는 2000년부터 계속됐지만, 경과는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자영업자와 노동자, 그 사이 어딘가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도급계약, 위임계약 등을 맺거나 별도의 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노무를 제공한다. 보험계약을 성사시키고 수업 과목을 늘리고 더 많이 배송하면 수수료가 올라가는 구조다. 얼핏 보면 ‘열심히 일하면 많이 벌 수 있는 구조’로 보이지만, 사업주에게 경제적으로 종속돼있어 온전한 개인사업자라기엔 무리가 따른다. 직접·간접적으로 업무를 지시받고 관리자의 감독 하에 일한다는 점에선 일반 근로자와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도 개인사업자로 간주돼 근로자가 받는 여러 가지 법적 보호를 동일하게 적용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은 특수고용노동직의 사용종속성을 판단하기 위한 9가지 지표를 제시했다. 그러나 기준이 복잡하면서도 모호해 특수고용노동직의 노동법적 지위를 명확히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법무법인 여는’의 신인수 변호사는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법원이 제시한 9단계의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만 한다”며 “‘대학입시학원 강사’는 근로자이고 ‘입시학원 강사’는 근로자가 아니고, ‘학원버스 지입차주기사’는 근로자지만 ‘중기 지입차주 겸 운전자’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은 구체적 사안이 다르다고 하더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개인사업자’여서 보장 받지 못하는 4대보험
230만 명에 달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4대 사회보장제도 중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배제돼왔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법률상으로 사업주와 ‘고용 관계’에 있지 않아 고용 보험 가입이 불가하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경우 일자리가 없어진다 한들 실업급여 등의 보호를 받지 못 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재보험 의무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산업재해 보상보험법에 따르면, 1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모든 사업장이 산재보험 의무가입 대상이다. 일반 근로자가 취업 후 곧바로 산재보험에 자동 가입되는 것과 달리 특수고용노동자는 원칙적으로 산재보험 가입 대상이 아니다. 이에 정부는 특례규정을 둬 일부 9개 직종에 대해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이 특례규정이 특수고용노동자를 명시적으로 보호하는 유일한 법령인데도 산재보험 가입률은 턱없이 낮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16년 7월 기준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0.9%에 불과하다. 노동 인권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박성우 노무사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이 의무가 아닐뿐더러, 사업주가 보험료를 온전히 부담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50%의 자기 부담이 적용된다”며 “본인도 돈을 내야 하는 반쪽짜리 보험이니 가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회사 측에서 산재 보험을 권장하지 않기도 한다. 몇십장짜리 위촉계약서에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교묘히 끼워 넣거나, ‘단체 보험을 들어 놨는데 산재보험이 굳이 필요하냐’는 식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9개 직군 이외의 특수고용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을 적용시키고, 부담률도 근로자와 동일한 수준으로 개정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동3권 보장이 가장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3권을 비롯해 ‘노조할 권리’가 없는 실정이다. 각 특수고용노동직이 세운 노조들은 이름만 노조일 뿐, 정식 등록되지는 않은 경우가 대다수다. 노조를 결성해 등록하려 해도 관련 부서에서 반려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 8월 31일 서울택배연대노동조합에서는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기에 노동조합이 더욱 절실하다”며 서울지방노동청에 설립필증을 신고하고 발급을 요구했다. 보통은 3일 이내에 행정처리가 완료되지만 정부기관에서는 계속해서 자료요청을 하면서 결정을 연기하고 있다.

계약을 해지당하거나, 불리한 계약을 체결해도 호소할 곳이 없다. 오세중 보험인권리연대 위원장은 “불리한 조항 때문에 업무상 불이익이 있을 때, 여러 부처에 민원을 제기해봤지만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서는 민원을 거부했다”며 “설계사가 근로자도, 소비자도 아니라는 이유였고, 공정거래 위원회 또한 회사의 정책에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정부 기관은 ‘회사와 협상하라’며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돌려보내지만, 노동3권이 없기에 단체교섭을 벌여봤자 무용지물이다. 황창훈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은 “노조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져도 회사에서 지키지 않으면 그만”이라며 “단체협약을 어기는 사업주를 법적으로 제재할 방도가 없어 문제”라고 말했다. 황창훈 위원장은 “특수고용노동직이 자기 권리, 공동의 이익을 찾을 수 있는 핵심이 바로 노동조합을 통한 단체행동”이라며 “노동조합 설립과 단체협약 이행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많은 권고에도 개선은 더뎌
직종별로 부당한 일이 다양하게 벌어지지만 그 원인은 모두 ‘고용의 외부화’에 있다. 신인수 변호사는 “노동자를 통해 얻은 이윤은 사유화되고 월급 지급의무와 각종 보험 등, 비용과 책임은 외부로 돌려진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처우는 악질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국제노동기구(ILO) 등 관련 기구는 지속적으로 특수고용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해왔다. 국가인권회는 2007년부터 지속해서 특수고용노동자의 권리보장을 권고했으며 올해 4월 6일에는 고용노동부 장관과 국회 의장에 입법적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관련 법령을 개정하라고 촉구했다.

계속해서 특수고용노동직의 노동권 문제가 대두됐지만 근 20년간 달라진 것은 없다. 문재인 정부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과 고용·산재보험 가입 의무화를 공약했지만, 정부와 법원, 국회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정애 의원이 2월에 대표발의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현재 계류 상태다. 신인수 변호사는 “지금까지의 입법 경과와 국회 역학관계를 고려했을 때, 특수고용노동자 관련 입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작다”며 국회에 의한 권리 보장을 난망했다.

법원 또한 노조법상 ‘근로자’ 지위에 대해 협소한 법리해석을 지속하고 있다. 특수고용노동자 문제개선이 시급한 만큼, 당장의 방안으로 행정권 발동이 제시되기도 한다. 신인수 변호사는 “정부부처의 적극적인 행정해석과 행정지도, 가이드라인 제정을 통해 특수고용자의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사용자의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고, 산재보험을 실질화하는 등 최소한의 권리보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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