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도입된 산업기능요원 제도는 한국의 경제성장과 함께 해왔다. 그중 1989년은 산업기능요원 제도의 변곡점이었다. 당시 대우정밀과 풍산금속 안강공장(풍산)에서 병역특례 노동자(현 산업기능요원)가 노동 운동을 벌였다는 이유로 무더기 해고됐다. 해직된 요원들은 복직과 제도 개선을 주장하며 투쟁에 돌입했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났다. 치열한 투쟁의 역사에도 산업기능요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여전하다. 1989년 풍산에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했던 허태구(남·52세) 씨와 2017년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 중 그만둔 21세 임 모씨의 인터뷰를 좌담회 형식으로 풀었다.

▲ 2008년 복직권고에도 불구하고 풍산 산업기능요원들에 대한 복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미지 출처 | 비즈한국

- 산업체를 그만둔 이유는
허태구(과거) |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해고됐다. 1980년대 산업기능요원은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존재였다. 노동자와 군인이라는 최하층 계급을 동시에 안고 있어 열약한 노동 환경에 방치되곤 했다. 그러던 중 사내에서 폭발 사건이 발생하면서 무고한 산업기능요원이 희생당했다. 안전한 노동환경을 위해선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채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다른 요원들과 함께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당시 산업기능요원에게 노동조합은 금기에 가까웠다. 사측은 노조 활동에 강력하게 대응했다. 정부도 군인을 동원해 노조를 탄압했다. 그 과정에서 강제해고 당했다.”

임 모(현재) | “폭언과 욕설에 시달리다 자발적으로 그만뒀다. 그동안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인권 실태가 개선됐지만 산업기능요원은 여전히 ‘을’을 담당하고 있다. 근무 중 담당자에게 수시로 “XX 자식”, “XX 놈”과 같이 인격 모독성 욕설을 들어야 했다. 산업체 측은 수당 없는 추가 근무를 강제하기도 했다. 그러고선 ‘불만이 있으면 나가도 좋다’ 식의 태도로 일관했다. 산업기능요원에겐 불만 사안이 있을 경우 사실상 회사를 나가는 것 이외에 선택지가 없다.”

 

- 이외에 근로기준법 위반 사례를 경험한 적 있나
과거 | “내가 속한 산업체에는 교회에 다니는 산업기능요원들이 여럿 있었다. 일요일에는 종교 시간이 필요했지만 회사에선 업무가 밀렸다는 이유로 강제로 주말 출근을 시켰다. 이것만으로도 근로기준법 위반 사안이었다. 나아가 잔업과 특근이라는 명목으로 종교의 자유까지 침해한 거다. ‘똥카드’라는 제도도 있었다. 화장실을 오갈 때 담당자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러다 행여나 담당자에게 밑 보이면 구타당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그래도 크게 저항할 수는 없었다. 산업체에서 해고를 무기로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 “전염성 눈병에 걸려 응급실에 입원한 적이 있다. 출근이 어려워 병가를 내야 했지만 회사에선 접수를 거절했다. 거짓말인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몸 상태를 확인하겠다며 출근시켰고, 그대로 그날 정상 업무를 하게 했다. 행여나 함께 복무하는 동료 요원들에게 옮았다면 더 큰 문제가 됐을 것이다.
가끔은 산업기능요원이라는 게 죄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을 대부분 산업기능요원의 책임으로 돌렸다. 숙련공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때론 해고시키겠다는 투의 협박을 듣기도 했다.”

 

- 산업체를 그만두게 되면서 병역 이행에 차질이 생겼나
과거 | “당시에는 해고당할 경우 법원의 판결과 관계없이 바로 현역으로 재입대해야 했다. 산업기능요원으로 5년 만기에 가까이 복무한 나의 경우 해고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재입대를 거부했고 햇수로 8년 동안 수배 생활을 해야 했다. 결국에는 해직 동료들과 힘을 모아, 해고될 경우 산업기능요원 복무기간에 비례해 재입대 기간을 줄이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했다. 2008년에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위원회’로부터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받아 복직 권고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산업체 측에서는 복직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당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며 입었던 피해가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거다.”

현재 | “원래는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며 경험을 쌓고 생활 자금을 마련하려 했다. 지금은 4급 판정을 받아 사회복무요원으로 재복무할 생각이다. 공부를 하며 사회복지요원 응시 날짜를 기다리고 있다.”

 

- 산업기능요원 제도가 어떻게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과거 | “그간 산업기능요원은 사람이 아니라 공장 부품과도 같은 취급을 받아왔다. 앞으로는 무엇보다도 인간다운 대우가 우선돼야 한다. 이를 위해선 산업기능요원 스스로부터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등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서야 한다. 쉽지만은 않겠지만 개선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현재 | “실질적인 개선점을 찾으려면 현장에 있는 산업기능요원에게 직접 문제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상 산업기능요원들이 문제를 건의할 창구가 많지 않다. 사내에 부당 대우가 있었는지 물어보는 제도가 마련된다면 문제 개선이 지금보다 수월해질 거다. 병역지정업체 선정을 취소하거나 산업체 지원을 축소하는 페널티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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