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복무 중인 산업기능요원 5인의 인터뷰와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산업기능요원의 시점에서 재구성했다.

▲ 일러스트 | 주재민 전문기자

나는 때로는 노동자로, 때로는 군복무자로 불린다.

노동자로서 나는 근로계약에 따라 급여에 맞는 노동을 제공할 의무를 진다. 하지만 암묵적으로는 계약한 것 이상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요받곤 한다. 병역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복무자이기에 당연히 헌신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이렇게 노동자와 군복무자 사이에서 줄타기 중인 나는, 산업기능요원이다.

대부분의 산업기능요원들은 공장 생산직으로 배치된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주로 일반 직원들이 꺼리는 업무를 담당한다. 계량기 제조 회사에 다니는 나는 실리콘으로 핵심 부품을 붙이는 실링 작업을 맡고 있다. 작업 자체가 고단하지는 않지만, 1급 발암물질 성분이 들어간 실리콘 시료를 만져야 해 충분한 주의가 필요하다. 회사 측에서 위험 성분이 있다는 걸 사전에 알리지 않아 업무 초기에는 영문도 모른 채 며칠을 앓아야 했다. 작업하는 와중에 두 눈이 충혈되고 피부가 벗겨지기 일쑤였다. 주어진 안전 장비는 장갑 한 짝과 공업용 마스크 하나뿐. 그마저도 작업을 시작하고 며칠 뒤에나 지급됐다. 회사에선 그저 “힘들면 환풍기를 틀어보라”고 말했을 뿐이다.

가끔 현역병으로 복무 중인 친구들이 사회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겠다고 부러워하곤 한다. 하지만 일과를 돌이켜 볼 때 산업기능요원 생활이 그리 여유롭진 않다. 회사 내에서 까다로워 손이 많이 가는 일은 대부분 산업기능요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퇴근 시간이 늦어지곤 한다. 평균 업무 시간은 하루 11시간이 넘는다. 다른 산업체에서 복무 중인 친구는 한 달에 300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사회에 나와 있긴 하지만 업무에 매여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때론 조기 출근을 강요받기도 한다. 내가 속한 회사의 경우 오전 8시 반이 정상 출근 시간이지만 7시부터 나오라는 지침이 있었다. 회사는 우리가 임금 가치 이상을 일하길 원한다. 별다른 수당이 제공되지는 않는다. 나로서는 병역 복무 중이기에 져야 하는 짐이 많다고 생각해야 할 뿐이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나를 포함한 산업기능요원들은 대부분 중소기업에 다닌다. 직원이 많지 않기에 적정량 이상의 업무가 할당될 수도 있다. 그래도 부당하게 생각되는 건 회사가 강제로 초과 근무를 시킨다는 점이다. 초과 근무에는 노동자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산업기능요원에 대해선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렇게 잔업과 초과 근무가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살다 보면 정신 차릴 새 없이 일주일이 지나 있다.

회사에서는 산업기능요원이 불합리한 처우에 항의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업무 외의 일을 시키기도 한다. 산업기능요원은 회사의 요구라면 무조건 따라야하는 입장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때로는 시공업자가, 미화원이, 파출부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회사 외벽 수리를 위해 마땅한 안전장비 없이 지게차의 지게 위에 올라 페인트칠을 해야 했다. 만약 중심을 잃어 넘어지기라도 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아마 사회에서 산업기능요원에게 기대하는 역할도 바로 그런 부분일 것이다. 산업기능요원은 언제나 ‘인적 자원’으로 거론될 뿐이었다. 언론에서 산업기능요원은 ‘1조원 가치의 경제적 부를 창출해내는 산업 역군’ 정도로 소개된다. 산업기능요원 개개인의 권리와 노동 환경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물론 산업체 중에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고 산업기능요원을 정직원과 동일하게 대우해주는 곳도 많다. 군사교육을 받을 때 만났던 산업기능요원들 중에는 자기 직장에 만족하는 경우도 여럿 있었다. 산업체에서의 업무를 경험삼아 복무 후 진로를 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산업기능요원과 젊은 노동력을 원하는 산업체 모두에게 이로운 ‘모범’ 사례다. 하지만 그런 얘기는 나 같은 일부 산업기능요원들에겐 공허한 미담일 뿐이다. 대개 산업기능요원은 회사에 부조리함을 느껴도 참아야하는 ‘을’이다.

산업기능요원의 복무 인정은 오롯이 산업체에 달려있다. 산업체에서 해고당하는 순간 제도 밖으로 내몰린다. 산업체에서 해고된 산업기능요원은 현역병이나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하게 된다. 이때 산업체에서의 복무기간 4개월이 군 복무 1개월로 인정된다. 물론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거나 법원 소송을 통해 편입 취소(산업기능요원 복무 자격 상실)를 유보할 수 있지만 시간적 경제적 부담이 크다. 그래서 회사가 불합리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해도 참고 버텨야 한다. 만에 하나 해고될 경우 군복무와 인생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에.

지난달에는 외부 업체에 파견 근로를 나간 적이 있다. 외근은 종종 있는 일이다. 하지만 원칙상 산업기능요원은 병역지정업체 이외의 장소에서 일할 수 없다. 편입 취소에 해당하는 심각한 위반 사안이다. 적발돼도 산업체는 병역지정업체 지위를 포기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산업기능요원인 나는 귀중한 시간과 경력을 뺏길 수도 있다.

산업기능요원은 일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근로기준법상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통하지 않는 원론적인 얘기일 뿐이다. 실제로 연차나 월차를 쓰려 해도 반려되곤 한다. 지난달에는 올해 처음으로 연차를 내려 했지만 ‘그렇게 책임감 없이 행동하면 해고시켜 버리겠다’는 담당자의 폭언과 함께 거절당했다.
다행히 병무청에선 산업체의 불법행위를 예방하기 위해 신규 편입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나도 소속된 지방병무청에서 복무규정과 위반행위신고제도에 대해 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하지만 상공회의소에서 진행한 형식적인 교육이 현장에서 벌어지는 부당대우를 대처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산업기능요원으로서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법을 배우는 중요한 시간이었지만 권리보단 의무를 배웠다. 심지어 교육이 끝나고 난 후에는 다시 현장으로 가 일해야 했다. 교육이 야근과 휴식으로 지친 몸을 달래는 휴식 시간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비롯한 산업기능요원들이 바라는 건 뛰어난 수준의 복지도, 편한 업무 환경도 아니다. 그저 법률상 명시된 노동자의 권리,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해주길 원한다. 법률로 정해진 만큼 일할 권리, 일한 만큼 급여를 받을 권리, 모욕적인 인권 침해를 겪지 않을 권리.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작은 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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