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 | 박주혜 기자 joohehe@

시사주간지 ‘시사IN’이 9월 실시한 ‘2017년 대한민국 신뢰도 조사’에서 JTBC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방송매체 1위에 선정됐다. 가장 신뢰하는 언론인과 프로그램은 손석희와 <뉴스룸>이 각각 지명됐다. 지난해 같은 여론조사에서 KBS가 1위였던 것과 대조된다.

양대 공영방송으로 꼽히던 KBS와 MBC의 간판뉴스 시청률은 세월호 오보와 후속 보도, 국정농단 사태 등을 거치며 지난 몇 년간 꾸준히 하락했다. 공영방송의 방송제작과 보도개입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2012년 파업 참가자의 부당해고와 징계 전보, 공영방송 임원진들의 망언 등이 보도되면서 KBS와 MBC는 점차 국민에게 외면당했다.

우리나라 공영방송체계의 수직적인 지배구조는 꾸준히 지적돼온 문제다. 대통령·여당을 상위에 두고, 방송통신위원회-방송사 이사회-사장 순으로 이어지는 수직구조는 정치권의 방송 개입을 허용했다. ‘현 KBS·MBC 사장인 고영주·김장겸이 물러난다 해도 공영방송이 처한 위기는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50년간 누적된 공영방송의 위기
한국 공영방송은 1962년 국영방송이었던 KBS가 시청료를 받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공영방송은 시청자로부터 받는 수신료 등을 주된 재원으로 삼아 공공의 복지를 위해 운영된다. 마동훈(미디어학부) 교수는 “공영방송은 주인인 시민이 방송전파를 공정하게 활용할 책임자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것”이라며 “방송의 공공성과 공영성이 민영방송보다 더 엄격히 요구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을 위해 운영돼야 함에도, 한국 공영방송의 경우 그 체계가 잘 운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언론학자들의 평가다. 공영방송은 가장 손쉽게 국민의 귀를 통제할 수 있기에 정치권은 정권의 유지와 연장을 위해 공영방송을 좌우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선거철마다 정치인들은 공영방송의 정상화를 약속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마동훈 교수는 “한국 공영방송은 공영적 가치에 입각한 방송을 만들기 위해 시작됐지만, 운영과정에서 주요 정치집단의 이해관계가 투영되면서 공공성이 무너졌다”고 현 사태를 진단했다.


심화된 공영방송의 수직지배구조
대한민국 3대 공영방송사인 KBS, MBC, EBS는 각각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라 운영된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공영방송사 이사진을 선출하는 역할을 하는데, 방통위의 의결에 있어 여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방통위 상임위원은 총 5명으로, 대통령이 위원장을 포함해 2명을 지명하고, 여당이 1명, 야당이 2명을 추천한다. 여권 이사 3명, 야권 이사 2명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현재 방통위는 과반 찬성의 의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김민정(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결국 방통위의 중요사안엔 대부분 대통령과 집권당의 의견이 관철된다”며 “여당에 유리한 의사결정 구조는 공영방송 이사진 선임과 사장 임명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에서의 여야의 인사 추천 비율 또한 과도하게 비대칭적이다. KBS 이사진 11명은 관례에 따라 여권 추천 이사 7명, 야권추천 이사 4명으로 구성된다. MBC와 EBS의 경우 9명의 이사진 여야 비율은 6대 3이다. 관례로 이어져 온 이사회 여야 비율을 규정하고 있는 법령이 없어, 법적 근거가 없는 점 또한 문제로 지적된다.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는 여야 인사 수에 더해, 공영방송 이사회 또한 과반 찬성 의결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김민정 교수는 “공영방송이사회의 여야 인사구성 비율과 과반 찬성 의결이 맞물려 ‘대통령·여당-방통위-이사회-사장’의 수직체계가 강화된다”고 말했다. MBC 장인수 기자는 “자본에 구애받지 않고 시민을 위한 공정한 방송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 공영방송제도의 장점이지만, 현 정치권의 이사선임 제도가 공영방송의 공공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 '국민의 것'인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만, 개선은 더디다. 오랜 기간 여의도 KBS 본관 앞에 걸려 있던 대형 깃발이 빛바랜 채 나부끼고 있다. 사진 | 구자원 기자 9esource@

‘언론장악금지법’, 1년째 계류 중
공영방송사의 경영진 선임구조와 의결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속되자 국회는 ‘언론장악금지법’이라 불리는 4개의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6년 7월 21일 더불어민주당 박흥근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본 법안은 △모든 공영방송사의 이사회 구성을 13명으로 증원 △여야 추천 비율을 7대 6으로 규정 △방통위의 공영방송 임원의 추천·임명권 삭제 △공영방송사 사장 추천과 임면 제청에 있어 2/3 이상의 찬성을 요구하는 ‘특별다수제’ 도입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방통위 위원과 이사회의 비대칭적 구성이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해치고 공정성, 공익성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제안 이유를 명시했다.

다수 의원의 참여로 발의됐지만, 개정안은 1년 4개월째 계류 중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간사직을 맡고 있는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현실적으로 방송법 개정은 1년 이내 요원하단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유 의원은 법률안이 계류되고 있는 이유로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 찬반이 있고, 개정안이 통과되면 법 시행 후 3개월 이내에 이사회 및 집행기관을 재구성하게 되는데, 이에 자유한국당이 반대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하더라도 언론과 표현의 자유 확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 말했다.


공정한 공영방송 운영을 위한 논의 계속돼
‘언론장악금지법’이 현행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법률안이라는 데 그 의의가 있지만, 최소 의견만을 반영한 ‘소폭의 개정안’이라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김창룡(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현행법이나 개정안처럼 국회의원과 정치인에게 공영방송사의 이사 추천 전권을 맡겨놓는 방식으론 정파성을 탈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운영에 방송사 내부구성원 참여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조영수 협동사무처장은 법안에 대해 “이사 구성을 5대5 여야 동수로 구성하고, 방송사의 내부구성원 3명을 이사로 선임하는 방안 등을 논의해 제안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입 방안 중 하나로, 독일의 분권적 시민 모델도 자주 거론된다. 독일의 공영방송 이사회는  방송사별로 최소 17명에서 최대 60명으로 구성되는데, 사회단체, 종교단체, 노동조합 등 다양한 직능단체의 대표가 참여한다. 대규모이면서 다원화된 구성으로, 독일 공영방송은 현재 가장 분권적으로 조직돼있단 평가를 받는다. 김창룡 교수는 “이사 수가 많아지면 비밀 유지와 청탁이 어렵다”며 “한국도 이사를 33인으로 늘려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지역대표 등 범위를 확대해 방송의 공영성과 공공성,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해선 본 개정안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노력도 필요하다. 방송의 공정성을 우선시하는 경영진의 경영철학과 ‘임명하지만 관여하지 않는’ 선진 정치문화를 정립하는 것이 과제로 제시된다. 지금까지는 이사가 공영방송사를 관리, 감독할 때 여·야의 입장을 반영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져 왔다. 마동훈 교수는 “공영방송 임원진은 여·야의 추천으로 임명된 것이 아니고, 국민의 공영방송 운영권을 위임받은 것”이라며 “선출된 순간부터 이사와 사장은 공영적 가치와 국민의 뜻에 따라 공영방송을 경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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