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혜윤 기자 cutie@

개운하게 매운맛이 특징인 청양고추는 한국을 대표하는 채소로 알려져 있다. 놀라운 건 청양고추가 한국의 소유가 아닌, 다국적 종자기업 몬산토 소유라는 점이다. 우리는 청양고추 씨앗 하나당 60원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의 종자 회사들이 대거 외국으로 넘어가면서 청양고추에 대한 권리를 가진 중양종묘도 팔렸기 때문이다. 이후 국가적 노력으로 종자 주권이 많이 회복됐지만 국내 종자 관련 기업은 영세한 수준에 머물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국내 종자회사 대거 매각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국내에서 1~3위하던 주요 종묘회사들은 외국 다국적 기업에 매각됐다. 1997년 청원종묘가 일본 사카타사에 인수됐으며, 서울종묘는 스위스 노바티스사에 인수됐다. 국내 최대 종묘회사인 홍농종묘와 중앙종묘는 1998년에 다국적 기업인 세미니스사에 인수됐다. 김욱(생명대 생명공학부) 교수는 “최근 LG가 몬산토의 일부를 구매해서 절반 정도의 권리는 돌아왔다”며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대비해야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매각된 회사들은 채소류에 많은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채소에 대한 우리나라 종자 주권이 많이 낮아졌지만, 현재는 일부 회복된 상태다. 1997년 국내에서 심어지는 채소 종자의 65%가 외국 기업체에서 판매하는 종자였다. 그런데 2016년 말 다시 조사한 결과 채소 종자의 12%만이 외국계 회사에서 공급하는 종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뿐만 아니라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에 따르면, 식량종자는 종자의 98%가 국내 것으로 종자 주권이 굉장히 높다. 하지만 채소 종자 이외의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외과수의 경우에는 자급률이 낮아서 25% 정도만 우리나라 종자를 사용하고 있으며, 화훼의 경우 10% 선에서만 한국에서 개발된 종자를 심고 있다. 이에 고희종(서울대 작물생명과학과) 교수는 “몬산토코리아와 같이 우리나라에 있지만 외국계 회사가 가진 종자들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실질적 종자 자급률은 아직 60%밖에 되지 않는다”며 “그래도 식량 작물의 경우 우리나라가 거의 자급하는데, 이는 국가가 종자개발을 관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그래픽|박주혜 기자 joohehe@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종자 무역 역시 문제점 중 하나다. 국내 종자의 수출 규모는 2015년 5900만 달러에 불과한 반면 수입규모는 1억1800만 달러로 수입액이 수출액의 2배에 달한다. 과거와 대비해 종자수입 감소와 수출 증가로 적자 폭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국내 종자 산업의 영세성과 기술 격차는 여전하다.세계시장에서 입지 부족한 국내 종자산업
국가가 나서서 식량작물의 종자를 관리한 후로 종자 자급률은 많이 증가했지만, 민간부문의 종자산업이 소외되고 영세해지면서 종자 회사를 육성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한 상황이다. 종자 관련 업체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생산과 판매 중심의 소규모 업체들이다. 종업원 10명 미만의 기업수가 전체의 51%이며 100명이 넘는 기업은 8%에 불과한 실정이다. 품종 육성부터 가공처리 및 유통 판매까지 가능한 업체는 농우바이오 등 7개사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다국적 종자기업과 비교하면 매출액 규모도 작고 연구개발비용도 적어 경쟁력이 떨어진다. 고희종 교수는 “농우바이오를 제외하고는 종자회사들이 다 작다”며 “그래도 농우바이오는 세계 시장에 나가있는데 다른 종자회사들은 아직 세계시장에 진출할 경쟁력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종자는 주요 경제품목으로 그 자체로서도 가치가 크며 기름이나 의약품, 농산물 등 키워서 가공할 경우 그 가치가 50배 100배로 커진다. 또한 생물자원으로서 미래에 더 큰 가치로 다가올 가능성도 있다. 자원의 미래 가치는 쉽게 예상할 수 없기에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고희종 교수는 “개똥쑥같은 식물은 희귀한 질병에 대한 약재로 쓰여 의약품으로서 가치가 크다”며 “종자주권은 식량주권, 자원주권으로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종자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말했다.

 

민간기업 성장과 인재 육성 필요해
종자 산업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주도하의 ‘민간 기업 성장’과 종자 산업을 이끌어나갈 ‘인재 육성’이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먼저 영세한 기업들의 규모와 내실을 키워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한국의 종자시장은 다국적 종자 기업들로부터 침범당할 위험이 크다. 다국적 종자회사와 경쟁할 국내 민간 기업이 있어줘야 하는데, 특히 식량종자의 경우 정부가 싸게 판매하기에 민간이 시장에 진입할 틈이 없다. 종자 생산에 대한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과 관리 정도를 줄여나가고 종자의 생산과 유통을 민간에 맡겨 시장 활성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국립종자원 품종보호과 업무총괄 조일호 과장은 “식량종자 등과 같이 관주도로 발전해온 산업에 민간기업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민간기업의 이익이 상업용 식량종자에 대한 재투자로 이어지도록 하여 개발 역량을 갖춘 민간기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식량종자 산업에서도 시장경쟁 원리가 작동하도록 중장기 정책을 통해 민영화해야 한다. 아직 한국에는 농업이나 종자 회사를 지원하는 별도의 프로그램이 없다. 이러한 현실에서 빈약한 종자 회사들은 다양한 산업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에서 수혜를 받을 만큼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종자 회사는 생물을 다룬다는 그 특성상 성과를 내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별도의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고희종 교수는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계획적으로 종자 산업을 성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종자산업을 이끌어나갈 미래인재 육성은 매우 중요한 만큼 청년이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도 있다. 신품종 개발 작업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면서도 고되다. 조일호 과장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꽃과 다르게 배추꽃이나 무꽃은 아주 작다”며 “그런 작은 꽃을 밭에서 계속 수분 작업을 하다보니 힘들다”고 말했다. 게다가 품종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평균 10년 정도로 길다. 이러한 이유로 농업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은 줄어들고 있으며 학부에서도 농대는 없어지는 추세다. 현업에 종사하는 이들도 노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인재를 유입시키기 위한 적절한 보상체계가 마련하고, 농업에 대한 청년들의 관심을 높이기 위한 방안 역시 마련돼야 한다.

 

토종품종을 활용하고 전파해야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토종 종자에 관심을 가지며 우리의 건강권을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 토종 종자를 지키는 첫 걸음은 ‘산나물의 상업화’라는 목소리가 있다. 외국에서 들여온 품종을 국산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산나물 같은 우리의 토종 품종을 전파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우리나라 고사리는 중국의 고사리보다 그 맛과 품질에 있어서 우수하지만 가격이 5배 이상 차이나기 때문에 누구도 선뜻 찾지 않는다. 종자로 개발해 단가를 줄이고 품질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켜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산나물을 찾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욱 교수는 “과거 일제강점기 때 우리 토종 종자를 빼앗긴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우리의 토종 종자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다국적 종자기업의 종자를 사용하는 것의 문제점은 먹거리에 있어서 우리의 권리가 소외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종자가 개량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채로 수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국내기업을 키우는 방식이 아닌 농부에게 채종권을 돌려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토종 종자의 채집과 확산을 위해 활동하는 씨드림의 변현단 대표는 토종 종자를 “농부가 채종해서 사용했을 때 고정된 형질이 나타나는 종자”라고 정의하며 “농부가 채종한 씨앗을 사용해야 국민의 건강권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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