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유제니 기자 jenerous@

잡담 [Job;談]
세상은 넓고 직업은 많습니다. 본지는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직업인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고자 새로운 코너인 '잡담(Job;談)'을 선보입니다.

⑤ 스트릿 댄서

팝핀 댄서 이재형(남·36, Poppin J) 씨 인터뷰

서울 도심 속 한 지하 공연장, 수백 명이 둘러싼 핀 조명 한 가운데 선 댄서의 열정이 뜨겁다. 스트릿 댄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댄스 배틀(dance battle)’ 행사장이다. 강렬한 비트에 몸을 맡기는 댄서들은 각자가 닦아온 실력을 선보인다. 스트릿 댄서는 고용 관계가 아닌 개인의 능력과 기술에 따라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에 속한다. 국내에서 스트릿 댄서는 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생소한 직업이다.

20년 넘게 댄서로 활동한 이재형(남·36) 씨는 ‘Juste Debout’과 ‘R-16’, ‘Euro Battle’ 등과 같이 규모가 큰 세계 스트릿 댄스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을 거두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댄서다. 2013년도 Mnet에서 방영한 ‘댄싱9’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했던 그를 만나 직업으로 전문화된 스트릿 댄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스트릿 댄스는 어떤 춤인가
“스트릿 댄스는 1970년대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춤입니다. 단순히 길에서 추는 춤이 아니라 길에서 파생된 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미국 사회의 흑인들이 파티나 클럽, 길거리에서 즐기던 자유로운 소셜 댄스에서 비롯됐죠. 현재는 크게 비보잉(B-boying), 힙합(Hip hop), 팝핑(Popping), 락킹(Locking), 왁킹(Waacking), 하우스(House)로 총 여섯 장르가 대표적입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추는 것은 ‘팝핑’이라는 장르입니다. 춤을 통해 흑인들은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자유롭고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때문에 스트릿 댄스의 핵심은 ‘즉흥’이고, 그 중심에는 ‘음악’이 있습니다.

스트릿 댄스는 음악이 없이는 설명하기 어려운 춤입니다. 보통 발레나 현대무용에서는 음악이 없더라도 감정표현이나 이미지 메이킹, 동작의 각도와 모양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해요. 하지만 스트릿 댄스는 음악에 대한 이해가 정말로 중요합니다. 배틀을 예로 들자면, 댄서가 어떤 음악이 나올지, 어떤 춤을 출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디제이(Disk Jockey, DJ)가 온전히 즉흥적으로 선곡을 합니다. 아무런 사전 계획이나 정해진 것 없이 단순히 그 순간의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자신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이죠. 심사위원 역시 모든 것을 그 자리에서 판단하게 됩니다. 이를 ‘프리스타일(freestyle)’이라고 합니다. 흑인 문화의 가장 큰 특징이죠. 우리나라 ‘소리’에 한이 있는 것과 비슷하게 그들의 음악에는 즉흥적 소울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고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직업으로서의 스트릿 댄서는 어떤 일을 하나
“취미로 야구를 즐기는 사람을 프로 야구 선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직업 댄서도 똑같은 개념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직장에서 보내는 만큼의 시간을 춤에 투자합니다. 춤으로 수입 창출이 돼야하니까요. 프리랜서는 우선 자율성이 보장되는 직업이고, 스트릿 댄서 역시 프리랜서의 형태로 고용 관계에 종속되지 않으며 ‘선택권’을 가집니다. 댄서가 주체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매력이죠. 일부 댄서들은 소속사에 소속돼 공연하거나 방송 출연, CF 촬영 등을 합니다. 소속이 없는 댄서라면 대개 대회의 심사를 보거나 스튜디오에서 강사로 섭외돼 수강료로 수입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하고 싶은 일만 할 수는 없지만, 개인의 선택에 대해 스스로 감당할 각오로 일을 하기에 타인에 의한 스트레스는 덜한 편입니다. 틀 안에 갇힌 시스템을 따르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이상향과 그 이상향을 향해 각자의 길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스트릿 댄스라는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후반입니다. 당시 사회적으로는 직업으로 인정받기보단 취미나 하나의 놀이 정도로 취급됐습니다. 처음에는 극소수였으나 매우 빠른 속도로 문화가 발전해 현재는 인구 비율적 측면에서 봤을 때 다른 나라에 비해 댄서의 수가 많은 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댄서들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특히 비보잉이나 제가 하는 팝핑 장르의 댄서들이 큰 자리매김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외로 나가 활동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중국이나 일본, 프랑스와 같이 스트릿 댄스의 시장성이 비교적 좋은 국가에서 우리나라 댄서들을 많이 섭외하고 있죠. 저 같은 경우는 한 달에 두세 번은 중국으로 대회 심사를 보러 갑니다.

또 하나 매력적인 건 스트릿 댄서 개개인이 품고 있는 ‘개성’과 ‘성향’입니다. 서로 다른 각자의 퍼스널리티(personality)의 가치가 존중됩니다. 춤에 정해진 각도나 동작,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음악 속에 ‘나’ 자신을 녹여내고 표현하며 저마다의 개성을 표출하는 것으로 ‘다름’을 인정받는 것이죠. 그래서 프리스타일에는 칼 군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고, 같은 음악이라도 스트릿 댄서들은 완전히 정반대의 감정과 느낌을 표현해냅니다. 정리된 원칙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닌 순간순간에 즉흥적으로 호소하는 거예요.”

 

- 댄서로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다면
“2012년도에 tvN에서 방영한 ‘코리아 갓 탤런트 2’에서 우승을 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아직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한 스트릿 댄스라는 춤을 널리 알리고자 출연을 결심했는데, 큰 노력을 기울인 끝에 우승을 거머쥐게 됐죠. 우승하던 날 공연장에 와서 응원하고 축하해주는 후배 댄서들과 관객에게 감사했습니다. 힘들었던 지난 여정을 진심으로 인정받는 것 같았어요. 또한, 세계적으로 큰 대회인 Juste Debout에서 우승한 것도 이 자리에 오는 데 밑거름이 됐죠.

제가 가장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춤을 출 때입니다. 춤을 춘 지는 어느덧 20년이 됐어요. 놀랍게도 저는 한때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몸치였죠. 그러던 중 열렬히 좋아했던 Electric Boogaloos라는 유명한 팀의 춤을 너무나도 따라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자는 시간, 식사 시간, 씻는 시간을 빼고는 춤만 췄어요. 무식하게 연습에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그 팀의 댄서 분들과 만나기도 하고 함께 심사를 보기도 하는 날이 찾아오더군요. 매우 큰 영광의 순간들이었죠.

그 팀에서 매우 존경하는 댄서 중 한 명인 스키터 래빗(Skeeter Rabbit)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삽니다. ‘좋은 댄서가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돼야한다.’ 춤만 잘 추는 댄서는 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삽니다. 지금도 사람으로서 발전이 있는 댄서가 되는 것이 제 이상향입니다. 사람으로서 먼저 발전하는 댄서가 되기 위해서는 늘 생각과 고민의 양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진|유제니 기자 jenerous@

- 스트릿 댄서의 가장 큰 고충은
“한때는 스트릿 댄스는 일탈하는 아이들이 추는 춤으로 여겨졌습니다. 여전히 국내에선 스트릿 댄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긍정적이진 않습니다. 물론 스트릿 댄스를 탈선으로 여기던 예전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인식 역시 조금씩 개선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인식 개선이 이뤄져 사회에서 하나의 전문 직업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불안정한 수입 역시 댄서의 길을 걷는 데 주저하는 이유입니다. 공연예술 분야의 모든 종사자가 그렇듯 클라이언트는 최고로 유명하고 실력 있는 사람만을 원합니다. 그러다 보니 특정 인물들에게만 일이 심하게 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스트릿 댄서들이 현재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만큼 시장 자체의 규모도 함께 성장해 모두가 폭넓은 기회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노력해온 댄서들이 자신들의 춤과 실력으로 빛을 발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요.”

 

- 직업 댄서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앞서 말했던 부정적인 사회인식과 불안정한 수입으로 인해 수많은 댄서들이 직업 댄서의 길을 포기하는 것을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직업 댄서의 길을 걷는 이들을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춤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들입니다.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이겨낼 정도로 춤과 음악을 사랑한다는 것이죠. 타고난 재능이 없었던 저 역시도 춤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댄서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댄서에게는 재능보다도 사랑이 필수입니다. 엄청난 양의 연습을 소화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그런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있는 1시간의 연습은 사랑이 없는 10시간의 연습보다도 크다고 믿어요. 앞으로 춤을 춰 나가면서 힘든 일이 많더라도 열정과 사랑으로 춤을 추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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