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혜윤 기자 cutie@

문단 내의 성폭력 문제는 ‘고발자5’의 닉네임을 사용한 고양예고 졸업생들의 트위터 고발글을 시작으로 수면 위에 떠올랐다. 가해자는 졸업생 모두가 아는 스승이었고,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그로부터 ‘문학을 하려면 성적 일탈을 해야한다’는 말을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이제는 대항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 고양예고 졸업생 107명은 연대로 나아갔다. 그들은 단순히 피해자를 지지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기자회견을 통해 학교와 문단을 고발하고 사회에 문제의식을 던지는 선언문을 다섯 가지 요구안과 함께 낭독했다. 이렇게 출발한 고양예고 문창과 졸업생 연대 단체 ‘탈선’은 지난 1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오빛나리 씨(명지대 문예창작12)는 탈선의 대표로서 과거와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주역이다.

탈선은 ‘고발자5’를 지지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실상을 알게 될수록 피해자는 ‘고발자5’ 한 사람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트위터 해시태그 ‘#문단_내_성폭력 운동’이 번져나갈수록 문단 내 성폭력은 만연하게 존재했음이 드러났다. 대부분 배용제 시인이 택한 방법과 비슷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꾀어내며 침묵시켰다. “이 문제를 고양예고 하나만의 문제로 밀고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발자5’ 지지선언문에서 문단 내 구조적 문제점까지 짚고 넘어가게 됐죠.”

탈선이 최초로 온라인 해시태그 운동을 오프라인으로 옮겨오면서 문단계의 병폐는 사회로부터 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탈선의 기자회견에 많은 언론이 주목하면서 고양파주여성민우회, 대학 독립 언론, 셰도우핀즈 등 더 많은 곳에서 활동을 제안했다. 그동안 탈선은 여러 문단 내 성폭력 공론장에서 목소리를 냈고, 각종 매체와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피해자들의 사연과 여성 문학인의 기고문을 엮어 책으로 출간한 <참고문헌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했다. 오빛나리 씨는 이 모든 노력이 탈선의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 ‘탈선’은 가해자가 자주 쓰던 말로 연대원들이 가진 대항의지의 소산이었다. “가해자 배용제 시인은 문학에서 마주하는 벽을 깨기 위해선 ‘탈선’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우리는 탈선이란 말의 함의를 전복시키고 우리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뜻으로 ‘탈선’이란 이름을 택했죠.”

1년이란 시간이 지났지만, ‘문단 내 성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오빛나리 씨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는 이유를 ‘문단’이라는 기표와 그 기의가 제대로 이어지지 않는 것에서 찾았다. “문단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무도 설명할 수 없어요. 가령 출판사나 문인협회처럼 기성 문학인을 배출해내거나 활동의 근거지가 되는 어떤 집합, 그 모든 것을 뭉뚱그려서 총체적으로 일컫거든요.” 배용제 시인을 포함한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입막음하기 위해 이러한 ‘문단’의 모호성을 악용했다. 문단이 정의 내려지지 않는 상황에서, 가해자가 자신을 ‘문단 내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할 때 피해자는 그 영향력의 범위를 가늠할 길이 없었다. “문예창작과 학생들은 각종 공모전 실적에 열을 올리는 학교를 보면서 ‘등단을 해야만 작가로 인정받는다’는 인식을 자연스럽게 학습해요. 그래서 존경받는 작가, 편집위원, 공모전 심사위원을 겸임하는 가해자 앞에서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태도는 현저히 소극적입니다. 이상한 낌새를 느껴도 그의 예술적 영감을 내가 오해하는 것이 아닐까? 라고 되물으며 꾸준히 자기검열하게 되죠.”

문단 내 위계관계가 명징하게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한 피해를 입증하는 것 역시 어려웠다. 유일하게 배용제 시인만이 1심에서 8년 선고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고등학교라는 실체가 있는 기관에서 그가 강사로 일했기 때문이었다. “기성 문학인들이 문학수업을 해주는 과외, 학원에서도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성폭력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권력간 위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성폭력임을 입증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오빛나리 대표는 이런 상황에서 ‘징계 관련 내용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겠다’는 한국작가회의의 반응이 씁쓸하다고 토로했다. 무엇을 ‘최우선가치’로 둔 결정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징계 내용과 대상자 실명을 가리는 방법을 택할 수는 있어요. 다만, 피해자에 대한 연대와 지지가 먼저였다면 적어도 왜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 피해자들을 위해 대신 뭘 해줄 수 있는지 납득 가능한 설명을 해줘야했다고 생각해요.”

탈선이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가장 주력했던 건 <참고문헌없음> 출간 프로젝트를 지지하고 기고자로써 끝까지 참여하는 것이었다. <참고문헌없음> 출간 프로젝트는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의료적, 법적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8000만 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하며 시작됐다. <참고문헌없음>에는 피해자들의 사연과 여성 문인들의 기고문이 실려 후원자들에게 배송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준비과정에서 출간을 맡기로 했던 출판사 봄알람의 마케터와 <참고문헌없음> 프로젝트 지지자 사이에 일어났던 폭행, 성정체성 아우팅 사건 등을 계기로 <참고문헌없음> 프로젝트의 후원금이 줄어들었고, 적지 않은 여성 문인들이 지지를 철회하는 등 위기에 봉착했다. 탈선 역시 지지를 철회해야하는 것이 아닌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남기로 결정했다.

탈선은 <참고문헌없음> 프로젝트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난 이유가 완전하고 완벽한 연대에 대한 ‘환상’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에게 책임을 요구하는 갈등의 양상을 지켜보면서, ‘우리 모두 이제 막 시작한 상태였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았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참고문헌없음> 프로젝트가 ‘처음’으로써 지니고 있는 무게를 느낀 탈선은 ‘우리라도 남아서 연대하는 것이 맞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출간된 <참고문헌없음> 손에 받아 들었을 때, 탈선의 결정이 옳았다고 그는 느꼈다.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픈 피해자들의 사연 하나하나를 읽으면서, 이 프로젝트를 위해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게 결국 맞는 일이었다는 확신이 더 강하게 들었어요.”

지난 10월, 탈선은 안유선 시민큐레이터가 준비한 전시 ‘우리우상’에 참가해 1년간의 활동 과정을 타임라인으로 그려내기도 했다. 문예창작과 출신인 안유선 시민큐레이터가 탈선에 먼저 제안한 일이었다. “저희 탈선에게 해주신 모든 제안들은 다 ‘시작’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것들이었어요.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고요.” 결과적으로는 좋은 시도였다고, 그는 자평했다. “전시에는 이미 사건을 알고 있던 분들이 찾아와서 이것저것 많이 궁금해 하셨어요. 타임라인으로 정리해서 보다보니까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안심하기도 했고요.”

탈선의 구성원이자 대표자로 활동한 1년간의 감회를 묻자, 용수철처럼 대답이 튀어나왔다. “힘들었죠.” 활동비가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회 초년생, 대학생인 연대원들이 각자의 삶을 챙기며 탈선의 활동까지 이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마음가짐이 느슨해야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연대라는 건 너무 힘든 일이더라고요. 내 생활과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데 돈도 없고, 그렇게 막 세상이 바뀌는지 체감도 안 되고.” 그럼에도 오빛나리 대표와 두 명의 연대원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탈선의 이름아래 들어오는 제안에 응하고 책임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든 행위들이 의미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결국 이 모든 사건이 남 일이 아닌 ‘내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할 거거든요. ‘가해자들이 가르쳐준 문학’이 아닌, ‘제 문학’을 할 거지만 전 어쨌든 여전히 문학인의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속할 사회의 병폐를 더더욱 모른 척하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는 앞으로 있어서는 안 될, 그러나 존재할 수밖에 없는 미래의 성폭력피해 연대단체들을 위해 당부했다. “기억해야할 것은, 가해자의 이름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가해자 한명을 단죄하는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요. 가해자뿐만 아니라 방관자가 누군지, 왜 방관할 수밖에 없었는지 구조를 성찰하고, 이를 바꾸려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해요. 가해자를 단죄하는 데에만 집착하면 할수록, 운동의 지향점이 바로 그것이라고 착각하기 쉬워요.”

앞으로의 탈선 활동계획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다만 오 씨가 강조한 것은, 문학을 도구로 문학을 교정하려는 신념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배운 문학은 성차별적, 성폭력적이었고 이를 은폐하려는 문학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쓸 문학은 그것에 대응하는 문학일 거예요.”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