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몽테뉴는 ‘노인은 얼굴보다 마음에 더 많은 주름이 있다’고 말했다. 의료기술의 발전으로 수명은 길어졌지만 은퇴 후 노인들은 갈 곳도, 할 것도 마땅치 않다. 정부는 한국 사회가 고령사회로 진입한 것을 걱정하면서도 노인의 문화·여가생활을 적극 보장하지는 않고 있다. 2007년 통계청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노년층 자살충동의 원인 중 19% 이상이 외로움과 고독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년층의 10%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후 여가생활 지원을 통해 노인들에게 정서적 지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노인의 여가생활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가시설의 부족과 정책적 노력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참여도 다양성도 적은 여가생활

 2015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사람들 중 여가생활에 만족하는 비율은 16%로 20대의 32%, 30대와 40대의 25%에 비해 떨어졌다. 한 번 이상 참여한 여가생활 개수도 20대가 20개, 30대 19개에 비해 70세 이상은 11개밖에 되지 않았다.

 여가생활의 참여율도 낮지만, 다양성이 적다는 것도 문제로 나타난다. 위의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전체 노인의 60%가 뽑은 여가생활은 텔레비전 시청이었다. 김승용(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노인도 청년과 마찬가지로 여가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승용 교수는 “노인들이 음악 감상과 여행 등의 여가 활동을 귀찮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며 “노인 역시 여가생활에서 다른 세대와 느끼는 감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여가생활을 통해 정신적 치유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노인의 여가생활 지원은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와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한다. 하지만 노인의 여가생활을 지원하는데 있어 두 부처의 경계가 모호해 지속적인 지원이 힘든 실정이다. 문체부 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 담당자 윤정은 씨는 “미술, 사진 등 교육을 진행하고 있고 매년 심사를 통해 선발된 강사를 복지센터에 파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노인복지기관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노인복지센터 장혜영 대리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이 적고 지원 여부도 해마다 변동이 있어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며 “어르신들에게 여가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사회적 관계와 심리적 효과를 계속 지원할 수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적은 노인 복지기관의 수가 노인 여가생활 참여율 저조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승용 교수는 “휴식 공간인 경로당이 아니라 노인에게 새로운 프로그램과 교육을 제공하는 종합복지관이 필요하다”며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비해 복지 기관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에서는 노인 1만 명이 0.6개의 여가복지시설을 이용하고 있지만 도쿄의 경우 1.1개, 뉴욕의 경우 2.3개의 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사회구조뿐만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 노인의 과거 경험이 여가생활 참여율 저조를 초래한 원인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동배(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금의 6,70대 노인들은 산업화 시대에 활동한 세대로 당시 절약이 미덕이라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며 “여가생활이 소비라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여가생활을 즐기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와 기업 모두 나서야

 노인의 여가생활을 지원하는데 있어 정부가 경각심을 가져야 하지만, 여전히 정책적 노력은 부족하다. 2014년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25% 이상의 노인들이 사회 활동과 사회적 지지가 없는 사회적 고립상태였다. 전문가들은 노인의 여가생활이 노인의 사회적 고립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김남숙(숭실대 교육대학원) 교수는 “노년기의 여가 생활은 노인에게 심리적 치료를 제공한다”며 “여가생활은 정서적 지지, 정기적인 활동을 통한 건강 유지 등 다양한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노인 여가생활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신형덕(홍익대 경영대학) 교수는 “노인의 여가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무작정 재정지원만 하는 것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현재 진행되는 정부의 여가교육은 일회성에 그친다는 점에서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노인 여가생활을 활성화하기 위해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을 기획해 문화바우처를 확대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보 접근성이 낮은 노인들을 위한 실질적 홍보가 부족하다. 김동배 교수는 “노인들은 정보를 얻을 기회가 제한돼 있다”며 “문체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여가와 관련된 정보를 알려야 하고, 농어촌 노인들을 위해 교통편을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여가생활에 필수적인 경제력을 위해서 기업도 노인의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형덕 교수는 “노인은 연한이 끝난 자원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체험이 녹아있는 브레인”이라며 “자동화 기계가 발전하면서 노인 인력의 가치게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신 교수는 “노인들이 경제활동을 지속해 소비 능력까지 갖춘다면 기업 역시 노인과 함께 성장할 수 있고, 노인의 여가생활도 증진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학과 정부 연계해 평생교육 제공해야

 정부와 기업이 아무리 노력해도 노인 스스로 따라갈 수 없다면 노인들은 정부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제대로 소화할 수 없다. 노인의 고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교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동배 교수는 대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학은 노인의 정규과정 입학을 허용해 젊은 세대와 함께 공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대학 내 평생교육기관을 마련하고 정부가 등록금을 지원해 대학 내 문화·여가 프로그램을 노인들이 함께 즐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대학은 노인을 대상으로 단순한 강연만 진행했을 뿐 이들을 위한 지속적인 교육 과정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김동배 교수는 “문화와 여가에 대한 교육은 대략 5년의 시간이 걸린다”며 “노인이 스스로 특기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대학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학에서 시행되는 노인교육의 다양성이 없다는 점도 비판했다. 김남숙 교수는 “교육과 사회화라는 대학 본연의 기능을 무시한 채 일반 노인교육기관에서 인기 있는 프로그램만을 답습하고 있다”며 “대학의 특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노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노인에 대한 정식 교육과정이 활성화 돼 있다. 일본의 경우 ‘지역 활동 지도자 양성강좌’를 설치해 노인의 여가활동과 사회화를 돕고 있다. 미국의 ‘Road Scholar’는 노인을 위한 여가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참가 연령을 낮춰 모든 세대가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노인들의 여가생활이 하위문화가 돼 노인들이 다른 세대로부터 차별받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김동배 교수는 “세대 공존의 차원에서 노인과 젊은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프로그램의 개발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 | 김시언 기자 sean@
사진 | 김혜윤 기자 cu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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