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는 대학병원에 입사한 지 4개월 된 신규 간호사입니다. 오늘은 처치가 서툴러 실수를 해버렸어요. 한 환자에게 소변줄을 잘못 꼽았어요. 스스로도 자책감이 많이 들었는데, 선배 간호사 선생님이 저에게 소리를 치시며 바지를 벗으라고 했어요. 너한테 실습해야겠다며. 뒤에는 견학 온 학생 간호사들이 보고 있었죠. - 지방소재 대학병원 1년 차 간호사 A 씨

#2. 신규 간호사에서 ‘독립’한 지 한 달째 됐을 때예요. 제가 맡은 중환자 열다섯 중 다섯 명이 위독했어요. 그날따라 많이 배정된 중환자에 어쩔 줄 몰라 옆 팀 간호사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더니, ‘네가 싫어서 못 도와주겠다’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제가 손을 못 대면 목숨을 잃는 사람 다섯이 누워있는데. 제가 싫어서 도와주지 못하겠다는 선배의 말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어요. - ‘ㄱ’ 대학병원 퇴직 간호사 B 씨


생명을 다루는 백의의 전사. 그들이 일하는 곳은 치열한 병동이다. 팽팽한 긴장감으로 점철돼 있는 이곳에서는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러한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바로 도를 넘은 ‘태움’ 문화다. 열악한 근로 환경 아래서 존속되는 태움 문화는 오늘도 백의의 전사들을 병동에서 떠나게 한다.

▲ 일러스트│주재민 전문기자

신규 간호사 떨게 하는 태움 문화

간호사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신규 간호사가 입사 후 후임 간호사가 들어올 때까지 언어적, 물리적으로 당하는 정당하지 못한 괴롭힘을 말한다. 국내 간호 분야에서 1년 차 간호사의 퇴직률은 34%에 달하는데 상당수가 수직적인 직장 문화를 퇴사 사유로 꼽는다.

신규 간호사는 주로 일을 못 한다는 명목으로 ‘태움’을 당한다. 외모를 비하하거나 동료 간호사 앞에서 폭언하는 등 태움은 직장 생활 다방면에서 이뤄진다. 선배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의 업무를 무리하게 배정해 근무 연장을 유발하기도 한다. 간호사 B 씨는 “신규 간호사는 업무가 서툴러 자신의 일 처리도 늦어지는데, 연장근로 시간에도 추가적인 업무가 계속 맡겨진다”고 말했다. 의료차트로 머리를 때리거나 손등을 꼬집는 등 물리적 폭력까지도 행해진다. 수도권 소재 'ㅇ' 대학병원 재직 간호사 C 씨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에서 선배 간호사가 의료카트를 집어 던지며 공포심을 유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는 간호사들은 신규 간호사를 동료로 인정하지 않는 시각을 태움의 원인으로 보았다. 지방 소재 대학병원 재직 간호사 D 씨는 “경력직 간호사는 자기 일을 하면서 별도로 신규 간호사의 업무까지 봐야 한다”며 "신규 간호사는 경력직 간호사에게 추가업무와 같은 성가신 존재"라고 말했다. 업무에 익숙지 못한 신규 간호사들은 동료가 아닌 손이 많이 가는 교육대상자로 취급받는 것이다.

 

미봉책에 그치는 병원 대책

병원 측에선 간호사 태움 문화를 해소하기 위해 여러 방편을 마련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대다수 병원은 신규 간호사의 업무 습득을 위해 경력직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를 전담해 돕는 ‘프리셉터-프리셉티’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지방 소재 ‘o’ 대학병원 간호부장 E 씨는 “신규 간호사가 업무 습득뿐 아니라 조직에 적응하는 것까지 돕도록 별도의 교육을 실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프리셉터 제도가 조직 문화 개선에 미치는 효용성에 대해선 의문이 제기된다. 퇴직 간호사 B 씨는 “1년 차에 그만두는 경우는 프리셉터를 잘못 만나서인 경우가 많다”며 “입사 동기 중 한 명도 프리셉터가 매일 자신의 실수를 모든 간호사에게 말하고 다녀 결국 버티지 못하고 퇴사했다”고 지적했다.

대다수 병원에선 간호사가 업무 중 부당 대우를 당한 경우, 관리부서인 ‘간호부’와 면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가해 간호사에 대한 징계 등은 거의 없어 이어지는 악습을 해결하는 역할은 하지 못한다. 수도권 소재 대학병원 간호사 F 씨는 “간호부에서 사안을 파악해도 해당 간호사를 그만두게 하거나 감봉하는 등 실질적인 징계 조처를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경력직 간호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태움 문화 조장하는 열악한 근로 환경

관계자들은 태움 문화가 존속되는 주된 이유로 열악한 근로 환경을 든다. 2017년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보건의료노동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간호사의 하루 평균 연장근로 시간은 60분으로, 간호사의 87.9%가 매일 연장근로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 초과근무 시 시간외수당을 청구하기도 힘들다. 지방 소재 대학병원 간호사 D 씨는 “하루에 두 시간 이상 추가근무시간을 기재하지 말라는 간호부의 입김이 있었다”며 “두 시간 이상 추가근무 시 따로 기재해두고 손이 남는 날엔 조퇴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에 동일 대학병원의 수간호사 G 씨는 “담당 업무를 못 끝냈을 때 해야 하는 잔업에 대해 연장근로 시간을 신청할 수는 있지만, 분위기상 현실적으로 활발히 제도가 활용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휴일이 불규칙한 것도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한 병동 내 모든 간호사의 근무표는 전 월에 수간호사가 계획한다. 간호사 한 명이 정해진 일정대로 출근하지 못할 경우 휴무인 다른 간호사가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마땅한 대체인력이 없다 보니 서로 부담이 되는 것이다. 퇴직 간호사 B 씨는 “쉰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보니 아파도 병원에 와서 수액을 맞고 근무하는 간호사도 있었다”며 “1년간 일하면서 아파서 출근을 못 하는 간호사는 한 번도 못 봤다”고 말했다.

 

OECD 평균 못 미치는 간호 인력

간호 현장 내부에선 열악한 근로 조건이 형성되는 원인으로 인력 부족 문제를 든다. 태움 문화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태움’을 가하는 경력직 간호사들은 생명을 다룬다는 중압감에 과중한 업무량이 겹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3년 차 간호사인 F 씨는 태움이 지속되는 원인에 대해 “신규 때는 후임 간호사를 받으면 태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도, 업무가 밀려 있는 상황에서 신규의 실수까지 관리해야 해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표출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간호사 D 씨는 현장에서 느끼는 인력 부족에 대해 “간호사들이 긴장 상태로 일하며 어떻게든 병동이 돌아가게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처치의 기본 원칙마저 못 지키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D 씨는 “간호부가 매년 필요 인력을 파악해 보내라고 하지만, 인력 충원은 없었다”며 “의료사고가 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부족한 인력 수준에 대한 염려를 드러냈다.

간호 인력의 수급 부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문제다. 보건의료노조가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1000명 당 간호사 수는 5.9명으로 평균 9.5명인 OECD 평균의 61% 수준이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유지인 조직부장은 “열악한 간호 노동조건의 핵심은 부족한 간호 인력”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낮게 책정된 의료 인력 기준을 상향조정 하는 등 정책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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