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기동 제기사거리 한 노인분이 폐지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끌고 6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 2월 12일, 설 명절을 앞두고 한 80대 노인이 자살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2014년엔 한 독거노인이 세 들어 살던 집이 매각되자 이사를 약속한 날 ‘국밥값’을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있었다. 죽음을 앞당긴 그들의 선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소외받는 빈곤 독거노인이 있다는 걸 알게 한다.

  고령 인구가 증가하면서 이웃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독거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2014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364명의 독거노인 중 12.7%가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요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건강’, ‘외로움’이다. 장애나 질병이 있는 노인들의 경우엔 여가 활동이나 경제활동 참여가 힘들다.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돼 복지급여 혜택에서조차 밀려나는 노인도 있다. 이들이 거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폐지 수거 등 소일거리뿐이다. 이러한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해소하고자 정부는 올해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준을 일부 완화하고 단계적으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독거노인

  가족 없이 홀로 사는 독거노인의 수가 2017년 134만 명을 넘어섰다.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에 따르면 이 중 35만 명이 기초생활 수급자이며, 이는 지난 5년간 약 5만 명이 증가한 수치다. 기초생활수급자 중 절반 가량은 사회로부터 소외돼 관심을 필요로 하는 빈곤층 독거노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독거노인이 늘어나는데도 이들에 대한 관리 및 지원이 미비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각 지역의 노인복지관에서는 노인돌봄기본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노인돌봄기본서비스란 가정방문사가 안전 확인을 위해 65세 이상의 노인 가구를 방문해 각종 활동을 돕거나 간단한 대화를 나누는 복지 프로그램이다. 올해 노인돌봄기본서비스 혜택을 받고 있는 독거노인은 24만여 명으로 취약 독거노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가정방문사의 업무 강도가 높고 인력이 적어 관리에 한계가 있어서다. 성북노인복지관 노인돌봄기본서비스 관리 관계자는 “현재 가정 방문사 1명 당 일주일에 담당하고 있는 어르신 수는 약 27명이며 업무시간 외에도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독거노인들은 대개 혼자서는 최신 정보를 습득하기 어려워 가정방문사의 도움이 절실하다. 실제 독거노인들은 돌봄기본서비스의 혜택을 받지 못할 경우 외부와 교류할 경로가 거의 없다. 창신동 쪽방촌 거주민 김 모(여·72) 씨는 “핸드폰을 사용할 줄 몰라 문자에 답장을 못해 답답하다”며 “가정방문사가 없으니 물어볼 사람도 없고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아예 없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최성재(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복지 혜택이 있어도 신청 방법을 몰라 불이익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가 많아 가정방문사와 자원봉사자의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경쟁력 갖추지 못해 경제활동 어려워

  노인의 경제 활동 참여를 돕는 사업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취약계층 독거노인이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을 통해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권자에게 유급 공익활동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취약노인 지원, 취약계층 지원, 공공시설 봉사 활동 등으로 월 27만 원을 지급해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기초연금수급자가 아닐 경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서울시 어르신 내일센터에서는 특별한 자격요건 없이 55세 이상 국민을 대상으로 취업훈련 교육과 민간 일자리 알선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시 어르신 내일센터 신희정 국장은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원하는 혜택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분들에게 취업훈련 교육을 제공하고 민간 일자리를 연계해주고 있다”며 “사각지대를 최대한 메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장애나 병이 있다면 도움을 받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신 국장은 “주로 경비원, 환경미화, 배달 등의 민간 일자리를 제공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체력적 요건이 되시는 분들을 대상으로 연계해 드릴 수밖에 없다”며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아무래도 노동보다는 국가의 안정적인 지원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렇다 보니 빈민 독거노인이 가장 쉽게 선택하게 되는 일거리는 폐지 수거다. 동대문구 제기동의 대한자원 서주아 대표의 말에 따르면 폐지를 수거해오는 노인들이 하루 평균 100명 이상이다. 그렇지만 폐지수거를 통해 벌어들이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서 씨는 “아침 6시부터 운영하지만, 어르신들은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린다”며 “1kg당 70원씩 드리고 있어 큰돈은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고려대역 인근에서 폐지를 줍는 한 모(여·63) 씨는 “매일 5시간 동네를 돌면서 박스를 모아도 2000원 벌기가 어렵다”며 “박스 수거하는 노인들이 워낙 많아서 요새는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주거 일자리 문제 해결 통한 사각지대 해소

  20년 째 폐지 수거를 해 온 한 씨는 기초연금 약 20만 원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있지만 부양가족 의무자 기준으로 인해 기초생활보장제도 대상에서 제외된다. 부양의무가 있는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씨는 아들에게서 부양비를 전혀 받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올해 10월부터 주거급여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복지 평론가 이용교(광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임차 가구를 기준으로 서울에 사는 1인 가구는 월 주거급여액수로 2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며 “법적으로 부양가족이 있는 가난한 노인들도 이제는 주거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돼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사각지대의 빈곤 독거노인의 자립을 위해 일자리 사업의 지원 대상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최성재 교수는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의 일자리 제공 대상 기준을 완화해 노인들이 수급이나 소득에 상관없이 유급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노인이 사각지대의 노인을 돕는 유급봉사 제도를 단계적으로 확대시킨다면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유제니 기자 jenerous@

사진 | 김혜윤 기자 cut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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