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어엿한 음식으로 인정받는 라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한강에서 호일 그릇에 담긴 라면. 소위 ‘한강라면’을 끓여 먹어본 사람이라면 그 맛을 잊기 어렵다.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뜨끈한 라면 국물이 있다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대다수 가정에서는 간단히 끼니를 때울 라면이 몇 개씩은 부엌에 자리하고 있다. 빠른 조리시간과 간편함으로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라면은 보존성이 뛰어나 재난 지역에 구호 식품으로 자주 사용된다. 최석영(울산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라면은 국물음식이 주류인 우리나라에 적합한 식품”이라며 “햄버거에 대항해 세계로 나갈 선봉적인 음식”이라 말했다.

▲ 1970년대 혼분식 장려 정책으로 라면시장이 성장했다.

식량 문제 해결 위해 개발돼

  라면은 언제 만들어진 걸까. 라면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해 심각한 식량 문제를 겪던 1958년 일본의 닛신식품(日淸食品) 설립자 안도 모모후쿠(安藤 百福)가 개발했다. 처음 개발한 라면은 ‘치킨라멘’이었다. 국수 면발에 간단한 양념 국물을 섞은 아지스케면(味附麵)을 ‘끓는 물에 2분’이라는 광고문구로 시장에 판매한 것이다. 1960년부터는 묘조식품(明星食品) 등 다양한 회사가 라면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아지스케면은 시간이 지나면 쉽게 상하는 단점이 있었는데 1961년 묘조식품이 보완해 현재와 같은 분말스프를 첨가한 라면을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라면의 모태다.

  국내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출시된 ‘삼양라면’이다. 삼양식품 측은 “故전중윤 명예회장이 6.25 전쟁으로 식량이 부족해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고 일본에서의 기억을 참고해 최초의 라면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전중윤 명예회장은 국내에 라면을 만들기 위해 일본 묘조식품의 기계와 기술을 도입해 국내 최초의 라면인 삼양라면을 출시할 수 있었다. 라면 대표업체 중 하나인 농심은 삼양식품과 달리 창립 때부터 자체 기술연구소를 운영해 라면 기술을 개발했다. 농심은 개발된 자체 기술로 1970년 ‘소고기라면’과 최초 인스턴트 짜장라면인 ‘짜장면’을 개발했다.

  라면은 출시 초기 오랫동안 쌀 중심의 식생활을 해왔던 한국인에게 라면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삼양식품 측은 “구불거리게 튀겨진 면을 옷감이나 플라스틱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오해를 극복하기 위해 무료시식행사 등의 활동으로 라면 알리기에 나섰고 점차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라면시장은 정부가 식량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행한 ‘혼‧분식정책’으로 급성장했다. 혼‧분식정책은 기존에 있던 두 가지 흐름의 사회운동을 결합한 국민동원운동이다. 쌀이 부족했던 1960년대 상황을 고려해 한편으로는 절미운동의 흐름, 다른 한편으론 식생활 개선 운동의 흐름을 이어받았다. 1969년 1월 23일 정부는 농림부, 보건사회부, 내무부의 합동으로 혼‧분식 장려정책을 강화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명령 내용은 음식점에서 밥에 보리나 밀가루를 25% 이상 혼합하고 ‘분식의 날’인 수요일과 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쌀로 만든 음식을 팔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식량 자급이 안정화되자 1977년 강화된 행정명령을 해제됐고 라면은 쌀 다음의 주식으로 자리 잡았다.

 

라면이 해롭다? 이제는 건강하게

  라면은 봉지면 1개를 기준으로 국물까지 모두 먹으면 1일 나트륨 권장량의 60~100% 정도 되는 많은 양을 섭취하게 돼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부정적 인식은 1970년 김영삼 정권의 교육부 장관이었던 김숙희 교수의 ‘6개월 동안 라면 먹이니 쥐들이 모두 죽었다’는 발표로 더욱 강화됐다. 최석영 교수는 “동물들에게 나트륨을 과다 투여하는 실험결과를 원용해 사람에게 나트륨 줄이기를 강요했었다”며 “고혈압과 심장병은 나트륨보다 과다한 열량섭취가 주원인이다”라고 말했다. 라면은 다른 음식과 비교해 나트륨 함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편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인분 기준 짬뽕 4000mg, 부대찌개 2664mg로 나와 있다. 2016년 통계청의 발표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하루 평균 나트륨 섭취량은 약 3600mg로 국제보건기구(WHO)의 나트륨 권고량 2000mg의 1.8배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암의생명과학과 김정선 교수는 “나트륨의 과다섭취를 걱정한다면 조리 시 스프를 조절해 염분 섭취량을 줄이면 된다”며 “같은 맥락으로 기름에 튀긴 면을 뜨거운 물에 데치면 기름의 양을 줄일 수 있어 더 건강한 라면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라면은 나트륨과 지방만이 과하게 많다는 인식과 달리 국내시장의 대표 라면격인 신라면의 경우 필수 영양소인 탄수화물과 지방, 단백질이 각각 24%와 31%, 18%씩 골고루 들어있다. 최석영 교수는 “라면은 열량이 적절하고 필요한 영양소가 잘 들어 있다”며 “달걀과 파 등을 넣고 김치와 함께 먹으면 다소 부족한 단백질과 비타민도 보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음식에 대한 오해를 덜기 위해서는 막연한 오해보다는 올바른 지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면의 가장 큰 위기는 1989년 11월의 공업용 우지(소기름)로 라면을 만든다는 이른바 ‘우지사건’이었다. 삼양라면을 포함해 5개 식품업계 대표와 실무자 구속으로 일어난 우지사건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일어난 무차별 보도로 라면업계에 엄청난 타격을 입혔다. 사건 발생 12일 이후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가 우지를 사용한 라면이 무해하다는 공식발표한 이후 일단락됐다. 삼양식품은 우지사건 이후 1994년부터 우지 대신 팜유(콩기름)를 사용해 라면을 튀겼다. 여러 이유로 오해를 받는 라면을 발전시키기 위해 업체들은 라면의 고급화와 건강화를 진행 중이다. 최근엔 기름에 튀기지 않은 식품이 건강한 식품으로 인식되며 라면 업계 또한 이 추세를 반영해 비유탕면 제품을 적극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삼양식품 면스낵마케팅팀 홍완표 주임은 “건강은 일시적인 흐름이 아닌 하나의 문화”라며 “때문에 근원적인 필요이기에 라면에서도 건강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홍 주임은 “건강화는 모든 식품이 추구해야할 방향”이라 말했다. 라면의 건강화에 대해 시민들도 긍정적인 견해다. 6기 농심 대학생 서포터즈를 했던 김이슬 씨는 “라면과 건강이라는 단어는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건면 등 제조과정의 변화와 좋은 재료를 넣는다면 건강화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화로 인한 라면의 고비용화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정선 교수는 “고급화를 통한 건강 라면의 취지는 좋지만,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이 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 2013년 6기 농심 대학서포터즈는 농심의 컵라면을 뒤집어쓰고 패러디 안무를 진행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라면’, 그 미래

  “라면을 소울푸드라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한국인이 즐겨 찾는 음식인 라면은 그만큼 관심이 있는 사람도 많다. 다음카페 ‘라면천국’에서는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라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정기적으로 함께 라면을 끓여먹기도 한다. 라면천국의 대전지부를 맡은 홍휘선 씨는 “라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봉사 활동을 하자는 취지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블로거들의 활동 또한 많다. 라면에 대한 블로그를 운영하는 최영석(활동명 tazie) 씨는 “라면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게 가장 즐겁다”며 “블로그 게시물을 만들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다 보니 더욱 애정이 갔다”고 말했다.

  라면 관련 업체들은 대학생이나 일반 시민을 모집하는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더욱 라면을 알리고 있다. 농심의 경우 ‘농심 대학생 서포터즈’를 운영해 각종 라면에 대한 활동을 미션으로 제공한다. 6기 서포터즈를 했던 김이슬 씨는 “온라인뿐 아니라 프로모션 행사 등 오프라인 활동도 다양하게 지원받았다”며 “농심의 컵라면을 뒤집어쓰고 패러디 안무를 만들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고 말했다.

  하지만 라면 업체를 비롯한 식품업계의 시장 전망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 굳어진 저성장으로 인한 소비의 감소와 지속된 출산율 저하 때문이다. 삼양식품 측은 “다양한 가정 간편식 제품의 출시, HMR(Home Meal Replacement) 시장의 확대와 고급화는 라면업계의 위축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홍완표 주임은 “최근 다양성과 모호함의 증가로 산업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며 “라면 브랜드도 라면에서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카테고리로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조한규 기자 hone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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