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도부터 많은 대학들이 학내 성폭력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성평등 업무를 담당하는 기구를 설치, 운영해오고 있다. 각 대학의 성평등 기구에선 상담과 조정활동 등을 통해 교내 성폭력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인력과 재정 등의 부족으로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효과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성평등센터의 더딘 업무처리에 기다리는 피해 학생들은 답답하기만 하다.

  본교 여학생위원회 안효원 위원은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이 성평등센터에 피해 사실을 제보하는데 느끼는 어려움을 파악하고, 적절한 안내 활동을 통해 센터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피해자 중심적인 대응을 통해 성평등센터가 학우들이 각종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도와줄 수 있는 기관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족한 상담 인력과 전문성

  교내 성폭력 문제에 대해선 성평등 기구의 발빠른 대처가 요구되고 있지만 인력부족 등의 문제로 신속한 사건 처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원장=권인숙)의 2015년 ‘대학내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보호 강화 방안 연구’에 의하면 각 대학 고충상담원의 수는 평균 2.3명이다.

  올해 실시된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대표=노정민, 성평등상담소협의회)의 조사에서도 59개 대학에서 성평등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는 총 100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대학 당 평균 약 1.8명의 상담사가 근무한다는 것을 뜻한다. 1명이 기관의 전체 업무를 담당하는 경우도 46%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량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본교에서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성평등상담소협의회 노정민 대표는 “사건 발생 시 적은 인원에게 많은 업무량이 주어져 업무 과부하가 걸리는 상태가 발생 한다”며 “학생들은 요구사항에 대해 신속한 조치를 원하지만 센터의 인력으로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행정업무 등 별도의 각종 업무까지도 상담인력에게 부여된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대학 성평등 기구 설치현황 설문결과 보고’에 따르면 조사된 59개 대학 중 41개의 대학에서 성평등 업무 담당자가 성평등 상담 외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이는 상담을 비롯해 교내 구성원을 상대로 실시하는 의무 예방교육 업무와 사건처리 등의 행정업무까지 포함한다.

  더불어 상담자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 행정 직원이 성 관련 상담에 투입되는 경우도 많아 전문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조사에 응답한 59개 학교 중 성평등상담기구를 별도의 독립기구로 운영하는 곳은 12개 학교에 불과하며, 일반 학생상담센터에서 성상담 관련 업무를 병행하고 있는 사례는 21개에 달한다.

  성평등 업무담당자들의 불안한 고용형태도 상담의 지속성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실제 올해 대학 내 성평등 업무 담당자 중 50% 이상이 비정규 계약직이다. 노 대표는 “피신고인이 교수일 경우 비정규직 신분의 직원이 사건을 조사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치명적인 문제도 있다”며 “성평등센터 관련 규정을 각 대학의 자율에 맡겨서 요식만 갖추고 현실적으로 기능을 할 수 없는 대학이 많다”고 말했다.

 

변화 위해 노력하는 성평등센터

  미투 운동 등 사회적인 변화의 움직임이 대학가로 번지자 성평등기구 내에서도 업무의 효율성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자구책이 마련되고 있다. 2018년 현재 1000만 원 미만의 연간예산으로 운영되는 성평등 상담센터가 절반에 미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한국대학성평등상담소협의회 측은 “예산 확충과 표준 마련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정부 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성평등센터가 각 대학의 자율에 의해 운영돼 예산절감에 민감한 대학 당국의 입장에선 예산 증액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노정민 대표는 “대부분의 학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센터를 운영을 해야 돼 큰 진전이 없는 것”이라며 “각 대학의 규모에 맞는 예산 지원을 통해 전문성 확대와 체계적 시스템 구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센터 내에서 자체적으로 활동 강화를 위해 대책을 마련한 곳도 있다. 동덕여대 성희롱 성폭력 상담실은 교내 구성원들을 상대로 적용되는 성윤리강령을 강화했다.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인식 개선이 중요한 만큼 윤리강령이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동덕여대 이정은 성고충 상담연구원은 “성희롱, 성폭력의 세부적인 정의를 구체화하고 인권존중과 심리적 신체적 안전을 위협하는 성차별적 행위와 발언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며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 학생들의 적극적인 이용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의 연장선으로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이 지난 2월 26일 발의한 ‘미투응원후속법’에는 ‘대학 등 국가기관에 성폭력 상담기구 설치 의무화’가 포함된다. 신용현 의원은 “대학가에 미투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며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고 있지만 이러한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제도가 필요하다”며 “상담기구는 무엇보다 피해자와 신고자에 대한 지원과 보호를 우선해야 할 것이며, 교내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예방조치를 위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유제니 기자 jener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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