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로 천안함이 서해에서 침몰한지 8년이 되었다. 침몰의 원인에 대해 당시 정부기관을 중심으로 한 조사단에서 한 달여의 조사를 거쳐 백서를 발간하였으며, 그 내용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을 모두가 기억한다. 최근 8주기를 맞아 KBS의 ‘추적 60분’에서 그동안 제기된 여러 의문을 주제로 방영하였고, 해군에서도 이에 대한 반론으로 소위 ‘팩트 체크’를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과학적 조사’ 또는 ‘과학적 증거’라는 말들이 자주 사용되었는데 우리 과학계의 대부분은 무반응이었다. 이 일로 인해 ‘과학적’이라는 말이 정부, 언론 및 일부 과학자들에 의해 오남용된 상황을 돌아보려 한다. 흔히 과학 분야의 학위를 가진 전문가가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어려운 학문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과학적’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그래서인지 일반인이 과학적 논의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말이 동원되기도 하고, 천안함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눈에 띈다.

현재 대학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부분의 학문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아니다. 유럽 등지에서 오랜 기간을 거쳐 만들어지고 발전된 것이 20세기에 뒤늦게 도입된 것이다. 60~70년대를 거치며 “우리도 한번 (서구처럼)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던 시절, 과학기술의 이미지가 강대국의 선진문화에 대한 경외심과 중첩됨으로 인해 ‘과학적’이라는 우리말에는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권위가 부여되었다. 그러나 유럽 과학의 생성 및 발전 과정은 오히려 기득권의 권위를 타파하는 과정이었다. 16세기 과학혁명의 배경이 된 중세유럽은 절대신의 ‘말씀’의 권위를 내세워 사회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독점하려 한 거대종교의 지배하에 있었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이러한 거대 권력에 맞서는 목숨을 건 주장이었다. 이들을 계승한 유럽의 과학자들은 절대신을 대체할 지식과 지혜의 주체로서 인간의 이성을 추구하였다. 이에 다수가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자연의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재현과 검증 가능성을 가진 실험에 의해서만 과학적 논의를 발전시키는 전통을 세웠다. 이는 뉴턴시대인 17세기에 성립된 영국왕립학회의 모토 ‘Nullius in verba (on the word of no one)’에 잘 나타난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누구의 말도 그대로 믿지 않는다’는, 즉 소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주장의 진위를 실험에 의해 검증하고자 하는 과학자의 기본자세에 대한 선언이다.

이러한 전통은 연구의 과정과 결과를 여러 방식으로 공개하고 다른 여러 과학자들이 다양하게 변형된 형태의 실험으로 재현하여 검증할 수 있게 허용해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찾아가는 지금의 전형적인 과학적 활동으로 자리잡았다. 물론 수백 년의 역사를 거치며 과학이 상당히 전문화됨으로 인해 일반인이 최신의 연구결과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과학은 어떤 경우에도 합리적 논리를 바탕으로 하며, 따라서 과학적 설명이 정규교육을 받은 비과학자의 상식적 논리에 반하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이렇듯 공개적 검증과 합리적 설명은 과학적 논의 과정의 매우 중요한 구성 요소이지만,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한 결론은 매우 비과학적으로 내려졌다. 천안함이 어뢰의 비접촉 폭발에 의해 침몰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상응한 규모의 폭발 흔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천안함의 반파 시에 촬영된 TOD 영상, 선체 절단면과 가스터빈실의 상태, 사체 검안 결과, 생존자의 신체 상태와 증언 등에 대규모 폭발 현상과 상충되는 근거는 압도적 다수로 존재한다. 반면, 대규모 폭발에도 불구하고 그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각 사안마다 예외적인 가능성에 대한 추정이 있을 뿐이다. 이를 바탕으로 폭발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추론하는 데에는 과학자의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에 따라 이미 수많은 일반인들이 이에 대해 합리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사단에 참여했던 과학자는 이를 “완벽한 조사”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더 나아가 대부분의 유능한 과학자들이 이러한 일반인들의 합리적인 의문을 외면하여왔던 점도 역시 반성해야 할 일이다. 뒤늦은 시기에 교과서를 통해 서구 선진문명의 일부로 과학을 받아들인 우리 사회의 과학문화 기반은 매우 빈약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에서는 과학이란 근본적으로 정확하다는 오해로 인해 ‘과학적 증거’는 곧 믿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하거나 ‘과학적 결론’에 대해 논란이 존재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만일 과학자가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면 그보다 더 비과학적일 수 없다. 실제로 적지 않은 수의 과학자들에게서도 정부가 천안함의 침몰 원인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하였으므로 이를 의문 없이 믿어야 한다는 비과학적 자세를 경험한다. 과학은 다른 모든 학문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한 인간의 이성을 사용한 논리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는 활동이며, 단지 구별되는 점은 논리적 사유의 방법으로 체계적 측정과 수학적 분석을 사용한다는 것에 있을 뿐이다. 즉, 아무리 정확하게 측정된 실험 결과도 필연적으로 인간의 해석을 거쳐야만 의미 있는 정보가 되며, 따라서 과학자 개인의 경험에 기인한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논의는 소수의 주장으로 결론을 맺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집단적 공론화의 과정을 거쳐 정론에 도달해야 하며, 이러한 과정을 거친 정론도 항상 불완전할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학적 논의 과정에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의 참여가 장려되어야 한다. 더욱이 공적인 사건 해결에 과학적 방법이 사용되는 경우에는 그 과정과 결론이 반드시 일반인의 수준에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되어야 한다. 특히 천암함 사건처럼 익숙한 바다 위에서 여러 사람이 탄 큰 배가 부서진 원인을 밝히는 과정은 일반인의 합리적 상식에 반하거나 특정 분야의 전공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고난도의 논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그 과정에 사용된 과학적 방법이 비과학자인 일반인들이 보기에 어려울 수는 있으나, 그에 따른 결론이 그들의 보편적이고 합리적인 논리에 역행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그에 대한 과학적 규명도 대다수의 일반인들이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

 

정재호 
고려대 교수· 물리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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