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영 사장은 "고대생들에게 항상 고마웠다"며 폐점을 앞두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지난 5월 31일, 폐업을 하루 앞둔 설성번개반점(설성)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의 사람들로 북적였다. 빨간 색의 큰 글씨로 ‘이별을 알립니다’, ‘폐업일자 6월 1일’이 적힌 노란색 공고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뚫어져라 공고문을 읽어갔다. 늘 같은 자리에 있어 익숙했던,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지나쳤기에 곧 사라질 그 풍경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듯이.

  설성이 문을 닫는 아쉬움은 30년의 시간만큼이나 학번을 아울러 스며든 모양이다. 설성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가게 앞에서 인증샷을 찍던 이윤규(컴퓨터학과 03학번) 교우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앙광장에서 뿐만 아니라 동아리방, 당구장에서도 정말 많이 먹었죠.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퇴근하자마자 수원에서 달려왔어요.” 재학생부터 교우들까지 설성의 마지막을 함께하러 온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던 5월의 끝자락 아침, 85세의 김태영 사장은 팔에 깁스를 해 불편한 몸임에도 줄곧 인자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30년 동안 정대 후문 지켜온 설성번개반점

  설성번개반점은 1987년 개업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본교 대표 중화요리점의 자리를 지켜왔다. 새내기 시절의 로망인 ‘중짜(중앙광장 짜장면)’부터 빠듯한 시간의 간편한 식사까지. 수많은 학생들의 추억을 담은 설성은 김 사장의 고향인 충청북도 음성의 별칭을 따서 지은 이름이다. 그는 본교에서 장사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맹모삼천지교 때문이었다’며 웃음 지었다. “두 아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땐데, 고대 학생들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본받으라고 이곳에서 장사를 시작했죠, 허허.”

  김 사장은 5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설성을 열었다. 그는 ‘손님에게 최고의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매일 새벽 5시에 경동시장에 가서 신선한 재료를 골라올 만큼 열정적인 사장이었다. “젊지는 않지만 성실하게 일했다고는 자부할 수 있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직접 재료를 사 오는 것으로 하루 영업을 시작했죠.” 애착이 컸던 만큼 그는 설성과 함께 지나온 세월을 회고하며 자연스레 눈시울을 붉혔다. 과거 사업이 부도나 어려운 시간을 보냈던 김태영 사장은 가게를 시작할 당시엔 좁은 집에서 가족들을 재우고 본인은 가게에서 잠을 청할 만큼 힘든 삶을 살았다. “연립 주택에 사는 게 소망이었는데 지금은 그 이상으로 더 잘 살게 됐어요. 도와준 고대생들한테 항상 고마운 마음이죠.”

  김 사장은 여러 곳에 많은 선행을 베풀기도 했다. 국내 뿐 아니라 캄보디아, 베트남에까지 도움의 손길을 건넨 그는 누군가에게 봉사할 때가 가장 뿌듯하다며 미소 지었다. 특히 고향인 음성에선 ‘음성군민 대상’을 받을 정도로 꾸준히 봉사하는 삶을 살아왔다. “어렵게 자랐던 기억이 있어서 그 때 느꼈던 것들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을 돕게 된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덜 힘들게 살았으면 해요.”

 

설성에 영광 안긴 ‘번개 배달맨’

  김 사장은 30년 간 설성을 운영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약 15년 전에 있었던 배달원을 떠올렸다. 김 사장은 바쁘게 생활하는 학생들을 보며 ‘주문부터 식사까지 10분 안에 끝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번개처럼 빠른 배달을 목표로 삼았다. “당시 배달하던 친구가 유독 빠른 친구였어요. 다른 중화요리점과는 확연히 차별화될 정도로 빨라서 인기가 많았죠.”

  졸업생들에게는 중광을 누비며 음식을 나르던 번개 배달맨이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본교 신문방송학과 88학번인 노광우(미디어학부) 교수도 마찬가지다. 노광우 교수는 학생 시절의 ‘설성번개 전설’을 회고했다. “빨간색 윗도리와 해병대 바지, 선글라스를 쓴 설성번개 배달부가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를 누볐던 기억이 나요. 속도도 빨랐지만 눈에 띄는 특이한 모습으로도 유명했죠. 특정 건물이 아닌 학교 잔디밭에서 배달시켜 먹는 문화를 설성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 설성의 영업 마지막날 저녁, 마지막 추억을 남기려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추억과 함께 사라지는 설성

  김 사장은 올해 85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두 차례의 교통사고에 따른 후유증으로 가게 문을 닫게 됐다. 그는 하루 12시간씩 서서 일하는 고된 일이다 보니 요즘은 이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도 드물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인건비가 상승해 운영이 어렵기도 했지만, 설성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첫째 아들에게 가업으로 물려주려는 생각을 갖기도 했다. “3년 동안 함께 일하며 가르치고 배웠는데, 결국 자긴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죠.” 그는 과거에 비해 인기를 잃은 짜장면에 아쉬움을 전하기도 했다. “지금처럼 음식이 다양하지 않고 가난했을 땐 짜장면이 엄청난 인기 메뉴였죠. 많은 양과 높은 칼로리, 저렴한 가격으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었어요.”

  설성은 지난 수십 년 간 많은 학생들과 일상을 함께한 음식점이었다. 마지막 날 설성을 방문한 이동준(정치외교학과 02학번) 교우처럼 이날 학부생 시절의 일상을 떠올리며 사장님께 마지막 인사를 건넨 졸업생들이 적지 않았다. “설성에 특별한 추억이 있다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빠질 수 없는 공간이었죠. 배달 시켜 먹기도 했지만, 정경대 바로 옆에 있어서 정말 자주 찾아왔어요.”

  그에게도 고대생들은 특별한 인연으로 기억될 터. 김 사장은 폐업을 앞두고 본교 학생들과 함께한 시간을 회고했다. “특별했던 손님을 따로 꼽기는 어렵지만 잘 먹었다고 인사해주던 손님들은 더 기억에 남죠.” 이어 오랜 시간을 함께한 본교 학생들에게 애정을 드러냈다. “우리 고대 학생들이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주목 받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람들한테 30년이나 같이 지냈다고 자랑도 할 수 있도록요, 허허.” 끊임없이 오고 가는 발걸음 속에 설성의 마지막 밤이 저물어갔다.

 

글 | 박연진 기자 luminous@

사진 | 류동현 기자 heod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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