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Grooming)족은 마부(Groom)가 말을 빗질하고 목욕을 시키는 데서 유래한 신조어로, 패션과 미용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남성들을 일컫는다. 그루밍 행위의 대표 분야는 화장으로, 국내 남성 화장품 산업은 수요가 증가하면서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헬스, 피부, 성형, 패션 관련 분야 산업도 지속적으로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지속되는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그루밍족이 점점 늘어나는 배경을 살펴보았다.

 

  ‘외모가 경쟁력’…늘어나는 그루밍족

  그루밍 관련 산업에는 화장, 헬스, 피부관리 등이 포함돼 그 범주가 넓고 다양하다. 최근 그루밍족이 늘면서 관련 산업도 성장하고 있다. 특히 화장 분야의 시장 성장세가 인상적이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1조2808억 원으로 전년보다 4.1% 성장했다. 앞으로도 비슷한 성장세를 유지해 2020년에는 1조4000억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유로모니터는 전망하고 있다. 헬스&뷰티 스토어의 남성 고객도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대표적인 국내 헬스&뷰티 스토어 ‘올리브영’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최근 3년간 남성 화장품 매출 증가율이 연평균 40%를 웃돌고 있는 것으로 집계될 만큼 시장의 성장세가 뚜렷하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더 크다. 그루밍 관련 업종 종사자들은 예전보다 남성들의 수요가 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원진성형외과 박원진 원장은 “취업이나 이직, 결혼 등 사회생활에서 외모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보편화되며 성형 상담을 하는 남성이 예전보다 확실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 ‘구찌(Gucci)’ 매장 관계자도 “예전보다 패션에 과감하게 투자하는 남성들이 늘면서 남성 고객의 유입이 많아지는 것을 체감한다”고 전했다.

 

  수요 발맞춰 변화 시도하는 업계

  그루밍족이 증가하며 남성들의 시장 수요가 늘자 업계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올리브영’, ‘롭스’를 포함한 헬스&뷰티 스토어에 생긴 남성 전용 코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각 매장에서 남성 소비자들을 겨냥해 투자를 확대해온 결과다. 올리브영 안암점 직원 양승혜(여·26) 씨는 “남성 코너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건 3, 4년 전부터”라며 “맨즈데이(Man`s day)나 예비군의 날 이벤트 등 남성들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 전용 이발소인 ‘바버샵’도 그루밍족을 공략하기 위해 새롭게 생긴 공간 중 하나다. 바버샵은 유행에 맞춰 1:1 맞춤형 스타일링을 제공하는 남성만의 헤어 케어 공간이다. 우리나라 남성 대부분이 여성 위주의 미용실을 찾고 있지만, 미국식 이발소인 바버샵이 들어서면서 남성 고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기존의 미용실 커트가 특정한 스타일을 따라하는데 그친다면, 바버샵은 남성의 두상과 모질을 세심하게 파악해 관리해준다. 이태원에 위치한 바버샵 ‘엉클부스’를 처음 찾은 이재민(남·28) 씨는 “예전부터 바버샵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고 주변 친구들도 종종 찾아가는 걸 봤다”며 “짧은 머리를 좋아하는데 짧은 머리를 잘 깎아준다고 해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그루밍족의 증가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양한 원인 분석을 내놓고 있다. 성영신(문과대 심리학과) 교수는 “그루밍은 남성들 스스로의 욕구가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성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그루밍족의 증가는 남성들의 미적 욕구 충족과 타인에게 잘 보이려는 욕망이 결합돼 나타난 현상이다.

  반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남성상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대중매체의 영향을 받아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성상이 예전과 달라졌다”며 “여성들이 외모를 통해 남성의 경제적 여유와 문화적 결까지 판단하기 때문에 그루밍족이 경쟁력을 갖게 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즉 여성들이 바라는 남성상에 부응하기 위한 남성들의 노력이 표출됐다는 것이다.

 

  20대에 녹아든 그루밍, 화장에 대한 편견은 잔존

  성장하고 있는 그루밍 시장에서 가장 유력한 소비자층은 20대 남성으로 분석된다. 온라인 쇼핑몰 옥션에 따르면, 2016년 화장품 구매량을 2015년과 비교했을 때 20대 남성의 구매량이 약 400% 가까이 늘어났다. 특히 대학가에 위치한 화장품 매장은 젊은 20대 남성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본교 참살이 길에 위치한 올리브영 안암점 직원 양승혜 씨는 “대학가에 위치한 매장들은 타 매장에 비해 남성 고객층이 두터운 편”이라며 “안암점도 20대 대학생들의 영향으로 남성 고객층이 많은 축에 속한다”고 밝혔다.

  20대 대학생들은 대부분 그루밍을 당연하고 하나의 개성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민윤기(상명대 산업디자인학12) 씨는 “남성의 자기관리가 일상적인 말로 쓰일 만큼 그루밍족은 이미 옛날 단어로 느껴진다”며 “주위에서 눈썹 문신이나 체계적으로 수염 제모를 받는 걸 보면 충분히 일상에 녹아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도형(문과대 사회13) 씨도 “예전에는 조금만 화장한 티가 나도 시선이 곱지 않은 걸 느꼈고 화장품 살 때도 눈치가 보였지만, 미디어에서 남성이 화장하는 모습이 많이 다뤄지면서 편견이 많이 줄었다”며 “화장품 매장에서도 남자 손님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인 시각도 남아있다. 특히 ‘짙은 화장’에 대한 거부감은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양지원(부산대 기계공학14) 씨는 “개인이 화장을 하는 걸 막을 순 없겠지만 남성이 입술을 붉게 한다거나 눈 화장을 하는 건 거부감이 있다”고 밝혔다. 손승범(한양대 컴퓨터공학14) 씨도 “사회적으로 남자가 본인을 꾸미는 데는 화장 말고도 좋은 방법이 많지 않냐”며 “아직 남성의 짙은 화장은 거부감부터 느껴진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시각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없어질 시선”이라고 말한다. 성영신 교수는 “결국 그루밍도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허물어지며 나타난 현상”이라며 “축구나 참정권과 같이 성의 구분이 존재하던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졌듯, 화장하는 남성도 언젠가 이상하고 낯선 게 아니라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박성수 기자 holywater@

사진 | 고대신문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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