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JTBC 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의 주인공 강미래(임수향)는 극 중에서 향료를 개발하는 조향사를 꿈꾼다.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조향업에 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20년 넘게 향을 연구하고 있는 ‘LG생활건강 센베리퍼퓸하우스’ 김후덕 팀장, 공연·예술과 접목해 공간향을 기획하는 회사인 ‘센토리’의 김아라 대표, 책에서 얻은 영감으로 만든 디퓨저를 책과 함께 파는 독립서점 ‘프레센트14’ 최승진 대표는 ‘향기 산업’을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 가고 있는 조향사들이다.

▲ LG생활건강 센베리퍼퓸하우스 김후덕 팀장

“조향은 감각과 감성이 동시에 필요해요”

  김후덕 팀장이 근무하고 있는 ‘센베리퍼퓸하우스’는 LG생활건강에서 출시하는 화장품, 생활용품의 향기 개발을 책임지는 향 전문 연구소다. 김 팀장은 이곳에서 20년 넘게 향을 연구하고 개발해 국내에서 손꼽히는 ‘조향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학원에서 식물의 향료추출과 발효를 통한 쓴맛 성분에 대해 연구를 하며 향에 관심이 생겼고 지금까지 오게 됐죠.”

  김후덕 팀장은 향 연구와 개발을 시작한 이래로, 상당히 많은 제품의 향을 입히는 작업에 주축이 됐다. 고급 치약의 시초격인 ‘클라이덴 치약’과 소비자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얻은 ‘엘라스틴 샴푸’ 등 김 팀장이 개발한 제품들은 많은 사람들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특히 “엘라스틴 샴푸를 만드는 과정에서 어느 때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고 고백했다. “당시 엘라스틴을 만들기 위해 준비된 향만 850개 정도였어요. 경쟁사는 샴푸의 모발에 대한 효과에만 치중됐을 때, 향에 집중해 잔향이 오래 지속되도록 개발 단계부터 많은 투자를 했었죠.”

  최근 커지는 시장에 발맞춰 김후덕 팀장도 LG생활건강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프리미엄 향수 개발에 열중이다. 프리미엄 향수는 향수 전문 브랜드가 내놓는 고급 제품으로, 최근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비 경향과 맞물려 수요가 커지고 있다. “국내 향수 시장도 규모가 점점 커가는 추세라서 우리 회사의 프리미엄 향수 브랜드 ‘제인 패커 시리즈’ 개발에 힘을 쏟고 있어요.”

   김후덕 팀장은 현대 사회에서 조향사의 역할은 계속 커지리라 전망했다. “1인 가구가 늘어나면서 내면의 외로움을 스스로 달래려는 많은 시도 중 하나가 향을 이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심리학과 연결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 센토리 김아라 대표

“향은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어요”

  조향사 김아라 대표가 운영하는 ‘센토리(Scentory)’는 ‘Sense the scent(향으로 감각하다)’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공연 및 예술과의 협업을 통해 ‘공간 향’을 만들고 전시하는 회사다. 김아라 대표는 소비자들이 일상의 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감각할 수 있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공간 향’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김아라 대표가 조향의 영역을 공간까지 확장할 수 있었던 건 처음부터 ‘향수’보다는 ‘향과 냄새’ 자체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만약 제가 그림에 관심이 더 있었다면, ‘어떻게 하면, 캔버스 밖으로 그림을 꺼내 볼까?’를 고민했겠죠. 우리 주변에서 느낄 수 있는 향 자체에 관심을 갖다 보니 향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고, 그 생각의 흐름이 공간으로 확장됐어요.”

  ‘공간 향’ 이외에도 조명, 컬러, 가구, 음악, 소품 등 공간을 채우는 요소는 무수히 많다. 김아라 대표는 ‘공간 향’이 단순히 냄새에 그치지 않고, 온도와 질감 그리고 색감까지 대변해 공간이 가진 갖가지 매력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향이 영향력을 갖기 위해선 누구나 향의 종류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객관성’을 갖춰야 한다. 다른 공간 요소들과의 조화도 중요하다. “공간에 적용되는 향은 무엇보다 객관성을 가져야 해요. 꽃향기를 표현한 향이라면 누구나 꽃향기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죠. 더불어 이미 공간을 이루고 있는 요소들과 같은 톤을 이뤄야 합니다. 향기는 아직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다른 요소를 극대화하는 가장 감각적인 장치라고 생각해요.”

  김아라 대표는 다양한 공연예술 단체와 협업하고 있다. 김 대표는 그중에서도 오랜 기간 함께하고 있는 밴드 ‘넬’과의 공연을 가장 인상 깊게 느낀다. “밴드 넬 같은 경우는 콘서트 때마다 공연장에 장미꽃을 설치해요. 공연 클라이막스 때 공연장 전체에 장미향이 나는 효과를 내기위해서 저희가 담당하죠.”

  김아라 대표는 “향의 영역을 넓혀가는 사람이 점점 늘 것이며, 역할도 변해갈 것”이라 말했다. “조향사는 어느 시대든 존재했고 시대에 따라 역할이 조금씩 변해갔죠. 현대에 와선 무형의 향을 통해 무한한 가치를 전하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앞으로도 저처럼 향의 영역을 넓혀가는 사람이 늘어나겠죠.”

▲ 프레센트14 최승진 대표

“어서오세요! 향기 파는 책방입니다”

  책과 맥주를 결합하는 등 다른 상품과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한 책방이 생겨나고 없어지는 요즘, ‘프레센트14’는 ‘향기 파는 책방’이라는 컨셉으로 자리를 지키는 독립서점이다. “Present(선물)와 Scent(향기)를 합쳐서 이름을 지었어요. 제가 직접 만든 디퓨저와 책을 선물 세트로 만들어 판매하는 책방입니다.” 최승진 대표는 책방에서 만나는 다양한 이야기와 향기의 ‘말 없는 말’들이 소비자에게 작은 휴식으로 다가갈 수 있길 바란다.

  그는 조향의 아이디어도 책에서 얻는다. 조향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군 복무 시절에 읽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 때문이다. “보통 향을 만들 때 책에서 영감을 얻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만들어진 향들의 이름도 책으로 짓죠. 현재 5개의 향이 나는 디퓨저를 판매하는데 대중적이고 유명한 소설을 위주로 향을 개발하고 있어요.”

  향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시하는 것은 ‘객관적인 주제’다. 하나의 책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이와 어울리는 향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객관적인 주제를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최대한 주관적인 감정을 배제하려 해요. 그러기 위해선 맡았을 때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향보다는 익숙한 향들을 주로 다루려고 노력하죠.” 또한 책의 장르마다 사용되는 향도 구별해서 쓴다고 전했다. “장르마다 어울리는 계열이 있어요. 연애소설은 꽃향기 계열, 에세이나 시집은 햇빛 계열이나 시원한 향이 잘 어울리죠.”

  최승진 대표의 프레센트14는 책과 디퓨저를 포장한 선물 세트를 주로 판매한다.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거나 상품의 매력을 부각하기 위한 도구로 향을 활용하고 있다. “책의 내용을 전달할 수 있는 향은 책과 함께 선물로 받았을 때 그 감동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더라고요. 매장에도 향기를 풍겨 구매 의욕을 높이고 책방에 대한 긍정적인 인상을 심어주고 있어요.”

글|박성수 기자 yankee@

사진|한예빈 기자 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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