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한 것이 오래된 것을 대신하는 세상이지만, 때로는 조금 불편해도 추억을 되살리고픈 때가 있다. 간편하게 책을 사고 주문하는 온라인 서점을 뒤로하고 그윽한 책 냄새가 그리울 때 찾아가고 싶은 곳, 혜화동에 자리 잡은 책방 ‘풀무질’이다.

  대학로와 이어진 성균관로 골목 끄트머리에 바쁘게 변하는 거리를 33년째 묵묵히 지켜온 책방이 있다. 서점으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에 들어서자 아기자기한 벽화와 기분 좋은 종이 냄새가 방문자를 반긴다. 계단을 내려가면 시야가 트이며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1985년부터 영업하고 있는 ‘풀무질’은 지식과 진리에 목마른 청년들의 쉼터이자 사랑방이었다. “풀무질은 대장간에서 바람을 일으켜 불을 일으키는 일이에요. 독재를 불처럼 삼키겠다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학회지 이름을 따왔어요.” ‘풀무질’을 25년째 지켜온 4대 사장 은종복(남·54) 씨는 지금도 학생들을 위해 서점 한편을 흔쾌히 내준다. “요즘에는 시와 소설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서점에서 읽은 책을 두고 이야기하고, 토론합니다.”

  동네 책방을 사라지게 한 온라인 서점의 등장은 ‘풀무질’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은종복 사장은 ‘풀무질’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을 강조했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독립출판물들을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배치했어요. 이건 대형 서점들이 하지 않는 일이죠.” 은종복 사장의 목소리에는 학생 작가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묻어났다.

  ‘풀무질’은 책을 구매하기 위해 잠시 거쳐 가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에는 정기적으로 책 읽기 모임이 열려 사람들이 읽은 책에 관해 생각을 나눈다. 이 모임에는 처음 온 사람도 참여할 수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고즈넉한 공간에서 지식을 나눠보는 건 어떨까.

 

전남혁 기자 m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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