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처음으로 올해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1,2학년 때의 일상이 사진으로만 남아있는 게 아쉬워 새해를 맞아 일기장을 마련했다. 매일 쓰지는 못해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쓰자고 다짐했지만 한 번씩 꼬박꼬박 쓰기도 어려웠다. 한 장 꽉 채워 일기를 쓰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시작조차 않는 것이었다. 어릴 적 썼던 일기는 선생님께 검사 받아야 했고, 그러려면 예쁜 글씨로 완성된 일기를 써 내야 했다. 검사를 받지 않는 ‘나만 보는 일기 쓰기’인데도 완벽하게 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던 모양이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저마다 가장 잘 나온 ‘인생샷’을 찍어 올리기 바쁘다. 여행에 가서도, 음식점에 가서도 “재밌게 놀고 오자”, “맛있게 먹고 오자”는 말 만큼 “예쁜 사진 많이 찍어 오자”는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된다. ‘남는 건 사진뿐’이란 말이 있는 것처럼 사진은 분명 추억을 기록하기 좋은 수단이다. 그렇지만 사진을 찍는 목적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자랑스럽게 보여주기 위해선 예쁜 장소에서,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찍어야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전문기업 트렌드모니터가 2017년 SNS 계정을 보유하고 있는 성인남녀 2000명을 대상으로 ‘SNS 이용 및 피로도’에 관련된 설문을 실시한 결과, SNS 피로증후군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SNS 관리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요즘 어딜 가든 장소와 음식을 온전히 즐기기도 전에 사진 찍기에 몰두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사진 찍기 좋은 인스타 핫플’, ‘인생샷 건지는 10월 전시회’가 SNS를 켤 때마다 깜빡거린다.

  남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자 일기 쓰기는 더 가볍고, 재미있어졌다. 글씨가 비뚤거나 짧게 쓰더라도 나만의 기록이니 괜찮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SNS에 보여주기 위한 사진을 찍는 데서 한 발짝 떨어지면 마음은 한결 편해진다. 온전히 이 시간을 즐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남기면 된다. 모르는 새 ‘보여주는 삶’에 지쳐있을 나에게 약간의 여유를 줘 보는 것은 어떨까.

글|박연진 기자 osc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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