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지도자란 사람들의 꼴불견으로 나라가 온통 난리다.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는 임기말의 DJ 정권을 벼랑으로 몰아 넣었다. 유력한 대선 후보는 부친의 친일 의혹과 아들들의 병역 비리 및 은폐 의혹으로 만신창이다. 뿐만 아니다. 국무총리 서리가 둘씩이나 연거푸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했다. 자칫하다간 국무총리 없는 기형적인 국정 운영이 석달 가까이 이어질 판이다. 낙마한 두 장씨의 탈법 사실과 부도덕이 확인되면서 국민은 이 나라의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에게 절망하고 있다. 지도자와 상류층 전반에 대한 분노로 확산될 조짐까지 보인다. 청문회장에서 총리 서리들을 혹독하게 몰아부친 국회의원들이 도덕적으로 떳떳한가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 먼저 반성해야 할 집단이 다름아닌 국회의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정치권의 지도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기업 경영으로 세계적인 부를 모은 거대 재벌들 가운데서도 국민의 존경을 받는 이를 찾기가 힘들다. 탈세와 정경유착, 뇌물, 노동 억압 등의 불명예가 한국 재벌의 별명처럼 따라다닐 정도다.

하지만 더욱 걱정인 것은 지적 권위와 도덕적 리더십의 대명사여야 할 대학 총장과 언론인들까지 갖가지 불미스런 사건들로 국민을 실망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몇 대학의 총장들은 특별판공비와 학교 예산의 부도덕한 집행, 심지어는 가짜 박사학위의 구입 알선 등으로 물의를 빚었으며, 유력 언론사 사주들은 친일 경력과 탈세, 도박 등으로 사회적인 지탄을 받거나 구속까지 되는 실정이다.

왜 이럴까?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첫째는 친일 인사의 역사적 청산이 부재했던 불행한 근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36년 동안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조국의 청년들을 총알받이로 내모는 등으로 민족을 배반한 친일 인사들이 해방 후에도 정치, 경제, 문화, 언론, 법조, 검찰, 경찰, 군, 교육계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지도자로 다시 등장한 반면에, 가정을 희생하면서까지 온 몸으로 조국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들은 자손대에 이르기까지 힘든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소한의 역사청산도 해내지 못한 오욕의 근대사는, 공익에 앞서서 사적 이익을 챙기고 보는 오도된 지도자상을 낳게 했고 속물적인 처세술이 우리 사회에 유행하게 했다.
둘째, 1960년대 이후 들어 박정희정부가 추진한 성장제일주의와 반공정책도 지도자의 자질은 물론 국민의 가치관을 좀먹는데 크게 기여했다. 성장제일주의 정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추진되었고, 반공은 인권과 민주주의에 앞서는 국시로 떠받들여졌다. 정부는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부도덕한 정경유착이나 인권유린, 노동억압을 앞장서 밀고 나갔으며, 반공을 이유로 적나라하게 국가폭력을 휘둘렀다. 정부에 의해 선택된 몇 개 재벌들도 경제성장을 명분으로 노동억압과 탈세, 밀수 등 반사회적 범죄를 예사로 여겼다. 정부와 재벌 모두에게 도덕이나 사회적 윤리, 인간적 가치는 철저하게 무시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해방 직후의 뒤틀리고 전도된 가치는 군사정권 하에서 물질만능주의와 인간 경시 풍조가 쉽게 뿌리내리게 한 토양이 되었다. 식민지 경험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절대 빈곤과 이념과잉에 시달리던 국민들도 건강한 가치와 사회윤리를 파괴한 성장제일주의와 반공정책에 쉽게 동원되었다.
 

셋째, 선출직 지도자들이 최소한의 자질 미비를 넘어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게 되는 이유로는 잘못된 정치제도와 정치문화 외에도 유권자의 타락한 투표 행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책과 비전, 능력과 도덕성을 비교해 뽑기보다는, 동향 사람, 집안 사람, 동문 출신을 찾아 뽑기 일쑤이니, 지역과 나라의 내일을 이끌 제대로 된 지도자가 뽑힐 리 만무하다. 지역감정과 연고주의의 수렁에 빠져 이성적인 투표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자격없는 선출직 지도자를 갖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 것이다.

넷째, 선출직을 포함해서 각계의 지도자들이 무자격과 부도덕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또다른 이유는 민주주의가 부재했던 최근까지의 어두운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즉 권력자나 지도자에 대한 비판과 견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거나 그래서 소위 성역이 엄존했던 역사에서는 지도자가 꾸준한 검증과 비판을 통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과 괴리된 성역 안에서 보호받으며 군림해 왔다.

 정치권이든 경영계든, 심지어 언론계, 학계, 종교계에 이르기까지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지도자들이 검증받고 비판받지 않은 채 우리 사회의 상층부에 군림해 왔던 것이다. 대선 후보들의 치부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 국무총리 후보들의 부도덕성과 비리가 청문회장에서 확인되어 결국 낙마하고 마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문제는 점차 민주화되고 개방된 사회에 어울리는 투명하고도 흠결없는 지도자를 어서 빨리 갖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지도자 역할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과제이기도 하지만, 훌륭한 지도자를 갖고 싶어하는 우리 국민의 몫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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