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된장찌개, 맛깔스럽게 비벼진 비빔밥, 한국인에게 장(醬)으로 만든 한식은 없어진 입맛도 순식간에 되찾아주는 ‘밥도둑’이다. 집에서 담근 장을 활용해 음식을 만들고 식사하는 문화는 삼국시대부터 한국인의 생활에 녹아 전수돼왔다. 이러한 가치를 고려해 문화재청은 지난 1일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 예고했다. 30일 이상의 지정예고기간 동안, 장 담그기의 전반적인 역사와 가치가 재검토되고 있다.

 

  천 년을 자랑하는 우리의 건강식품 ‘장’

  문화재청은 지난 1일 보도자료를 통해 “콩을 발효시키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장 담그기를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으로 지정 예고한다”며 “장 그 자체의 효능을 넘어 재료를 준비하고 발효시키는 전반적인 과정을 모두 포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장 담그기의 가치를 △고대부터 오랫동안 장을 담가 먹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점 △우리나라 음식 조리법이나 식문화에 관한 연구 등 다양한 방향으로 연구될 수 있다는 점 △주거문화, 세시풍속, 기복신앙, 전통과학적 요소 등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 △세대 간에 전승되며 모든 한국인이 직간접적으로 동참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했다. 문화재청 무형문화재과 이동융 사무관은 “2015년에 무형문화재 법이 개정된 이후로 김치 담그기, 제염과 같은 전통이 지정되고 있다”며 “장 담그기도 여러 가치를 인정받아 현재 지정 예고 중”이라고 설명했다.

  장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데에는 한국 장 문화가 가진 유구한 역사의 영향이 크다. 장이 우리 식단에 등장한 시점은 삼국시대로, 다양한 역사서를 통해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 위지 고구려전>에 따르면 ’고구려 사람들이 발효음식을 잘 만든다‘는 기록이 있어 이때부터 장을 담가 먹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삼국사기>에서도 장과 관련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 신라 왕실이 혼인할 때 폐백으로 들어온 물품 중 장이 포함됐다는 내용이 있다.

  오랜 역사에 걸맞게 장 담그기 문화는 세시풍속, 기복신앙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장이 담긴 장독대에 고추, 대추를 넣고 금줄을 치는 풍습이 그 대표적 예다. 조상들은 팥죽으로 악귀를 물리치듯이 붉은색 고추나 대추를 장독대에 넣어 나쁜 기운을 쫓아냈다. 신동화 장류기술연구회 회장은 “1500년 전부터 장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오랫동안 전해온 전통인 만큼 장 문화는 식문화뿐만 아니라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세대를 이어 계승돼 온 장 담그기는 현대에 이르러서 영양학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된장·고추장은 항암성, 항산화성이 뛰어나 건강식품으로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특히 된장은 각종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되는 식이섬유, 비타민E, 페놀산 등이 풍부하다. 이에 외국 현지식에 맞춘 소스, 장을 활용한 이유식 및 노인식 개발 등 관련 연구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 콩을 발효시켜 장을 만드는 전통문화인 '장(醬) 담그기'가 국가무형문화재 신규종목 지정을 앞두고 있다.

  중국·일본과 다른 우리만의 비법

  우리 장이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인 중국, 일본 장과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점도 장 담그기의 가치로서 주목받고 있다. 세 나라 모두 콩을 발효해 먹는 ’두장(豆醬)‘ 문화에 속하지만, 오직 콩만 사용하는 메주를 이용한 방식은 우리나라만이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삶은 콩을 발효시켜 메주를 먼저 띄우고 이를 바탕으로 간장, 된장, 고추장을 만드는 독특한 제조 방법을 전승해오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은 장을 콩만으로 담지 않을뿐더러 된장류나 간장류를 별도의 개별적 작업으로 만든다. 일본의 경우, 콩과 함께 밀 등의 곡물을 첨가해 우리 장보다 단맛이 강하다. 중국은 광활한 대륙에 어울리게 다양한 장 종류가 있지만, 우리 장과 같이 콩만을 사용한 방식은 찾기 어렵다. 신동화 회장은 “고구려의 영역인 만주 지역에서 메주콩이 처음 수확된 이후로 콩을 이용한 우리나라만의 독창적 장 문화가 형성되기 시작됐다”며 “단백질이 부족한 평민들에게 콩은 소중한 보충원이기에 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음식의 재료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우리 장만의 독창적 특징으론 깊은 맛을 내는 간장인 ‘겹장’이 있다. 겹장은 이전에 미리 담가 놓은 간장에 매년마다 다시 메주를 넣어 우려내는 것을 뜻한다. 전년도에 담아둔 간장을 흔히 ’씨간장‘이라 하는데, 이 씨간장에 매년 메주를 넣어 우려내면 더 깊은 맛을 내게 된다. 이처럼 장을 이전에 담가 놓은 장에 겹쳐 발효시키는 방식은 우리나라 장에서만 나타나는 독창적인 전통이다.

 

  한식의 근간을 지켜야

  장 담그기가 전통문화로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시대의 변화로 직접 장을 담그는 세대는 줄어들고 있다. 산업화를 통해 장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며 굳이 집에서 장을 담그지 않아도 언제나 먹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냄새, 장독대 공간 확보 등의 문제점도 도시 지역 대부분을 차지하는 아파트, 빌라와 같은 다세대 가구에게는 현실적인 장애물로 작용한다.

  아직까지도 시골에서는 직접 장을 담는 가정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전승되는 전통문화라는 측면에서 인정받은 가치가 무색한 상황이다. 이에 신동화 회장은 “장 담그기는 한식의 뿌리이므로 장 없이는 한식이 존재할 수 없다”며 “장 담그는 세대가 적어지면 한식의 전통과 다양성이 줄어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을 실시해 많은 세대가 부담 없이 장을 담그도록 유도함으로써 전통문화의 명맥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이동융 사무관은 “주거생활이 변화하면서 장을 직접 담그는 가정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최근 전통음식이 가져다주는 건강상 이로운 점들이 부각되고 있다”며 “공모전, 체험행사와 교육 프로그램, 축제 등의 지원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글│김인철 기자 charlie@

사진제공│순창군장류사업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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