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헌재)가 병역법 제5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국회에 내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 도입을 주문했다. 국방부는 최근 “대체복무안 도입방안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현재로선 ‘36개월 교도소 합숙 근무’가 유력하다”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현역병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인 복무안이 마련될 것인지 국민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피고인들 ‘민간 대체복무’ 주장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무기 소지는 거부하나 군의 감독을 받는 다른 복무는 받아들이는 이들과, 군의 통제와 감독을 모두 거부하는 이들이다. 후자의 경우 “국가가 군과 어떠한 관련도 없는 진정한 형태의 민간 대체복무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신설된 대체복무안이 진정한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가 아닐 경우 일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다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승헌 씨의 변호인 측인 오두진 변호사는 “국제표준에 맞는 진정한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는 군 영역 밖의 업무를 수행해야 하며 군의 명령 체계 내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즉, 대체복무로 인한 보수 지급과 징계권자, 상기 관리감독자가 병무처와 완전히 분리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일부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체복무 이행을 거부할 경우 국가에서 어떤 대처를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대체복무를 시행한 외국 사례를 보면, 이들을 인정하기도 처벌하기도 했다. 독일은 대체복무까지도 거부하는 국민을 위해 자발근로를 도입해 적절한 봉사활동을 수행하도록 한 반면, 아르메니아는 군이 관할하는 대체복무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벌했다. 우리나라에서 대체 복무 거부자가 발생할 경우, 법원에서 이들을 처벌할지 용인할지 결단해야 한다.

  오두진 변호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대다수인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민간 성격의 대체복무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오랜 기간에 걸쳐 주장해왔다”며 “만약 군과 연관된 대체복무를 마련한 뒤 이를 거부한다고 이들을 처벌한다면 또 다른 인권침해가 야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치열한 복무기간 논쟁, 1.5배 vs 2배

  가장 주요한 쟁점은 대체복무제의 복무기간이다. 대체로 현역복무기간(18개월)의 1.5배에 해당하는 27개월과 2배에 해당하는 36개월 안으로 의견이 갈린다.

  인권단체들은 대체복무 기간이 현역복무 기간을 과하게 초과하는 징벌적 성격을 띠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10월 10일 발표한 <인권상황실태조사>를 통해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복무에 준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되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시 현역복무보다 기간을 길게 산정하는 예외조항을 둘 수 있다”며 “대체복무제를 운영하는 대부분의 국가가 대체복무기간을 군복무기간의 1.5배 이내로 산정한 만큼, 우리나라도 대체복무기간을 군복무의 1.5배 이내로 잡는 것이 타당하다”고 발표했다. 오두진 변호사도 “기본적으로 기간이 같은 게 옳지만 악용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기에 1.5배까지는 국제적으로도 허용한다”며 “대체복무가 공익에 기여한다는 인식이 생기면 그 기간을 줄여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승(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유엔 자유권 규약 위원회는 현역의 1.5배 이상을 넘는 대체복무 기간은 징벌적이라고 판단했다”며 “독일의 대체복무는 출퇴근을 해서 복무 기간이 3개월 길지만 우리 국방부가 잠정 결정한 안은 합숙을 할 예정인데도 기간을 2배로 정해 징벌적”이라고 덧붙였다.

  반대로 각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해외 사례를 일괄적으로 적용하긴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에 반대의견을 냈던 조희대 대법관은 “사례로 자주 제시되는 독일의 경우 1·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살상을 저지른 역사적 경험 이후 국민 내부에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들과 우리나라의 상황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군대를 기피하는 경우 군복무자들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병욱(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현역복무는 24시간 근무는 물론이고 총기 사고나 폭행 사건으로 인해 상해를 입고 인권침해를 당할 위험까지 감수해야한다”며 “이러한 현역의 위험성까지 고려하면 대체복무는 현역복무 강도보다 무거워야 한다”고 말했다.

  현역병과 대체복무 사이의 형평성 문제뿐 아니라, 대체복무 내에서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 장영수(본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교도소나 소방서 등 각자 다른 공간에서 다른 강도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며 “각 복무강도를 정량화하고 이에 따라 형평성을 맞춰 기간을 조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역복무 여건 개선 필요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무죄로 판결한 뒤, 19일 수원지법 안산지원 형사3단독 송영환 부장판사가 현역복무 이후 성경 공부로 살생과 전쟁에 반대하는 신념이 생겨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양심적 예비군 거부에 대한 대체복무안 마련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변경된 양심도 법적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하태훈(본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역병으로 군대를 다녀왔다 하더라도 종교와 신념이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예비군법에 비군사 부문에서 예비군훈련 의무를 이행하는 대체복무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영수 교수는 “양심적 예비군 병역거부도 양심적 병역거부의 일종”이라며 “적절한 예비군대체제도가 신속히 마련되지 않을 시 사실상의 예비군 면제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에서 2019년 12월 31일까지 대체복무제를 마련하라고 주문했으나 기한 내 법안 마련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장영수 교수는 “국회에서 여야 간의 갈등 끝에 법안 도입 기간을 넘긴 적이 꽤 있다”며 “내년 말까지 국회에서 대체복무와 관련한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병역 판정의 근거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병역법 5조가 무효가 돼버리면 법이 마련될 때까지 누구에게도 병역 부과를 하지 못하게 된다”며 “혼란이 생기지 않도록 기한까지 국회가 입법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판결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여전한 만큼, 근본적인 군대 내 문화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태훈 교수는 “많은 이들이 군대를 불이익으로 여기는 현 상황에서는 대체복무 도입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군대가 가고 싶은 곳이 될 순 없더라도 어떤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할 곳으로 여겨지지는 않도록 군 문화 개선도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송채현 기자 bravo@

그래픽 | 이지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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