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육개월의 군복무와 IMF 경제위기로 선택한 사년간의 직장생활을 끝내고 오로지 학업에 대한 열정 하나만으로 서창교정을 다시 찾은 것은 바로 지난 학기였다.

앞만보며 정신없이 뛰어다녔던 지난 사년간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와 새학기 첫 수업을 듣기 위해서 교문을 지나 벚꽃, 개나리꽃, 진달래꽃으로 화사하게 수놓인 교정을 거닐었을때의 설레임은, 내가 처음 합격통지서를 받고 입학했을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어떤 특별한 것이었다.

만 팔년만에 다시 찾은 서창 교정은 내가 입학했던 지난 구십사년 때와는 분명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우선 번듯한 교문이 생겼고, 현 체육관 건물 위에 부착되었던 촌스럽기 그지없는 붉은 색 ‘고려대학교’ 간판은 사라졌으며, 당시 학생회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은 현재 국제 어학원으로 바뀌어져서 그 기능을 달리하고 있고, 나와 내 동기들이 그토록 간절히 염원했던 학생회관 건물이 지금은 ‘진달래관’으로 멋지게 단장을 해 놓은 상태다.

그리고 지금의 ‘진달래관’옆 농구코트 자리쯤에 위치해 있었던 낡아빠진 가건물 학생식당은 사라져서, 지금의 학생회관 지하 건물에 당당히(?) 자리잡고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에는 옛 깡통매점 자리에 테이크아웃 음식점이 새로 문을 열었고, 현재 신축 기숙사는 공사가 한창이며, 내년엔 휘트니스 센터와 노천극장도 생긴다니, 재학생의 한 사람으로서 흐뭇하고 반갑지 않을 일일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지난 학기의 경험을 토대로 서창의 현주소를 반추해 보건데, 위에서 열거한 외형적인 발전을 제외한 몇 가지 면에서 아쉬운 점들이 발견되어 다음에서 논해보고자 한다.

우선, 지난 99학년부터 실행된 학부제의 도입으로 현재 서창의 전 학과는 소위 공황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소속되어있는 독어독문과(현 독일문화정보학과)의 경우 과 명칭이 바뀌었으며, 또한 현 어문학부중에서 소위 비인기과로 전락하여, 상대적으로 상당수의 신입생들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문과와 중문과로 집중 지원하는 초기형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자연히 지금의 독일문화정보학과는 부족한 학생수와 학우들의 자괴감으로 난관에 봉착해 있으며, 매학기 들어오는 편입생들로 정원수를 간신히 채워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어의 사회적 수요가 영어와 중국어에 비해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순수학문으로서 혹은 다른 학문과의 연계성면에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자부한다.

학교 측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하여, 특정 학문에만 집중투자하는 획일성 보다는 보다 균형잡힌 학과편성으로서의 다양성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또한 학부제는 기존의 학생들 사이에 존재했던 질서의식을 붕괴하여, 지금은 선?후배간의 위계질서나 끈끈한 정 또한 찾아볼 수 없는 아주 삭막한 분위기가 만연되어 있는 실정이다. 과연 지금의 학부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렇다면 인기학과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들만이라도 질적으로 우수한 교육을 받고 있는걸까? 인기학과로의 과잉경쟁으로 신입생들의 심리적 부담과 그로 인해 해를 거듭할수록 증가한다는 시험 부정행위는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의 실정과 체질에 맞는 교육 체계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앞 뒤 가려보지 않고 서구의 것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미봉책이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는다. 학교 측은 이 점을 명심하고, 학과제로의 재개편에 대한 용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둘째, 어윤대 총장이 취임하면서 강조하는 것은 ‘고대의 세계화’이다. 하지만 서창의 현주소를 고려할 때, ‘세계화’라는 말은 다소 거리감이 느껴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 언론에서 보도되었던 것처럼,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시 서창 학우들은 지방대학의 한 분교로서 수도권 소재 학교들보다 낮은 등급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이러한 망국병인 학력 차별에서 오는 사회적 진출로의 장애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상당수의 편입생들을 포함한 서창 재학생들은 입학과 동시에 안암캠퍼스로의 복수전공과 대학원 진학에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서창에 개설되어 있는 학과들은 소수 몇 개 학과들을 제외하곤 대부분이 중복되어 있어서, 지방캠퍼스로서의 특성화가 전혀 이루어져 있지 않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안암캠퍼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해 있는 것 또한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학교측이 서창 학우들을 수익성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고 많은 학생들이 분개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한다. 충남 연기군 조치원읍에 소재해 있는 본교는 신행정수도 이전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다가올 중부권 시대의 명문대학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최적의 지리적 조건과 그에 합당하고도 충분한 명분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자고로 세계화란 무엇인가? 원어민 교원수와 교양영어 수업시간을 대폭 늘리고 영어카페를 만들어 모든 학생들을 서구화 시키는 것이 세계화가 아니라, 안으로는 교육개방과 함께 향후 물밀 듯이 밀려들어올 해외 대학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할 것이고 밖으로는 인류의 발전과 세계 평화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지/덕/체를 함양하는 교육이 진정한 세계화로의 나아갈 길인 것이다. 요약한다면, 지금까지의 서창은 과도기적 단계를 거쳐왔다손 치더라도, 앞으로는 ‘세계화’라는 지표에 걸맞는 특성화가 이루어져 한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는데, 입학 후 십년 뒤에 다시 찾은 서창은 내실면에서 오히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한 마음에 몇 자 적어보았다. 강의실의 난방시설이 미비하다 할지라도, 학업에 대한 열의만 있다면 두 손을 비벼대며 열심히 공부할 순 있다. 강의실이 부족하다면 야외에서라도 교수님들과 학생들이 혼연일치가 되어 얼마든지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

하지만 20대의 청년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그들만의 꿈과 미래를 펼쳐나갈 수 없다면, 우리들은 그 안에서 절망하며 방황할 수밖에 없다. 지금 안암에서는 백주년 기념행사 준비가 한창인걸로 알고 있다. 굴곡 많았던 지난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주역이었던 고려대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한다는 것은 고대 가족들뿐만 아니라 우리 한국사회에서도 큰 의미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한국사회의 주역으로서 그리고 세계의 명문대학으로서의 명성을 얻고자 한다면, 개교 백주년을 맞이하는 지금의 시점에서 어느 때보다도 고려대학교가 진정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보다 학생들의 의견에 귀기울이려는 학교측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이런 맥락에서, 점점 가시화되고 있는 신행정수도 이전으로 인한 중부권 지역의 도약으로 고려대학교 백주년 기념사업의 주인공은 마땅히 서창캠퍼스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학부제가 폐지되어야 하고, ‘세계화’에 부응하는 경쟁력있는 학과의 특성화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서창만이 희망이다!

목정하(인문대 독어독문학과 94학번)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