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국에 돌아와 맞은 첫 해 겨울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한국영화였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매우 친근하게 즐길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 프랑스나 이탈리아 영화를 본 듯한 기분도 들었다. 이건 단순히 그쪽 영화를 모방했다는 뜻이 아니다. 영화라는 장르가 서구에서 탄생했지만, 지구촌 안에서 인간의 공통적 심성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를 한국인의 손으로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인간의 공통적 심성 담은 한국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안에는 사랑 이야기도 있고, 죽음의 의미도 있고, 무엇보다도 일상생활과 함께 비일상적 경험이 있다. 곧 평범함 속에서도 독특함을 품고 있는 삶이 있다. 우리 인간의 삶이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가 ‘사랑 이야기’인가 아니면 ‘죽음에 대한 성찰’
을 주로 하고 있는가 하는 논쟁도 있었다고 들었다. 영화의 전체적인 전개를 보면 남녀의 사랑을 애잔하게 그린 멜로드라마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더구나 나처럼 인간 감정의 ‘촌스러움’을 일상에서 소중히 간직하려는 사람들에게는 감상적 애정극이란 항상 값진 것이다.

다른 한편, 이 영화는 서사 구조에 ‘죽음의 기능’을 도입하지 않고는 작품으로 탄생할 수 없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이야기 전개의 핵심적 기능으로서 죽음은 거의 절대적이다. 이 영화가 죽음을 주제로 하거나 죽음에 대한 본격적 성찰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죽음의 기능을 철저히 이용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 이런 점에서 현대 실존주의의 이론 전개 테크닉을 영화에 전용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인간 삶에 있어서 ‘죽음의 기능’이란 매우 높은 효율성을 지니고 있어서, 예술 작품을 만드는 데 곧잘 이용된다. 죽음이란 인간 삶을 조정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기 때문에 인간 삶은 특별한 형태를 갖추는 것이다. 죽음은 사람이 죽는 순간에만 삶에 한계를 지우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생의 시작부터 끝까지 삶의 형태와 방식을 정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누구나 언젠가 죽는 피할 수 없는 조건에 있다고 해서- 매일 죽음을 ‘의식하고’ 살지는 않는다.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은 주로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고 산다. 나이 먹고 늙고 하는 것 말이다. 그래서 이야기 구성에 죽음에 대한 특별한 의식의 상황을 도입하게 된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처럼 주인공의 ‘임박한 죽음’ 즉 시한부 인생이라는 삶의 조건은 멜로드라마의 서사 방식조차 바꾸어버린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도 독특한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죽음이라는 고귀한 철학적 주제에 기계적 냄새가 나는 ‘기능’이니 ‘효율성’이니 ‘이용’이니 하는 단어를 가져다 붙이는 것이 귀에 매우 거슬리는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얽혀 들어가 있게 마련이다. 영화 같이 이른바 종합예술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허진호 감독이 죽음의 기능을 이용하는 방식은 영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일관적이고 노골적이다. 이 점에서 절제는 없다. 도입부의 장면들은 죽음을 일상에 끌어들이는 작업이다. 주인공 정원이 밝은 분위기의 거리를 스쿠터로 달리는 장면은 곧 그가 힘없이 잠들어 있는 모습으로, 병원의 복도로, 죽음의 그림자를 조금씩 보여주며 이어지고, 마침내 학교운동장에서 정원의 독백은 “돌아가신 어머니”, “나도 언젠가는 사라져 버린다” 같은 어찌 들으면 어색할 정도로 죽음의 의미를 담은 단어들을 나열한다. 이러한 의도적 배치는 영화의 종결부 정원의 영정 사진으로까지 끊임없이 이어진다.

다만 일상에서 죽음을 의식하는 구도의 축은 남자주인공 쪽에만 있다. 여주인공 다림은 정원이 시한부 인생을 산다는 것을 모르고 만난다. 어찌 보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림이 이제는 고인이 된 정원의 사진관 쇼윈도에 걸린 자신의 사진을 보며 짓는 밝은 미소는, 항시 죽음을 의식하며 살지는 않는 우리의 일상을 되돌려 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눈 내린 겨울의 사진관 앞에서 미소짓고는 이내 등을 돌려 관객 쪽으로 성큼성큼 걷는 다림이 등장하는 몇 십 초 안 되는 라스트 신은 이 영화가 일상에서 흔히 있다가 사라지는 사랑 이야기라는 것을 상기하게 한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은 확실히 멜로드라마의 틀 속에 있다. 길거리에서 주유소에서 공원에서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등등… 수많은 ‘작위적 우연’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사랑 만들기 이야기와 적재 적소에서 가슴을 흔들고자 하는 배경 음악은, 죽음을 앞둔 정원이 먼 발치 다림의 모습을 카페의 유리창을 통해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룬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는 리스크를 지고 있다. 주제의 분열이라는 리스크가 그것이다. 죽음에 대한 성찰과 사랑 이야기라는 영화 해석의 대립도 이에 기인한다. 마치 회화에서 구도의 이분법적 분열이 치명적 리스크가 될 수 있듯이, 서사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문학과 영화에서 주제의 분열은 작품을 망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허진호는 이 리스크를 피하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그 열쇠는 바로 ‘일상의 지형’이라는 것이다. 일상의 지형은 죽음의 급박한 조건과 담담한 터치의 사랑 이야기가 절충할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한다.

 
분열된 주제, 절충 통해 승화시켜
 
이 점에서 『8월의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절제의 미학’이라기보다 ‘절충의 기술’이다. 사랑과 죽음은 그 어느 것도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인간 삶의 두 축이다. 그것이 일상 속에 절충되어 스며든 것이다. 죽음의 모티브와 멜로드라마의 통속적 전개를 절충하는 기술은 쉽지 않다. 반면 그것을 이루어내면 뛰어난 예술성을 획득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시도했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닐까. ‘8월’과 ‘크리스마스’의 절충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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