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 사이의 줄다리기 속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존폐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서도 해당 법 조항에 대해 연구를 활발히 진행해왔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비범죄화 논의와 대안에 관한 연구>의 공동 저자 윤해성 연구실장과 김재현 박사를 만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논의의 방향성에 대해 들어봤다.

윤혜성 연구실장(좌)과 김재현 박사(우)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현황과 개선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윤혜성 연구실장(좌)과 김재현 박사(우)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현황과 개선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데

  김재현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하는지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처벌 규정으로 인해 진실을 말함에도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와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롯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려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헌법에 따르면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할 당위성도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폐지되면 개인의 사생활이나 명예를 보호할 다른 수단이 없습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두 권리가 형법에서 충돌하는 것이죠. 두 권리를 동시에 보호할 절충안이 필요한데 아직 미흡한 상황입니다.”

 

  - 처벌받는 사실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김재현학문적으로 사실이란 말 그대로 팩트를 가리키는 겁니다. 개인의 의견이나 가치평가는 배제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판례는 사실의 범위를 굉장히 넓게 보고 있습니다. 사실에 기초해 장래에 대한 의견을 표명해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수험생이 공부를 안 하고 매일 논다고 가정해봅시다. 이건 분명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저 학생은 분명 대학에 떨어질 거야라고 장래에 대해 말하는 것도 우리나라 판례는 사실의 범위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윤해성사실을 말한다고 무조건 처벌받는 것은 아닙니다. 해당 사실의 공익성과 공연성을 따진 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인지 판단합니다. 특히 공익성은 형법 제310조에서 위법성 조각 사유로 명시하고 있는데, 당해 적시사실의 내용과 성질, 공표가 이루어진 상대의 범위, 표현의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익성 여부를 결정합니다. 공연성은 해당 사실의 전파 가능성을 뜻합니다. 적시한 사실이 여러 사람에게 전파돼 피해자의 외적 명예를 훼손시킬 가능성이 있는지 보는 것이죠.”

 

  - 공연성에 대한 법적 해석이 엇갈리는데

  윤해성판례는 공연성, 즉 전파 가능성 이론을 인정하고 있지만, 학계에서는 전파 가능성 이론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전파 가능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사안에 따라 들쑥날쑥하다는 학자들의 비판이 거셉니다. 일례로 두 사람이 SNS 비밀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는 전파 가능성이 인정됐습니다. 반면 기자에게 사실을 이야기했음에도 기사화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파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은 판례가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공연성을 판단할 기준이 애매해 판사의 자의가 형성되는 것이죠.”

 

  - 외국에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어떻게 처리하나

  김재현독일은 형법 제186조에 따라 타인을 경멸하거나 세평을 저하시키기에 적합한 사실을 주장, 유포한 자는 이러한 사실이 증명할만한 진실이 아니면 1년 이하의 자유형 또는 벌금형에 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장하거나 유포한 사실이 진실임이 증명되면 처벌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처벌 규정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도 독일과 마찬가지로 유포한 사실이 진실이라면 처벌하지 않습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가 명예훼손을 처벌하는 실정법이 있음에도 거의 형사법으로 다루지 않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명예훼손 행위에 대해 처벌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 민사상 손해배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습니다.”

  윤해성일본은 우리와 법 규정이 비슷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위법성 조각 사유가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해당 사실이 진실임을 증명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익성까지도 입증해야 합니다. 반면 일본은 독일과 마찬가지로 유포된 사실이 진실임을 밝히면 위법성이 조각돼 처벌하지 않습니다. 또 일본은 명예훼손죄를 친고죄로 규정하고 있어 피해자가 고소하기 전까지는 유포된 사실을 공공의 이익으로 간주합니다. 이렇듯 명예훼손죄의 폐지나 소극적 적용은 세계적 흐름입니다.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우리나라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 우리나라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는데

  김재현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의 가장 큰 차이는 수사권 발동 시기입니다. 친고죄가 반의사불벌죄보다 요건이 까다로워 수사권의 발동 시기가 늦습니다. 친고죄는 명예훼손을 당한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만 수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 반의사불벌죄는 당사자의 고소가 없더라도 수사기관이 정보를 입수하면 바로 수사에 착수할 수 있어요. 물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않습니다.”

  윤해성우리나라 명예훼손죄는 증가 추세에 있는데, 이 중에서 공소권 없음이나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명예훼손죄에 대한 고소고발이 남발되고 있다는 뜻이죠. 만약 우리나라의 명예훼손죄를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친고죄로 규정한다면 수사권이 함부로 발동되지 않아 이러한 현상은 줄어들 수 있습니다.”

 

  - 앞으로 우리나라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김재현만약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존치한다면 위법성 조각 사유를 확대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익성의 의미를 넓게 해석하고 적용해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합니다. 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사생활 침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세계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는 추세인 만큼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폐지해야 합니다. 다만 폐지 이후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정을 신설해야겠죠.”

  윤해성문화 개선도 필수적입니다. 우리나라는 빠른 인터넷 속도와 익명성으로 온라인상에서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피해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정보통신망법상 해당 게시물을 삭제 조치할 수 있지만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온라인 예절을 지키는 시민의식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용어 설명

- 친고죄 : 범죄 피해자나 그 밖의 법률에서 정한 사람이 고소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

- 반의사불벌죄 : 형법에서 피해자가 처벌을 바라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를 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

 

정한솔 기자 delta@

사진황준혁 기자 k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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