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에 가서 자주 범하는 실수가 있다. ‘How old are you?’라며 대화를 시도한 경우가 바로 그것. 나이를 묻는 것이 크나큰 실례인 서구에 비해 우리는 초면에 나이를 묻는 것이 그리 낯설은 인사방법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친한 사이가 아닐지라도 서로간 나이를 묻고, 나이에 따라 반말이나 존댓말을 하는 과정은 한국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그 절대적인 수치를 떠나 새로운 대인관계를 결성하는 데 있어 필요한 전제조건으로 작용하고, 나아가 대인관계의 형태까지도 규정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나이에 대한 인식은 점차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듯하다. 단적인 사례로 얼마 전 있었던 한 통신회사의 광고 문구를 들 수 있다.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바로 그 광고 문구. 현재 이에 대한 여론은 무척 호의적이다. 이제까지 81%의 네티즌이 이 광고에 대해 ‘정말 좋았다’라고 평가하고 있고, 해당 홈페이지에는 광고에 출현한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핵심 이미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이에 대한 이러한 인식변화는 각종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요소에 기인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그 중 하나로 나이 본위에서 탈피한 최근의 능력중심주의의 풍토를 들 수 있다. 기존에는 나이가 많다는 것은 경험이 많다는 것을 의미했고, 그렇기에 입사시기가 언제인가에 따라 ‘직급’이 결정됐다. 그러나 직장문화가 능력중심주의로 변하고 부터 나이가 승진에 있어서 유달리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다. 게다가 이른바 ‘젊은 사장’의 이미지를 계속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사람들은 기존 ‘중후한’ 오너만을 고집하지는 않게 됐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각계각층에서 필요로 하는 경험의 성격의 종류가 다변화되고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전통 농경사회에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경험이란 대부분 농작법에 국한됐기에, 나이를 많이 먹을수록 지니고 있는 영향력이 증대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반면 현대사회에서는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에 절대적인 연령을 의미하는 ‘나이’ 대신, 상대적인 개념의 ‘경력’이 능력을 검증의 주요 잣대가 되고 있다.


기존사회에 통용되던 나이 개념 '흔들'
늙음에 대한 긍정 내면화 · 제도보완 필수

 

혹자는 나이에 대한 사고전환은 빠르고 새로운 것만 추구하려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입장에서 비롯됐음을 지적하기도 한다. 대개 늙음은 낡음, 느림의 이미지와 연관되기 마련이다. 이들 모두는 발빠르게 전개되는 세상사에서 쓸모 없는 것으로 치부된 바 있다. 결국 그 쓸모 없던 개념들이 다시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은 기존 사회에 대한 성찰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늙음에 대한 긍정이 실생활에까지 응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의식으로는 찬성하지만, 나 자신이 스스로 늙어 가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두려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두려움은 주름살 수술, 피부 주름살 제거 수술 등의 성형문화가 기형적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더 늙기 전에 ∼을 하라'는 식으로 젊었을 때 해놓아야 할 행동강령들은 흔했지만, 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덜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에 출간된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58』, 『인생의 황혼에서』, 『나이듦에 대하여』 등의 서적은 독자에게 나이에 대한 의미를 재고케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나이에 대한 긍정’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제도전환이 필수라는 목소리도 높다. 나이가 이미 경쟁 요소로 이미 자리 매김한 한국 채용 시장에서, 나이의 많고 적음은 종종 능력의 그것보다 더 큰 효력을 발휘하곤 한다. 이제까지 우리 사회에서 나이 차별에 대한 논의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한은퇴자협회 등 단체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됐다. 그 결과, 정부는 지난달 15일 “앞으로 근로자 모집. 채용시 응시연령을 제한할 수 없게 되고, 연령을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도록 제도화”한다는 법을 골자로 노인보건복지 종합대책'을 확정했다. 이제 초점은 새로 제정된 법이 공평하게 골고루 적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맞춰져 있다.
지금, 나이에 대한 사회적 관념이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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