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연구원은 62년간 민족의 뿌리를 연구해왔으며 앞으로도 한국학 분야의 지평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민족문화연구원은 62년간 민족의 뿌리를 연구해왔으며 앞으로도 한국학 분야의 지평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학부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녹지캠퍼스 안쪽에는 거대한 한옥 건물이 숨어있다. 화정체육관 바로 옆, 담장에 둘러싸인 한옥 양식의 건물은 한국문화를 비롯해 현대 한국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연구하는 교내 유일의 종합 한국학 연구기관, 민족문화연구원(원장=김형찬, 민연)이다. 민연이 연구하는 한국학은 넓은 의미에서 한국 고유의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보유 장서 8만여 권, 소속 연구자 120여 명, 지금까지 수행한 연구과제 4200여 건. 그 방대함을 자랑하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을 찾았다.

 

  올해로 62, 민연의 역사

  1957, 민족문화연구원의 전신은 한국고전국역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창립됐으며 한문으로 쓰인 고전들의 한글화 작업을 주로 해왔다. 이후 1963, 민족문화연구소로 확대·개편된 민연은 정통 인문학의 범주에서 한국의 문학과 역사, 철학으로 연구의 범위를 넓혀갔다. 그 당시 민연이 민족문화의 현대적 인식과 계승을 취지로 기획한 1980년대 <중한사전>, <한국민속대관> 등 출간물들은 민연의 재정마련에 크게 기여했다. 김형찬 민족문화연구원장은 본래 지금의 해송법학도서관 3층에 위치했던 연구원은 1990년대 중반 녹지캠퍼스에 새롭게 신축된 건물로 이전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1999년 완공된 이 건물이 현재 화정체육관 옆에 위치한 한옥 양식의 한국관이다. 김 원장은 명실상부하게 한국학 연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건물 외형에서부터 확실히 각인시키고자 한옥 양식으로 건축하게 됐다고 말했다.

  1997, 민족문화연구소는 민족문화연구원으로 승격됐다.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승격됨에 따라 민연은 산하에 연구소를 신설했다. 각각의 연구단위가 책임지는 연구의 규모가 커진 것이다. 김형찬 원장은 “1997년 당시 민연 산하에 있었던 본교 한국사연구소를 포함한 연구소 일부는 독립적인 연구소로 분리해 나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의 민연은 크게 본부기구, 연구센터, 연구과제팀, 기획연구팀으로 나눠진다. 오정록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지원부 부장은 연구센터와 연구과제팀은 모두 연구사업을 진행하는 곳이지만, 연구센터는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연구과제팀은 한국연구재단을 비롯한 다른 기관에서 발주하는 연구과제를 단기적으로 수행한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말했다. 보통 연구과제팀에서 맡는 연구과제는 3년 미만이다.

  사전학센터, 디지털인문학센터, 해외한국학자료센터, 만주학센터 등이 연구센터에 속하며 유서지식지도연구실, 사전편찬정보DB구축팀, 근대역사지도편찬실, 한국문화연구실이 현재 연구과제팀으로 운영 중이다. 기획연구팀은 연구과제팀이나 연구센터로 이전될 새로운 연구 과제를 발제하기 위해 비공식적인 조사나 검토를 진행하는 모임이다.

사전류 〈중한사전〉
사전류 〈중한사전〉

 

  민연을 이루는 큰 축, 출판

  출판물을 통해 재정 상황을 호전시켰을 만큼 민연의 주요 사업은 출판이다. 민연은 1960년 출간한 <한국고전국역총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약 400권의 책을 펴냈다. 2005년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 선정된 정기간행물 <민족문화연구>1964년 이래로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대표적인 한국문화 연구 전문학술지로서 권위를 쌓았다. 한국관 신축에 기여한 <중한사전>의 경우엔 1979년 민연에 설치된 중한대사전편찬실에서 쓰여 1989년 첫 출간된 이후 수차례의 개정을 거쳐 다시 발행됐다. 민족문화연구원 연구지원부 소속 소순규 교수는 “<중한사전>은 오늘날에 포털사이트에서 중국어사전 컨텐츠로도 이용되며 명실상부 국내 최고의 중국어 사전으로서 입지를 다졌다고 말했다. 과거에 비해 한국어를 배우려는 중국인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민연은 수십 년간 쌓아온 중국어 관련 콘텐츠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한중학습사전>을 출판할 예정이다.

  한국 전통문화의 부문별 특수사 연구를 위해 쓰인 <한국문화사대계>는 국가사, 경제사, 기술사, 예술사, 문학사, 철학사를 총망라한다. <한국문화사대계>는 고대부터 개항까지의 한국의 문화에 대한 최초의 분류사적 연구라는 점에서 성과를 인정받아 오늘날까지도 연구에 이용되고 있다. 한국민족운동사를 집필한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조지훈 소장을 비롯해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70여 명의 연구자가 모여 1963년 간행에 착수해 9년 후인 1972년 완성했다. 711책으로 구성됐으며 1406, 903개의 도표와 이미지를 담고 있어 한국학 연구의 기초가 제대로 닦이지 않은 시절, 한국학 연구의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기간행물 〈민족문화연구〉
정기간행물 〈민족문화연구〉

 

  오늘날의 민연-한국학의 세계화와 공공성 강화

  민연은 1997년 연구원으로 확대 개편된 이후 자료의 전산화와 한국학의 국제화에 초점을 맞춰왔다. 2000년대에 접어들며 인문학적 전통의 토대 위에서 정보처리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사업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중 물결 21’ 사업은 HK사업 한국문화의 동역학사업단의 세부연구팀의 사업 중 하나로 2007년부터 수행한 사업이다. ‘물결 21’은 신문 빅데이터를 통해 사회문화의 변화 동향을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매년 초,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4개의 신문사에서 지난해 신문 자료를 입수해서 이를 가공한 다음 언어자원 코퍼스로 구축하는 것이다. ‘텍스트의 집합을 뜻하는 코퍼스는 전산화돼 구축된 빅데이터로 사회 문화적 현상을 연구하는데 이용된다. 민족문화연구원 HK한국문화연구단 소속 이도길 교수는 종래의 한국학이 연구자의 직관적이고 미시적인 분석을 통한 연구 결과를 산출한 반면, 물결 21의 자료는 양적(big data)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긴 시간(long data) 동안 축적된 자료라며 기존의 인문학적 연구 방법론에 전산학을 접목해 객관적이고 거시적인 분석을 돕는다고 말했다.

  또한, 신문은 매체 특성상 날짜가 정확히 보존되며 당시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을 담기 때문에 코퍼스 연구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연도별 또는 시기별로 두드러지는 현상을 발견하거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한 신문을 통해 코퍼스로 구축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이 교수는 신문뿐 아니라 소설 텍스트나 잡지들도 시기별로 수집해 언어 자원화하면 연구가치가 높을 것이라며 연구 확장 계획에 대해 말했다.

  해외한국학자료센터(센터장=정우봉)의 사업 또한 민연이 내세우고 있는 대표 사업 중 하나다. 해외한국학자료센터는 한국학의 국제화를 위해 정보처리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곳이다. 현재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 유출된 한국고문헌의 수는 상당하다. 유출된 문화재를 국내로 들여오는 것이 시급하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태이기에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자료들의 원문 이미지를 확보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다.

  해외한국학자료센터는 해외로 유출된 한국고문헌 자료의 현황을 조사해 각 자료의 서지목록을 작성하며, 중요 자료의 경우 디지털 원문 이미지를 촬영하고 상세해제를 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문헌 중엔 초서체로 쓰여 읽기 어려운 부분을 읽기 쉬운 필체로 해석하는 것도 병행한다. 이렇게 이뤄낸 연구 결과물은 가공돼 국내외에 제공됨으로써 일반 대중이 해외 소장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국내에서 한국고문헌을 이용할 수 있다.

  해외한국학자료센터의 연구원들은 매년 적어도 한 차례씩 해외 현지조사를 실시한다. 철저하게 해외 한국고문헌 소장기관을 직접 방문해 실물조사를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이다.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소속 박영민 교수는 해외 한국고문헌 소장 기관에서는 대부분 한국고문헌 각 자료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해외 기관이 한국고문헌의 가치에 대해 재고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족문화연구원이 나아갈 길

  앞으로의 민족문화연구원은 전통적인 방식에서 한국학연구의 지속적 발전 학계와 시민사회에 학문성과 공유 한국학 연구영역과 국제적 위상 확장 한국학의 대중적 확산 북한학 분야 개척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중 민연은 열린 교육기관으로서 지식 나눔의 실천을 강조했다. 민연은 그간 서울시민대학, 미래시민학교란 이름으로 서울시, 성북구청 등과 연계해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김형찬 원장은 학계의 전문가들과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이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학문적 성과를 대중들에게 바로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교육 프로그램이 보다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선 정부나 지방자체단체들이 프로그램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이를 직접 수행하는 대학이나 연구소가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민연은 북한학 분야에 있어서도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남과 북의 의료용어에 대한 통일안을 마련하기 위해 <남북의료용어사전>의 편찬 준비가 그 중 하나다. 현재는 통일부, 의료계 등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구축 중이다. 김 원장은 민연의 공식명칭이 한국학연구소 또는 한국학연구원이 아니라 민족문화연구원인 것은 궁극적으로 북한의 문화, 역사, 철학 역시 연구 분야로 포용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이라며 최근 남과 북의 관계가 호전되고 있어 한국학 분야의 지평을 북한학까지 넓히고, 이에 대한 다양한 연구 기획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현수 기자 hotel@

사진김예진 기자 si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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