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사에서 아이돌을 응원하거나 생일을 축하하는 전광판을 흔히 볼 수 있다.
사진 | 한예빈 기자 lima@
시대의 변화에 따라 아이돌 팬들이 자신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사진 | 박진웅 기자 quebec@

 

  아이돌 가수의 음악이 가요계의 음악방송과 음원차트를 장악하고, 한 해 최고의 가수를 뽑는 가요 시상식도 아이돌 잔치가 된 지 오래다. 아이돌 가수와 그의 음악은 국내가요 시장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뻗어 나가고 있다. 10대의 비주류 문화에 머무르던 아이돌 문화를 이렇게 수면 위로 끌어올린 제일의 원동력으로는 한국 아이돌만의 독특한 팬덤 문화가 지목된다. 팬덤이란 특정한 인물이나 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 또는 문화현상 자체를 통칭하는 용어다. 지금의 거대한 아이돌 시장을 키워낸 팬덤 문화는 어떻게 발전해왔으며, 또 그들은 어떻게 아이돌을 소비하고 있을까.

 

  한국은 아이돌 왕국

  우리나라 가요계는 아이돌의 왕국이다. 국내음악시장에서 아이돌 음악이 차지하는 지분은 어마어마하다. 대한민국 공인 음악차트인 가온차트에 따르면, 2018년 앨범판매량 1~100위 가운데 단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이돌 또는 아이돌 출신 솔로 가수의 앨범이다. 음원 스트리밍 1~100위에서도 절반에 가까운 47건을 아이돌 가수의 음원이 차지했다. 지난 4포브스코리아가 선정한 ‘2019 파워셀러브리티 종합순위에 따르면, 최상위권인 1위부터 5위까지 모두 아이돌이 독식하며 방송·연예·SNS 등 다방면에서의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과거 소녀시대’, ‘카라(KARA)’ 등을 필두로 한국 가요계를 지배했던 아이돌은, 근래 방탄소년단(BTS)’, ‘트와이스(TWICE)’ 등의 부상을 통한 성공적인 세대교체로 여전히 아이돌 전성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K-POP은 우리나라의 문화콘텐츠를 선도하는 가장 대표적인 콘텐츠로써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파급력을 일으키고 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발표한 ‘2019 한류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서 ‘K-POP’은 해외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문화 중 전년도 1위였던 한식을 밀어내고 43.3%1위를 차지했다. 김정원(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대) 음악인류학 박사는 “K-POP에 대한 관심은 곧 한국이란 국가 전반에 대한 흥미와 호감으로 이어진다아이돌은 단순한 경제적 매출 이상으로 국가적 소프트파워에 기여하는 매우 중요한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2010년대 초반 이후 뜸하던 K-POP 열풍은 소셜미디어의 적극적 활용으로 다시 활력을 찾았다. 이는 해외시장을 겨냥하기 위해 직접 해외로 나가 외국어로 개사된 노래를 부르던 과거의 물리적 진출과는 다른 양상이다. 근래 세계무대에서 이례적인 성과를 이룩하고 있는 BTS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BTS는 유튜브,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한 다양한 콘텐츠 개발과 소통으로 인기를 확장했으며 4월 발표한 신곡 작은 것들을 위한 시는 유튜브 사상 최단시간 1억 조회수를 돌파하며 SNS상에서의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김정원 박사는 모바일 장치와 소셜미디어가 주된 소통수단인 젊은 층이 중시하는 건 콘텐츠의 상호성과 참여성이라며 자신들의 일상적 모습 또한 지속적으로 팬들과 공유하며 인간적 친밀함을 전달한 BTS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라 평했다.

 

  시장 따라 변화하는 팬덤

아이돌이 음악 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으며, 이들을 응원하는 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달라졌다. 과거 아이돌 팬덤은 빠순이’, ‘빠돌이와 같이 멸시적 호칭으로 불리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과거엔 주로 기성세대의 관점에서 음악적 담론과 팬 문화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기에 아이돌 팬덤은 청소년기의 일탈로 간주됐다근래에는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젊은 층들이 문화생활의 주체가 돼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며 원인을 분석했다. 이어 팬 문화가 성숙해지며 과거 문제가 됐던 사생(좋아하는 연예인의 일상생활까지 추적하는 극성팬)’, ‘팬클럽 간의 싸움등의 부정적 팬 문화가 거의 사라진 것도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팬덤(fandom)’의 구조 또한 변하고 있다. 실제로 2012년 방영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는 팬클럽의 각 지부장()들이 전화사서함을 통해 지침을 내리면 팬들이 일시에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생소한 광경이 묘사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아이돌비평 웹진 아이돌로지(IDOLOGY)’의 미묘 편집장은 과거 아이돌 팬덤은 대형 팬 카페를 중심으로 조직화돼 팬들 사이에도 수직적 위계관계가 존재했다현재는 통신기술의 발달로 정보공유가 용이해지고 사회가 개인화되며 팬덤이 상당히 파편화·지역화됐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BTS의 팬덤 아미(ARMY)’는 아시아·북남미·유럽 등 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영향력을 발휘하며 글로벌 팬덤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아이돌 가수에 열광하는 이유로는 판타지 충족의 측면이 지목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또래의 아이돌이 멋지게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또 그들이 인기를 얻어 성공하는 모습을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라며 아이돌을 나의 아바타처럼 인식해 열광적 지지와 성원을 보내는 것이라 분석했다. 팬들과 아이돌 사이의 특별한 감정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미묘 편집장은 음악적 취향에 따라 응원할 대상을 취사선택하는 서구적 팬-스타 관계와 달리, 한국에서의 아이돌과 팬의 관계는 인연으로 묶인 운명적 관계라는 인식이 강하다시간이나 취향과 상관없이 높은 충성도를 갖고 오랫동안 아이돌을 바라보게 하는 심리적 원동력이라고 언급했다.

 

  다양해진 아이돌 팬 문화

  좋아하는 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한 팬들의 활동 또한 시간이 지나며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음원 스트리밍의 약자인 스밍’, 특정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스트리밍을 해 음원 순위를 높이는 행위인 총공(총공격)’은 음원사이트의 영향력 증가로 등장한 대표적인 신종 아이돌 팬 문화다. ‘멜론(melon)’, ‘지니(genie)’ 등의 주요 음원사이트에 기록되는 음원 순위가 아이돌의 자존심처럼 인식되기 시작한 게 이유다. 일부 팬들은 스밍 횟수를 늘리려 스밍 목적의 유령 아이디를 개설하거나, 조직적인 총공을 진행하기 위해 단체 모임방을 만들고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해 배포하기도 한다.

  ‘아이돌 지하철 광고또한 새롭게 등장한 팬 문화의 사례다. 팬클럽에서 자체 모금을 통해 지하철 광고판에 자신들이 응원하는 아이돌을 응원하는 글과 사진을 게재하는 것이다. 스타를 불특정다수에게 홍보하고 공개적 지지를 표명하기 위한 방법으로, 돈을 모아 스타에게 직접적인 선물을 하던 과거의 조공문화가 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최근 서울지하철역사 내 광고판의 아이돌 광고건수는 2016542, 20171038, 20182008건으로 매년 두 배씩 급증하는 추세다.

  응원하는 아이돌의 명의로 선행을 하는 문화가 자리 잡기도 했다. 지난 4월 발생했던 강원도 산불피해 당시에는 남성그룹 워너원(WANNA ONE)’의 멤버 강다니엘의 팬들이 강다니엘명의로 총 12000만 원 상당의 기부금을 모아 화제를 모았으며, 이후 강다니엘도 팬들의 자발적 기부행렬에 화답해 3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또 지난 2월에는 BTS의 공식 팬클럽 아미가 멤버 제이홉의 생일을 기념해 ‘HOPE ON THE STOP HUNGER’라는 이름의 기아대책 캠페인을 진행해 국내외서 총 2000만 원 상당의 후원금을 모으기도 했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팬덤의 선행이 곧 응원하는 아이돌에 대한 사회적 호감으로 이어진다는 선순환 구조가 각인된 결과라며 아이돌의 이미지는 결국 팬들이 만들어나가는 것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팬덤의 양상이 맹목적인 열광에서 비판적 지지로 변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김정원 박사는 작금의 아이돌 팬덤이 과거와 달라진 점은 자신들의 팬심(fannishness)을 성찰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팬들의 사회의식도 높아져 스타를 무조건 신격화하지 않고 자신과 관계되는 사회구성원으로 보는 인식이 커졌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3월에는 버닝썬 사건등으로 물의를 산 인기 아이돌 빅뱅(BIGBANG)’의 멤버 승리에 대해 팬들이 지지를 철회하고 소속사에서의 퇴출을 요구하는 내용의 성명문을 발표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건강한 아이돌 소비 위한 노력 필요해

  일각에선 아이돌 팬덤 문화가 지나치게 상업화됐다는 지적도 있다. 당첨된 팬들만이 갈 수 있는 팬 싸인회의 추첨이 대표적이다. 구매한 앨범이 곧 응모권이기 때문에 당첨확률을 높이기 위한 앨범 대량구매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아이돌 팬 커뮤니티 회원 A 씨는 엑소(EXO)BTS 등 인기아이돌의 경우는 CD200장 이상 구매해도 당첨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응원하는 그룹이 잘 나가는 건 좋지만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동일한 앨범을 표지만 바꿔 여러 종 출시하거나 앨범 속 구성물을 랜덤으로 넣어 과소비를 유도하는 행위 또한 지나친 상술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팬심을 악용하는 불법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것 또한 문제다. 특히 암표매매는 간절한 팬심을 이용한 대표적 악덕 행위로 지적된다. 1월 있었던 워너원의 마지막 콘서트의 경우엔 중고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암표의 가격이 1000만 원대까지 올라가 문제가 되기도 했으며, 4월에는 아이돌 콘서트 암표를 판매하겠다고 피해자들을 속여 1300여만 원을 편취한 피의자가 검거되기도 했다. 개인이 아닌 아이돌 연예기획사가 위법행위를 자행하기도 한다. 지난달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YG엔터테인먼트,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등 4개 유명기획사가 온라인 굿즈 판매에 있어 소비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상품정보·청약철회 의무표시 등을 누락한 행위를 적발해 제재를 가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아이돌 소비문화를 위해서는 팬과 기획사 양쪽 모두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아이돌 기획사의 과도한 상술이나 아이돌에게 가해지는 지나친 노동은 브랜드 이미지에 역효과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팬들 또한 좋아하는 아이돌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소유해야 한다는 의무적 팬심에서 벗어나, 주체적 사고를 갖고 아이돌 문화를 소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글ㅣ박진웅 기자 quebec@

사진ㅣ 박진웅 · 한예빈 기자 press@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