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0,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장모 씨의 신상이 공개됐다.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이 개정된 이후 살인, 약취유인, 인신매매, 강간 등의 흉악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신상 공개가 가능해졌지만, 신상공개의 기준 및 정당성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여론이 이끈 피의자 신상공개

  원칙적으로 유죄판결을 받지 않은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근거해 금지된다. 하지만 2010년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가능하도록 특강법이 개정된 배경에는 2000년대 후반 연일 보도된 반인륜 범죄사건과 그에 따른 여론의 분노가 컸던데 기인한다. 2009년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보도 당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 알권리와 범죄 예방을 위해 흉악범죄 피의자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79.4%라는 압도적 비율로 집계됐다.

  당시 신상공개 관련 법령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주요 일간지에서는 이같은 여론에 힘입어 피의자 신분이었던 강호순의 사진을 신문에 보도하기도 했다. 이후 2010415일 특강법에 피의자의 얼굴 등 공개에 관한 법 조항이 신설되면서 피의자의 신상공개를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다. 천찬희 법률사무소 천찬희 변호사는 당시 흉악범죄가 연일 발생하자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높아졌고, 이를 의식한 국회가 법을 개정해 일부 흉악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피의자의 신상공개 여부는 특강법 제821항에 명시된 네 가지 요건을 기준으로 해당 피의자의 관할 지방경찰청에서 구성한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통해 결정된다. 신상공개심의위원회는 관할 지방경찰청 소속 경찰관 3, 외부위원 4인 등 7인으로 구성되며, 비공개 투표를 통해 과반수의 판단에 따라 신상공개를 결정한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 신상이 공개된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한강 몸통시신 사건의 피의자를 포함해 현재까지 20명이 넘는 피의자의 얼굴과 실명, 나이 등의 신상이 공개된 상황이다.

 

위헌 소지 고려해 엄격한 예외만 둬야

  국민여론과 함께 결정된 일부 흉악범의 신상공개는, 범죄예방효과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그 실효성과 공익성이 미약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장 양재규 변호사는 실제로 범죄자가 또 다른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을 때 수배 등으로 신상을 공개할 경우 범죄예방효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미 검거된 범죄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범죄예방에 있어 실익이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신상공개를 통해 국민의 감정적 반응이 거세지면 사법부의 독립된 판단을 가로막을 수 있고, 거세진 국민적 공분은 피의자의 가족 등에게 2차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도 있다. 하태훈(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범죄 사실만 보도해도 알권리는 충족되며,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되면 SNS로 정보가 빠르게 오가는 요즘 시대에는 피의자의 가족, 지인 등에까지 연좌제와 같은 폐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피의자 신상공개는 피의사실을 범죄수사에 관련된 자가 공판 청구 전에 공표해선 안된다는 피의사실공표죄와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다. 피의사실을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현재까지 해당 법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례는 없다. 장영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금까지 해당 법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건 검찰과 경찰의 잘못된 관행이며 처벌 조항이 있음에도 처벌하지 않는 것은 정상적이지 않다고 전했다.

  무엇보다도 현재 신상공개는 사법부의 판결이 내려지기 이전부터 피의자를 범죄자로 인식하게 해 헌법에 명시된 무죄 추정의 원칙을 거스르는 결과를 낳는다. 양재규 변호사는 원칙적으로 범죄 혐의가 있을 뿐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를 유죄인 것처럼 대하는 것은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범죄 피의자의 신상공개는 공개를 통해 추가 범죄 피해를 막을 수 있거나, 공인일 때 등 엄격한 예외에만 허용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장영수 교수는 공개를 통해 추가적인 범죄를 막을 수 있을 때, 피의자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공인일 때, 그리고 검경이 수사 끝에 증거를 확보해 공소가 제기된 이후에는 신상공개를 고민할 수 있다면서도 그 외의 경우는 원칙적으로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상공개를 한다고 할지라도 결정의 주체는 수사기관이 아닌 법원이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태훈 교수는 인신을 구속해 신체의 자유가 침해되는 체포구속도 영장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인격권을 침해하는 얼굴공개도 마찬가지로 사법부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기준 필요해

  신상공개 자체에 위헌적인 소지가 있어 특강법 제821항은 네 가지 요건을 법으로 규정하고, 이들 요건을 모두 갖춰야만 신상공개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네 가지 요건으로는 범행수단의 잔인성과 중대한 피해 발생 범죄 사실에 대한 충분한 근거 존재 알권리 보장과 재범방지 및 범죄 예방 청소년이 아닐 것이 있으며 2항에서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해선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네 가지 기준만으로 신상공개를 판단하기엔 기준의 명확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현재의 기준만으로는 신상공개로 인한 부작용까지 아우를 수 없어서다. 김서중(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피의자의 신상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보호돼야 한다현재의 법적 기준으로는 신상공개로 인한 부작용을 판단하기엔 부족하기 때문에 신상 공개에 따른 피해의 경중을 함께 따질 수 있는 기준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신상공개 요건이 보강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태훈 교수는 범죄 사실에 대한 근거의 충분성으로는 부족하며 고도의 개연성으로 높여야 피의자의 인권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하고 이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특강법 제822항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네 가지 기준만 가지고는 각 지방경찰청에서 구성되는 심의위원회에서 일관성 있는 판단을 내리기엔 어렵다는 비판이 일자 2016년 경찰은 특강법에 명시된 신상공개 요건을 구체화해 40여 개 항목의 세부 지침을 담은 체크리스트를 배포했다. 가령 근거의 충분성에 있어서는 범죄 혐의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가 진행된 이후인지 등을 세부 항목으로 정했다.

  하지만, 경찰청 내부 지침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법적 요건 자체를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천찬희 법률사무소 천찬희 변호사는 체크리스트는 법적인 지침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법률상으로 정하는 요건을 구체화해야 실효성 있는 신상공개가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흉악범죄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피의자 신상공개 요구가 빈발하고 있지만, 이를 위한 세밀한 법적 장치는 아직까지 미비한 상황이다.

 

이선우 기자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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