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사범대 교육학과) 교수는 긍정적 학습환경 마련을 위해 '재미있는 학교 만들기'를 강조했다.

 

  평범한 한국 학교의 평범한 교실, 선생님을 마주하고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멍한 표정으로 대답은 잘 하지만 머릿속에 수업 내용이 전달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뇌를 끄집어내 보고 싶은 심정이다.

  김성일 교수(사범대 교육학과)는 진짜 뇌를 끄집어내 본다. 김 교수는 한국의 학교 교실이 사례 속의 모습과 같다고 말한다. 학생의 뇌를 관찰해 언제 학습하는지, 어떻게 학습하는지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학교를 바꾸는 것이 김성일 교수 연구의 화두다. 

 

- 신경교육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뇌는 언제 어떻게 학습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뇌 영상 촬영 기술이 발달하면서 밖으로 드러나는 인간의 행동이나 말과 실제 뇌 반응의 차이를 포착할 수 있게 됐어요. 뇌 영상 촬영기술을 활용해 학습자의 뇌를 관찰하고 어떤 환경에서 뇌가 잘 학습하는지 찾는 것이 신경교육학의 주된 연구과제입니다. 더 나아가 학습자의 뇌에 긍정적인 학습환경을 제공하는 걸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죠.”

 

- 학교가 긍정적인 학습환경으로 바뀌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재미’죠. 재미가 곧 학습 동기이고 호기심이며 즐거움이에요. 학교는 친구와 재밌게 놀면서 자신의 흥미와 적성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곳이에요. 그런데 한국 학교는 군대,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학생들이 좋아할 내용도 수업을 통해 싫어하게 만들어요. 학습자의 인생과 전혀 상관없고, 선행학습으로 새롭지도 않은 내용을 무한반복하면 어떻게 재미있을 수가 있을까요? 게다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극심한 경쟁으로 인한 불안상태에서 재미를 느낄 수는 없죠” 

 

- 재미있는 학교,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지금 학교랑 반대로 하면 돼요. 우선 공부는 원래 어렵고 힘들게 하는 거라는 한국 학교의 ‘엄숙주의’부터 깨야죠. 앎은 즐거워야 하고 공부는 놀면서 자연스럽게 돼야죠. 초등학생들이 영어 수업은 좋아해요. 교과서를 만들 때부터 놀면서 공부할 수 있게 만들었거든요. 반대로 수학, 과학은 제일 싫어해요. 왜 배워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호기심을 차근차근 채워나갈 수 있는 재미있는 활동이 없거든요. 그러니 다들 수학 과학 없는 세상에서 살겠다고 문과로 와요. 재미있게 가르칠 수 없다면 교육과정에서 모두 빼야 해요.”

 

- ‘신나고 즐거운 고려대 부속 중학교 만들기(신즐고만)’프로젝트를 진행하셨습니다

“당시 교장 선생님께 ‘한국에서 제일 재밌는 학교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저 한 번 믿어주십시오.’라고 호기롭게 말하며 시작됐죠. 사범대 학생들과 같이 방과 후나 방학 중에 학생들에게 교과목을 가르쳤어요. 단 ‘무조건 재미있게 가르치자’가 원칙이었죠. 보통 학교와는 반대로 하려고 칠판이랑 책상까지 반대로 놨어요. 선생님도 한 명이 아니라 두세 명씩 들어오고 학생 이름도 다 기억해서 불러줬죠. 교과목을 가르칠 때는 항상 교과 내용과 놀이를 접목했어요.

우리 학교 동아리의 도움을 받아 중학생들이 정말 좋아하는 춤, 마술, 농구 등의 다양한 체험도 제공했어요. 프로젝트에서 배운 것을 축제에서 보여주기도 하니 학생들이 정말 좋아했어요.”

 

- 교수님께서 주장하시는 절대평가도 긍정적인 학습 환경 중 하나인가요

“그렇죠. 상대평가를 받는 학습자의 뇌를 찍어보면 긍정적인 피드백에도 불안해해요. 다음에도 좋은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죠. 인간의 기본적인 동기는 기쁨의 추구예요. 불안과 부담을 극복하기 위해 동기가 생기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상대평가는 결국 뇌 영상에서 나타난 부담, 불안 같은 혐오 자극을 통해 인간을 길들이는 방법입니다. 동물을 훈련 시킬 때처럼요. 배움을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려면 상대평가를 해선 안 돼요. 

특히 청소년기에는 절대평가가 꼭 필요해요. 그 시기는 주변의 친구, 또래 집단을 통해 성장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또래 사이에 우열감이 자리 잡으면 주변의 장점을 제대로 배울 수 없어요. 서로를 깊이 알아가기도 전에 성적으로 미리 판단하거든요.”

 

- 학습자의 뇌 발달에 맞는 학제 개편의 필요성을 역설하셨는데요

“데이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아 6-3-3-4의 학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뇌 발달에 맞는 교육과정과 학습환경 설계는 분명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신체적 변화와 함께 심리적으로 매우 복잡한 상태에요. 게다가 교수-학습 방식이나 평가방식이 모두 달라지는 새로운 학습환경에 적응까지 하려면 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뇌 발달이 비교적 빠른 여학생의 경우 불안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납니다. 이를 줄이려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묶어서 운영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어요.” 

 

- 영유아 교육의 중요성도 강조하셨습니다

“영유아 시기는 뇌 발달에서 정말 중요해요. 이때 발달한 인지력, 언어능력, 공감능력, 자기 조절능력 등이 성인기까지 영향을 줍니다. 아동기 때 뇌 발달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받으면 성인기 교육을 위해 투자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투자로 더 큰 효과를 거둘 수가 있지요. 아동기의 뇌는 유연하기 때문에 다양한 사회적 정서적 경험을 학습할 수 있어요. 아동기에 친구들과의 놀이를 통해 공감능력을 기르고 만족을 지연시키는 자기조절 능력을 기르면, 성인기에 발생할 수 있는 범죄나 질병 등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에요.” 

 

- 한국 학생들,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인간은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며 살도록 설계되어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 미래의 쾌감을 목표라는 이름으로 설정하죠. 그렇지만 먼 훗날의 엄청난 기쁨(목표)을 위해 현재의 작은 만족을 포기하면 꿈을 오래 가지기가 어려워져요. 장기적인 목표와 연결된 단기적이고 사소한 목표를 많이 만들어 자주 행복을 느껴야 오래 가지요. 예를 들어, 세계 수준의 첼리스트는 좋은 목표지만 달성하기엔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요. 친구들 앞에서 공연하기 같이 작은 목표도 충분히 만족을 주니까요.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호기심이 많을수록 행복하다고 해요. 학교는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어야 해요. 호기심은 인지적 식욕이에요. 그런데 한국의 학교 교육 방식은 배고프지 않은 학생의 입을 억지로 벌려서 음식을 먹이는 것과 다름없어요. 학생들이 항상 배가 부른 느낌이니 알고 싶은 욕구가 생길 리 없어요.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게 없는데 어떻게 알아가는 재미와 즐거움을 느끼겠어요.” 

 

- N포세대로 불리는 청년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해요. 다른 사람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자율적인 개성보다는 모두가 인정할만한 획일화된 가치를 따르게 마련이죠. 그 결과 제한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이로 인한 불만족과 갈등은 커져요. 획일화된 사회적 가치의 잣대로 남과 비교하지 않으려는 현명한 노력이 자기 가치를 높이는 삶이라 생각해요.” 

 

글│김보성 기자 greentea@

사진│배수빈 기자 sub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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