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을 공개한 사진(좌)과 얼굴을 가린 사진(우). 언론 초상권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언론매체에서 모자이크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과한 모자이크 처리는 기사의 주목도를 떨어뜨린다.
얼굴을 공개한 사진(좌)과 얼굴을 가린 사진(우). 언론 초상권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며 언론매체에서 모자이크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과한 모자이크 처리는 기사의 주목도를 떨어뜨린다.

  인간은 누구나 개인의 인격권을 헌법상 핵심적 권리로 보장받는다. 누군가에게 촬영되거나 공표되지 않을 권리인 초상권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현장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의 자유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최근 언론보도환경이 디지털화되면서 사진 및 영상을 통한 보도가 증가하자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상권 피해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헌법으로 보장되는 초상권

  초상권은 사람이 자신의 초상 및 신체적 특징에 대해 갖는 인격적, 재산적 이익을 의미한다. 초상이라는 표현에서 얼굴을 먼저 떠올리지만, 얼굴 외에도 사회통념상 특정인임을 식별할 수 있는 신체적 특징이라면 모두 초상에 포함된다. MBC 기자 출신으로 초상권-보도되는 자의 권리, 보도하는 자의 윤리를 저술한 류종현 박사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이나 뒷모습, 옆모습,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캐리커처도 초상권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명문상의 규정은 없지만, 초상권은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헌법 제10조로 보장된 기본권이다. 장영수(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초상권의 법적 근거를 두고 다양한 학설이 존재하지만, 헌법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경시하면 안 된다고 명시한 것처럼 초상권은 헌법상으로 중요하게 보호해야 할 권리라고 말했다.

  이러한 헌법 가치에 따라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52항에서는 언론 등이 타인의 초상권을 비롯한 인격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 보도에 의해 초상권이 침해될 경우, 위 법에 의해 민사상 불법행위의 구성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엄격한 잣대’ vs ‘구체적 사례에 근거한 판단

  초상권은 촬영작성거절권, 공표거절권, 초상영리권으로 구성된다. 촬영작성거절권은 특정인을 식별할 수 있는 초상 및 신체적 특징이 함부로 촬영, 작성되지 않을 권리이고, 공표거절권은 촬영된 사진 또는 작성된 초상이 함부로 공표, 복제되지 않을 권리다. 초상영리권은 초상이 함부로 영리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권리를 의미한다.

  언론보도에서 초상권 침해는 주로 초상 본인의 동의 없이 촬영해 공표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Newsweek)가 과소비, 배금주의 풍조를 비판하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돈의 노예란 부제를 단 이화여대 학생들 사진을 그들의 동의 없이 무단 수록해 초상권 침해 및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 판결(서울민사지법 1993. 7. 8. 선고, 92가단57989. 판결)을 받은 것을 들 수 있다. 또 촬영작성거절권에 근거할 때, 비록 공표되지는 않았을지라도 무단 촬영한 사실만으로도 초상권 침해가 성립될 수 있다.

  언론에서 보도 내용에 따라 관련자의 사진 및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에 언론중재법에서는 인격권 침해가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한도에서 초상 당사자의 동의를 받거나 언론의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때 초상권 침해에 대한 언론의 책임을 면책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계에선 실제 판결에 있어 동의, 공공성의 면책 사유가 과도하게 엄격하게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동의의 경우 초상 당사자에게 말, 글 등으로 동의를 구하는 명시적 동의와 행동과 같은 묵시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묵시적 동의를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보도 과정에서 명시적 동의를 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생생한 보도를 막을 여지가 있다. 일간지 사진기자로 활동하는 박모 기자는 명절 때처럼 수만 명의 인파를 촬영해야 하는 경우 모든 사람에게 하나하나 동의를 구하면서 사진을 찍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동의를 먼저 구하고 찍게 되면 카메라를 의식하게 돼 보도사진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가능성이 높은 장소나 공공장소에서 찍힌 사진의 경우 묵시적 동의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지만, 법원에서 묵시적 동의 또한 엄격하게 인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실제로 법원은 원고가 외주제작사 소속 PD와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카메라로 촬영되고 있음을 알고도 인터뷰에 응했다는 것으로는 원고가 초상의 사용 등을 묵시적으로 동의했다고 보기엔 어렵다고 판단하기도 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06.11.9. 선고 2005가합18444 판결)

  이렇게 동의에 따른 면책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됨에 따라 일부 언론인들은 현재 법원의 판결이 언론의 자유보다는 초상권에 무게를 더 두는 것 같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이는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자의에 의한 판단이라고 반박한다. 장영수 교수는 언론사는 법원이 피해자의 편만 든다고 볼 수 있지만, 피해자는 그 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법원에서는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례 하나하나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언론중재위원회 대전사무소장 양재규 변호사는 언론이 말하는 생생한 보도도 공익이 아닌 언론의 상업성 때문에 필요한 것은 아닌지 고려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에 부합한다면 초상권 면책 가능해

  현행법은 언론 보도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경우 초상권 침해를 면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법원은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사건에서 피해자가 공적인 존재인지 사적인 존재인지, 그 보도가 공적인 관심 사안인지, 사적 관심 사안인지 등에 따라 공적 존재에 대한 공적 사안과 사적 사안 간에는 심사기준을 다르게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고위 공직자, 공적 인물 등 공인의 보도에 있어서 정부 또는 국가기관의 정책결정이나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선 그 감시와 비판을 주된 임무로 하는 언론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 ‘공직자의 자질·도덕성·청렴성에 관한 사실은 공무 집행과 연관 없는 사생활 등의 사적 사안일지라도 순수한 사생활의 영역은 아니라고 봤다.

  다만, 공인의 가족관계, 혼인, 이혼과 같은 공인이라도 포기할 수 없는 내밀한 사적 영역에 대해선 언론이 보도해야 하는 공중의 정당한 관심사가 아니라고 봤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박아란 연구원은 공인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사적 영역이 존재한다면서도 정치인의 경우 혼외자 등의 경우가 완벽한 사적 영역에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처럼 칼로 자르듯 구분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자발적 기준 마련과 인권 교육 시행해야

  개인의 초상권과 언론의 자유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법원은 구체적 사안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의 원칙을 세워 침해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이익, 즉 공익과 침해되는 이익을 비교해 더 큰 쪽의 편을 들어주고 있다. 이때는 법익이 충돌하는 상황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정과 실제로 법익이 충돌하는 상황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초상권 침해의 경우에는 보도되는 사안의 공익성뿐만 아니라 초상 공표의 공익성도 갖춰져야 한다. 류종현 박사는 언론의 자유와 초상권이 충돌할 경우 더 큰 공익을 지향하는 것이 이익형량의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헌법적으로 동등한 기본권인 초상권과 언론의 자유를 형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양재규 변호사는 기본권이 정량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형량한다는 것이 그럴듯해 보일 수 있지만, 의미 없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두 권리를 저울질하기보다는 합리적으로 조화시켜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장영수 교수는 헌법의 핵심적인 권리인 기본권의 상하 관계를 따지기는 힘들기 때문에 허위인지 진실인지, 음해의 목적인지 공익의 목적인지 등을 바탕으로 최대한 두 권리가 동시에 보장되도록 합리적인 조화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언론인 스스로 초상권 보호를 위한 기준을 정하고 지켜나갈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한국영상기자협회에서는 201811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을 제작했다. 한원상 영상기자협회장은 초상권 침해와 같은 인권 침해를 규정한 기존 가이드라인이 오래됐거나 사문화된 경우가 많았다특히 영상보도에 있어서는 가이드라인이 없었기에 기자들 스스로 초상권과 같은 인권을 보호하자는 의식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게 됐다고 전했다.

  언론인들의 자발적인 기준 마련과 더불어, 교육기관에서 보도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기초적인 내용을 미리 고민하도록 이끌 필요도 있다. 한원상 회장은 각 대학의 신문방송학과와 같은 교육기관에서는 인격권과 같이 언론 보도에 있어서 놓쳐선 안 되는 주요한 권리들에 대한 교육이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선우 기자 echo@

사진이수빈 기자 suvv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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