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일, 낙죽장, 궁시장, 채상장, 백동연죽장처음 들어보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들은 모두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을 위해 국가적 차원으로 보호받고 있는 국가무형문화재다. 문화재청에서는 1962년 이래로 무형문화재 144개 종목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지만, 30개가 넘는 종목들이 명맥을 잇기 어려울 정도로 전승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체 종목 중 24%는 전승 취약 종목

 처음 국가적 차원의 무형문화재 보호가 시작된 것은 1962문화재보호법제정 이후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무형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따라 지정제도가 처음 도입됐다. 55년이 넘는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적 차원의 무형문화재 보호와 관리가 이어지고 있지만, 다음 세대로의 전승은 보유자의 고령화, 대중적 관심의 퇴색으로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가무형문화재 전 종목에서 고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고, 전통문화에 대한 수요 감소가 젊은층의 유입 감소로 이어져 고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심각성에 문화재청은 2008년부터 3년에 한 번씩 국가무형문화재 중 일부 종목을 전승취약종목으로 지정해 추가로 지원하고 있다. 2017년 전승취약종목으로 지정된 종목은 줄타기, 발탈 등 예능분야 5개 종목, 탕건장, 매듭장 등 기능분야 30개 종목으로 총 35개다. 이 중 전승여건 및 생활환경의 변화로 소멸 위험이 높아진 가사, 줄타기, 발탈 3개 종목은 국가긴급보호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취약종목의 대다수는 공예 종목으로, 과거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했지만 현재는 쓰임이 거의 없어 수요가 극도로 줄어든 전통 공예 종목들이다. 갓일(국가무형문화재 제4) 정춘모 보유자는 젊은 시절 갓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는 노년층을 중심으로 수요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사라진 상황이라고 전했다.

 전승취약종목 중에는 보유자가 사망해 종목만 남아있는 분야도 존재한다. 베틀의 한 부분인 바디를 제작하는 바디장, 그림에 종이, 비단을 붙여 족자와 병풍을 만드는 배첩장은 보유자의 사망으로 보유자 없는 종목으로 남아있다. 전경욱(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시대의 유행을 따르는 건 어느 시대에나 있는 일이지만, 무형유산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거의 없다시피 한 현 상황은 무형문화재 전승에 위기가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우려했다.

 

전수자로 나서기엔 높은 현실의 장벽

 하지만 전수자로 나서기엔 현실이 녹록지 않다. 명맥을 이어가겠다는 단단한 각오뿐만 아니라 높은 현실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각 무형문화재 종목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하나의 무형문화재를 완벽히 익히기까지 수십 년, 더 나아가 평생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국가긴급보호무형문화재인 발탈(국가무형문화재 제79) 황지영 이수자는 발탈에서 행해지는 모든 노래와 춤, 대사를 그저 외우고 풀어내는 게 아닌, 나 자신이 하나의 작품이 돼야한다는 각오로 시작해야 하기에 전수자들이 배울 엄두를 쉽게 못 낸다고 전했다.

 학교 교육을 받는 학생의 경우, 전수 교육이 입시 위주의 교육환경과 배치되기에 전수를 이어나가기 더욱 어렵다. 줄타기(국가무형문화재 제58)는 종목 특성상 신체가 성장하기 전인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시작해야 줄타기에 적합한 신체 조건이 갖춰질 수 있지만, 전수 교육 도중 입시에 맞춰 다른 진로를 찾아 떠나는 학생들이 많다. 줄타기 김대균 보유자는 물론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가지는 건 좋지만, 입시 때문에 줄타기를 포기하는 모습은 선생으로서 아쉬운 일이라고 전했다.

 이는 무형문화재의 일반적인 전승 방식이었던 도제식 전승이 현대적 교육제도와 충돌하는 현상과도 연결된다. 과거 도제식 전승 구조에선 스승의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며 스승의 기술뿐 아니라 정신까지 배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학교 교육이 정착한 현시점에는 그 둘을 병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재청 산하 무형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유영대(글로벌대 글로벌학부) 교수는 예전에는 스승의 심부름, 빨래까지 도맡아 하며 스승의 몸짓 하나하나를 배우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요즘같이 학교 교육이 익숙해진 시대엔 어려운 일이라 지적했다.

 그럼에도 무형문화재의 특성상 전승 과정이 장기간에 걸쳐 세밀하게 진행돼야 하므로 도제식 전승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 무형문화재는 사람 대 사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소수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도제식 전승 방식을 따르는 것이 무형문화재의 본질, 즉 전형(典型)을 보존하기에 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전경욱 교수는 강강술래나 탈춤 같은 단체 종목이 아닌 개인 종목의 경우엔 도제식 전승 같은 섬세한 방식이 효율적이라 말했다.

 따라서 도제식 전승의 장점을 포괄할 제도적 교육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도제식 전승 구조에서 짚을 수 있는 섬세한 영역까지 정규 교육에서 지도하도록 시스템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영대 교수는 지금도 문화재청과 협약을 거친 일부 대학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통한 무형문화재 전승을 시도하고 있다아직까지는 입대, 휴학 등으로 인한 중도 포기 사례가 잦아 제도적으로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수자 되고 싶어도 생계가 발목 잡아

 수많은 고민 끝에 전수자가 되기로 결정해도, 닥쳐오는 생계의 불안은 전수자의 발목을 잡는 가장 큰 요인이다. 그나마 공연 등의 수요가 있는 종목들은 수입을 창출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인지도가 낮거나 현실적인 활용도가 없는 종목의 경우 생계도 꾸리기 어렵다. 발탈 황지영 이수자는 발탈 공연으로 생계를 이어가기엔 아직 공연이나 교육 프로그램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중도 포기자도 많다고 전했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보유자, 전수교육조교 등 전승자를 대상으로 각각 월 135만 원, 68만 원의 전승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취약종목의 경우 달마다 이들에게 일정 수준의 추가 지원금을 주지만, 이들 지원금을 다 합치더라도 정상적인 생계 유지에는 훨씬 못 미친다. 갓일 정춘모 보유자는 지금 문화재청은 무형문화재의 보호를 개인의 희생에 맡기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원금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문화재청은 예산 증액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예산에 한도가 있기에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전승 지원을 강화하지 않으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무형문화재의 소멸을 지켜보게 될 거라고 경고한다. 유영대 교수는 지금처럼 조금씩 증액하는 건 큰 효과가 없고, 지원을 대폭 늘려야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전체 예산에서도 무형문화재 전승에 들이는 예산은 유형문화재와 비교할 때 굉장히 열악한 수준이다. 문화재청이 발표한 2020년도 예산·기금 정부안에 따르면 무형문화재 보호에 쓰이는 예산은 488억 원으로 올해 예산에 비해 86억 원 증액됐지만, 여전히 유형문화재 예산에 비해 열악한 상황이다. 유영대 교수는 유형문화재에 비해 무형문화재 지원이 미비했다지금 예산 확대 등의 노력을 통해 보호하지 않으면 무형문화재 소멸은 시간문제라고 강조했다.

 

현실적 제도 개선과 함께 대중화 고민해야

 현행 무형문화재 전승 방식 및 지원 제도에서 나타나는 현실과의 괴리는 처음 무형문화재 보호와 전승 지원이 도입된 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나 전승 환경이 변화한 것에 기인한다. 문화재보호법을 통해 단절될 위험이 농후했던 무형문화재들이 지금까지 보호된 것은 사실이지만, 급격한 현대화와 전통문화의 소외에 따라 새로운 제도적 틀이 요구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도 취약종목을 비롯해 자생력이 부족한 무형문화재 종목의 지원을 차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악과 같이 예술대학에서 활발히 전승돼 자생력이 있는 종목들의 지원은 줄이고, 전승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종목의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대(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전승이 활성화된 종목은 지원을 해제하고, 활성화되지 못한 종목에 집중적인 지원과 육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취약 종목에 대한 집중적 지원뿐만 아니라 종목의 성격에 맞는 지원 방식의 다각화도 필요하다. 예능 종목의 경우엔 공연 비용 지원 확대를, 기능 종목의 경우 전시와 판로 개척 등 각 종목의 전승 활성화에 필요한 맞춤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예를 들어 줄타기의 경우 줄을 타는 줄광대 외에도 상대역인 어릿광대, 삼현육각 악사가 함께해야 완전한 줄타기라고 할 수 있지만, 현 상황에서는 줄광대에 한정해서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줄타기 김대균 보유자는 공연 참여자 외에도 무대장치 용달과 설비에 필요한 인력들이 많이 필요하다줄타기를 구성하는 많은 구성원의 지원까지 고려해야 줄타기의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무형문화재의 전승을 활성화하는 데 있어 제일 근본적인 해결책은 대중적 관심의 부활이다. 뮤지컬, 팝송, 아이돌 등 새로운 문화가 연일 유입되는 상황에서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존재조차 희미해진 무형문화재에 대한 공연, 전시, 교육 등의 기회가 대대적으로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일환으로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오는 1011일부터 13일까지 ‘2019 대한민국 무형문화재 대전을 통해 기·예능 종목을 아우르는 다양한 무형문화재 공연 및 전시 행사를 열 예정이다.

 무엇보다도 무형문화재의 대중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 교육이 지금과 같은 정보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닌 체험을 통한 실질적 교육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 문화재청은 기존의 전수교육관에서 일반인 대상의 교육을 확대하고 자유학기제를 통한 정규 교육과정과 연계하는 문화재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다. 전경욱 교수는 ··고 뿐만 아니라 대학에서도 교양과목을 통한 체험 위주의 무형문화재 교육이 필요하다무형문화재의 소멸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하기 전에 교육 등을 통한 대중화 노력이 전폭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보유자(보유단체)

국가무형문화재의 기능·예능을 전형대로 체득·실현할 수 있는 사람 또는 단체

■ 전수교육조교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의 전수교육을 보조하는 사람

■ 이수자

전수교육과정을 수료한 사람 중에서 기량을 심사하여 전수교육 이수증을 받은 사람

글 | 이선우 기자 echo@

사진 | 양가위 기자 flee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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