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교 기록자료실은 교사(校史) 관련 기록물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와 교내 구성원들의 협조를 바탕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기록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에서는 국가적으로 영구히 보존해야 할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민간기록물을 국가지정기록물로 지정해 보존을 돕고 있는데, 본교 기록자료실에서는 이중 국가지정 기록물 1호와 2호에 지정된 기록물을 보관하고 있다. 두 기록물은 해방 이후 격랑을 겪어왔던 대한민국의 탄생 과정에 관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국가지정기록물 제1- ‘유진오 제헌헌법 초고

  19485, 해방 이후 갖가지 내홍 끝에 단독 총선거가 치러졌고 제헌국회가 구성됐다. 당시 헌법학자이자, 남조선과도정부의 조선법전편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현민 유진오 전 총장은 1947년 가을부터 헌법 초안을 작업하기 시작해 1회 초고라는 제목의 제헌헌법 초고를 제출했다.

  제헌국회의 심의과정에서 유 전 총장의 헌법 초안은 약간의 변경이 있었으나 대부분의 내용이 통과돼 제헌헌법의 골격을 이루게 됐다. 200자 원고지 70여 장 분량으로 된 헌법 초안은 헌법전문과 함께 총강, 인민의 기본적 권리와 의무, 국회, 정부, 보칙 등으로 구성돼 있다.

  유진오 전 총장이 남긴 기록물은 그의 사후에도 공개되지 않다가, 199912월 유 전 총장의 부인 이용재 여사가 본교 박물관에 기증하면서 그 내용이 처음 알려지게 됐다. 제헌국회가 제정한 제헌헌법 원본이 사라지고 필사본만 남아있는 상태에서, 이 여사가 서류 봉투에 담아 집에서 보관해 왔다고 알려진 유진오 전 총장의 제헌헌법 초안은 대한민국의 헌법사 연구에서 매우 특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국가지정기록물 제2- ‘안재홍 미군정 민정장관 문서

  민세 안재홍 선생은 조선어학회 등의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렀던 민족주의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다. 해방 이후 우익 계열의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안재홍은, 19472월 미군정의 민정장관에 임명돼 한국인 최고행정책임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비록 실권은 미군정이 쥐고 있었지만, 안재홍은 민정장관으로 활동하면서 미군정으로부터 행정권을 이양받아 자치정부를 수립하고 이후 조선의 독립국가 건설에 대비하려는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미소 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이 가시화되는 시기, 안재홍의 바람은 실현되지 못했다. 안재홍은 이후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지만 6·25전쟁 당시 납북됐다.

  안재홍의 기록물들은 그의 맏아들이자 보성전문학교 상과 30회 졸업생인 안정용 씨와 손자 안영찬 씨에 의해 20035월 본교 박물관에 총 295건이 기증됐다. 그중 안재홍이 민정장관으로 활동하며 남긴 90건가량의 문서는 안재홍이 가졌던 정치적 이상과 활동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며, 국내에 거의 남아있지 않은 미군정기 관련 문서 기록물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이정환기자 ecrit@

사진제공 | 본교 기록자료실

자료제공 | 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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