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 대면소통 어려워해

먹방·관찰예능도 감정대행 일부

감정대행 어디까지 확장될까

 

  “제발 제 아내를 유혹해주세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서 주인공 두현은 아내와 이혼하기를 원한다. 이에 이웃집 카사노바 성기에게 아내 정인을 유혹해달라고 부탁한다. 이혼을 전하기 미안하니 아내가 바람나게 해달란 주인공의 부탁이 더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별대행서비스 업체를 찾으면 누구나 두현이 될 수 있다.

  면대면 의사소통을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껄끄러운 감정은 대신 떠맡아주고, 즐거운 감정은 대리만족시켜주는 감정대행서비스가 등장했다. 퇴직대행, 이별대행, 사과대행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면대면힘들어, 감정대행 찾는 Z세대

  현대인이 대면소통을 힘들어하는 이유는 의사소통 환경이 변해서다. Z세대는 오프라인상에서 소통하지 않아도 온라인 메신저, 배달 애플리케이션 등 다양한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간다. 대화는 카카오톡’, 배달은 배달의 민족’, 카페에서는 무인주문기인 키오스크를 쓰는 게 더 편하다. 대면소통을 피할 창구가 많아진 것이다. 이유미(중앙대 다빈치교양대학) 교수는 소통을 위해 선택한 매체의 속성은 인간의 성향에 영향을 미친다“Z세대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 때문에 직접 만나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감정대행서비스가 면대면 상황을 회피하려는 Z세대를 겨냥했다고 분석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나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다. Z세대는 감정대행 서비스를 통해 정서적 안정을 위협하는 행동을 타인이 대신하도록 떠넘기거나 타인의 경험에서 대리만족을 느낀다.

  현대인들이 감정대행서비스를 찾는 현상속에는 원하는 감정만 취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마음에 안 드는 구독자를 차단하고, 취향에 맞는 사람들만 팔로우할 수 있는 온라인 환경에서처럼 감정을 취사선택하기 위해 감정대행서비스를 활용하는 것이다. 마동훈(미디어학부) 교수는 대중매체를 통한 감정의 대리만족을 현실에서 개인 맞춤형 서비스로 구현해 제공한 게 감정대행서비스 인기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별대행 업체에 이별 상황을 가정해 문의를 해봤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를 재구성했다.
이별대행 업체에 이별 상황을 가정해 문의를 해봤다.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를 재구성했다.

·오프라인 가리지 않는 감정대행

  감정대행서비스 중 최근 주목받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퇴직대행이다. 퇴직대행서비스는 단순히 사직서를 대신 제출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퇴직 전 상담, 사무실 짐 정리, 밀린 임금 해결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금액은 30~50만 원 정도다. 오프라인 퇴직대행 서비스뿐 아니라 출근길 사직서’, ‘립서비스(Leave Service)’ 등 편안한 퇴직을 돕는 애플리케이션도 나왔다.

  이별을 고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이별대행서비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업체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이별을 맡기는 데 드는 돈은 5~15만원 선이었다. 카톡 이별은 5만원, 전화 이별은 10만원, 대면 이별은 최소 15만원이었고 상황에 따라 추가비용이 필요하기도 했다. A 대행업체 관계자는 원하는 역할과 상황을 말하면 연기자를 섭외한다최근 이별대행 상담을 받는 분들이 종종 있다고 말했다.

  감정대행은 오프라인에서 그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감정을 체험하는 것도 넓은 개념에서는 감정대행서비스의 일종이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을 보며 설렘을 느끼고 먹방을 보며 허기를 메우는 현상 역시 감정대행이라는 것이다. 마동훈 교수는 미디어를 통한 간접 체험은 광의의 감정대행서비스에 속한다전통적으로는 대리만족 체험이라고 불리던 것도 사실은 감정대행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부분의 시청자는 관찰예능, 먹방 등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로 대리만족을 꼽는다. 취업포털 커리어2018년 직장인 3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3.5%가 관찰예능에 긍정적인 반응(매우 선호한다 35%, 선호한다 58.5%)을 보였다. 응답자의 24.3%는 관찰예능을 좋아하는 이유로 시청자 입장에서 대리만족할 요소가 많아서라고 답했다. 평소 먹방을 자주 본다는 장기은(·22) 씨는 자기 전에 배고플 때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하는 편이라며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니 눈으로 먹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최은수(문과대 심리학과) 교수는 타인의 감정은 주변인에게 전이된다가까운 사람의 행복은 나를 분명히 행복하게 만들고 그 사람을 직접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까지 확산된다고 설명했다.

 

감정대행, 진정 행복에 도움될까

  수요는 분명 있지만, 감정대행서비스가 어느 정도까지 성행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뉜다. ‘출근길 사직서애플리케이션 개발자 최형선 씨는 감정 소모적인 일을 풀기 위해 대행을 찾고 그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하는 시대라며 사업 전망은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마동훈 교수는 현재의 대행서비스는 자극적으로 변질할 소지가 있어 곧 한계에 이를 것이라며 현 상태의 서비스가 하나의 산업이 되는데는 회의적이라고 분석했다.

  대행서비스가 확산할 경우 생기는 오프라인 업무상의 문제점도 있다. 국내 한 대기업 제조업체 인사팀 관계자에 따르면 비밀문서 파기 등 퇴직을 하더라도 꼭 본인이 직접 와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빠른 퇴직을 바란다면 퇴직대행서비스가 아니라 본인이 직접 오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감정대행 세태 속에서 관련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감정은 진정한 행복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성만(한동대 상담심리복지학부) 교수는 자신의 정서적 안정성을 위협하는 행동을 타인이 대신하도록 맡기는 것이 감정대행서비스라며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경험을 직접 겪어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위험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최은수 교수는 관찰하는 것보다 감정을 직접 경험할 때 더 행복하다사건이 갖는 의미, 내 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생각하면 대리만족으로 느끼는 행복의 강도는 당연히 약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보성·신혜빈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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