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을 양지로 만들겠다는 기세로 내리쬐는 햇볕에 지지 않으려는 듯, 샛노란 산수유가 곳곳에 흐드러져 폈다. 사람들의 입엔 마스크가 걸쳐 앉아 해사한 웃음을 가렸지만, 봄은 아랑곳하지 않고 찾아왔다. 산수유의 마을 전남 구례군은 지금 노란빛으로 물들어간다.

 

 농사를 짓는 구례군 주민들에겐 곳곳에 터진 노란빛도 남의 일이다. “3월에 콩 심고 깨 심으려면 준비해야지, 지금은 고춧대 박고 있는겨. 상황이 그래도 농사는 지어야지.” 농부인 김수권(62·) 씨가 덤덤하게 말했다. 그에게 오늘은 그저 일 년 농사를 시작하는 하루다. 오일장에 나선 채경배(·78) 씨도 마찬가지다. “인자 아무도 안 나왔으면 나도 안 나오는디 하루 장에 나와봉께 다 나와 있드만. 무섭긴 한디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냥 나왔어.” 그의 손엔 면 마스크가 들려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사는 마스크 고거는 순천 사는 우리 손주들 줬어.”

 

 푸릇한 기운이 생동하는 논밭과 장터를 지나 산수유사랑공원에 다다르면, 본격적인 노란빛이 시야를 채운다. 듬성듬성한 사람들 사이로 노란색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만개한 군락 사이, 사람들은 카메라를 세워두고 마스크만 살짝 내려 사진을 찍는다. 연인과 함께 나온 김민희(·26) 씨는 한철인 산수유를 이렇게 즐기는 게 아쉽다. “그래도 봄이니까, 나오니까 좋네요.” 물끄러미 꽃을 보던 양호순(52·) 씨는 마스크를 내리고 입을 열었다. “저는 뭐 여행가입니다. 봄에는 꽃 피는 철 따라서 다니고 그러죠. 오늘도 날이 풀렸잖아요.”

 

 어느새 다다른 지리산 끝자락, 산수유 사이로 화엄사가 보인다. 이맘때쯤이면 함께 모여 예불을 드리고 밥을 나눴을 불자들은 없지만, 무진 스님은 담담하다. “외부에서 오신 분들 없이 예불을 드리고 있죠. 절에서 음식을 나누지도 못하고, 작년이랑 다르긴 합니다.” 화엄사 각황전 처마 끝에는 홍매화 나무가 기대 있다. 온통 노란색인 구례군에 이곳은 새빨간 진홍빛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화엄사에서 택시기사 김복철(·64) 씨가 터미널로 가는 손님을 태웠다. 마스크를 쓰고, 손님에게 손 소독제를 권했다. 터미널 가는 길, 산수유 가로수에 노란 안개가 이어진다. “원래는 여기가 주차장인 양 차가 확 들어서고 그래야 되는디, 좀 줄긴 줄었어요. 관광버스는 안 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자가용 타고 올 사람들은 오더라고요. 봄이니까.” 택시가 멈춘 터미널. 오랜만의 나들이를 자랑하는 사람들의 휴대폰 화면은 전부 노란빛이다. 올해의 봄을 그렇게 들고 간다. 복잡스러운 맛은 빠졌지만. 구례군에도 조용히 봄이 왔다.

 

정용재 기자 ildo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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