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기준 국내 장애인 거주시설 수는 약 1520개소, 거주 인원은 3만 명이 넘는다.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에게는 거주 및 의료 복지서비스가 제공되지만, 사회와 분리된 채 대형시설 내부에서 24시간 통제를 따라야 한다. 장애인의 자유로운 삶을 지향하는 탈시설운동. 장애계와 전문가들은 이제 중앙정부 차원의 탈시설지원계획을 수립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인권문제에서 출발한 탈시설 운동

  국내 장애인 거주시설은 해방 후 설립된 전쟁고아 수용시설이 산업화 이후 장애인 시설로 전환하며 등장했다. 2020년 현재, 전체 장애인 복지정책 예산의 16%가 투입될 정도로 장애인 거주시설지원은 장애인 정책의 중심에 서 있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효율적인 방식으로 다수의 장애인에게 주거·의료 등 복지서비스를 제공하지만, 2000년대 초 미신고시설 양성화 정책' 집행과정에서 시설 내 고질적인 인권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당시 사회운동가로 장애인 거주시설 인권조사에 참여했던 박숙경(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1987년 강제노동·폭력 등이 자행된 형제복지원을 계기로 제기되기 시작한 대형시설 인권문제가 미신고시설 전수조사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강제노동·폭력·성폭행뿐 아니라 보호자에게 입소자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거나 입소자가 외부에 연락을 취하지 못하도록 필기구 소지를 금지하는 조항까지 있었다고 소개했다.

  장애인 탈시설 운동은 이러한 맥락에서 200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출발했다.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김정하 활동가는 “2000년대 초엔 장애인이 탈시설을 감행하더라도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지만, 투쟁을 거쳐 탈시설한 장애인에게 일대일 활동지원 인력을 제공하는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가 2007년 도입됐다현재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운영하고, 장애인에게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하는 형태까지 나아갔다고 말했다.

'좋시설은 없다

  일각에선 장애인이 시설 밖으로 나와 지역사회로 돌아가는 탈시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시설에서 제공하는 복지서비스가 장애인 생존권 보장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거대시설의 소규모화 인권 감시 장치 설치 개인 중시 공간으로의 변화 등 거주시설의 질을 향상해 시설 내 인권문제를 예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애계 역시 이전보다는 장애인 거주시설의 인권의식과 서비스 질이 향상됐다고 평가한다. 실제 보건복지부가 시설의 환경과 이용자의 권리 등을 기준으로 발표한 2019년도 사회복지시설 평가에 따르면, 국내 장애인 거주시설의 전반적인 수준은 B등급 이상이며, A등급과 B등급에 해당하는 시설은 656개소의 평가시설 중 78.8%517개소에 해당한다.

  하지만 장애계와 전문가들은 장애인 거주시설의 환경이 아니라 통제를 바탕으로 하는 거주시설 자체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변재원 정책국장은 탈시설은 더는 포악한 시설로부터 장애인을 구출하는 운동이 아니다라며 거주시설에서 장애인이 삶의 자유를 느낄 수 없는 것이 근본적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시설은 개인이 아닌 집단을 기본 단위로 운용해, 규율과 집단의 논리를 적용한다관리자가 상주하며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정해져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오랫동안 시설 생활을 한 장애인에게 자아존중감 저하와 무기력이 나타나는 시설병을 유발하는 것 역시 거주시설이 지니는 한계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순화 활동가는 시설은 인간의 기능이 무력해지는 구조라며 누구나 살면서 선택도 하고, 실패도 하며 자신의 인생을 만들어나가는데 모든 게 정해져 있는 시설에서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과정이 통제당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 거주시설의 형태는 복지서비스가 사회 일반의 흐름과 같아야 한다는 사회복지학의 정상화 이론과도 괴리가 있다. 이동석(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성인이 되면 대부분 자립해 6인 이하 가구가 95%를 차지하는 현대사회에서 집단의 논리 아래 생활하는 것은 장애인의 시설 의존 현상을 높이고, 무기력 등의 문제를 낳는다규율이 존재하는 시설을 소규모화한다는 주장은 시설을 영속화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진정한 의미의 탈시설은 단순히 시설 밖으로 나오는 것을 넘어 탈시설 당사자가 살고 싶은 지역사회를 스스로 선택해 자립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독립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복지서비스를 변화시키는 것이 현 탈시설 운동의 핵심인 것이다.

 

탈시설 걸림돌에 중앙정부 개입 필요해

  하지만 현 상황에서 진정한 의미의 탈시설이 이뤄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부양의무제(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와 기타 친족에게 부양의 의무를 우선하는 제도). 김명연(상지대 경찰법학법학과) 교수는 장애인 가족들이 부양능력이 없어 거주시설에 장애인 당사자를 입소시킨 경우가 태반인데, 그들에게 다시 부양의무를 지우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시설에 입소한 상태에서 장애인은 국가가 지원한 시설지원비를 통해 생활을 유지할 수 있지만, 시설을 벗어나면 부양자 재산조사가 이뤄진다. 탈시설 장애인이 실제 부양받지 못하는 상황이더라도 잠재적 부양자가 존재할 경우, 생활수급 대상자에서 탈락하게 된다.

  현재 부양의무제는 폐지 수순을 밟고 있지만, 탈시설한 장애인에게 실질적인 생활비를 지원하는 생활수급은 폐지대상에서 제외된 상태다. 김명연 교수는 국가의 복지 책임을 가족에게 넘기는 부양의무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섣불리 부양의무제를 전면적으로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염형국 변호사는 부양의무제는 당연히 개선돼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가가 장애인의 모든 삶을 보장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좋든 싫든 가족의 연결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향후 부양의무제 폐지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탈시설한 장애인들에게 주택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것도 문제다. 현 시스템상 탈시설 장애인은 주거 생활을 연습하는 자립주택·체험홈 등 중간단계 주택에서 일정 기간 머무르다 주거 약자에게 제공되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이전하게 된다. 중간단계 주택은 지자체가 제공한다. 김정하 활동가는 중간단계 주택 공급량이 매우 부족해, 오랜 시간 탈시설을 미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관할지역 시설 거주자에게만 중간단계 주택을 제공하는 것도 한계로 지적된다.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 조은별 사무국장은 강원도에서 탈시설한 경우, 서울 등 다른 지역의 중간단계 주택을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며 탈시설 당사자의 거주이전의 자유가 침해당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획일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의 문제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선 탈시설 장애인 주거서비스를 현재보다 다양한 형태로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동석 교수는 똑같은 형태의 공공임대주택을 제공한다고 해서 장애인 주거서비스가 완료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집관리서비스부터 건강보건서비스까지 제공하는 등 탈시설 당사자 필요에 맞는 주거서비스 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전문가들은 평등한 탈시설지원을 위해 중앙정부 차원의 탈시설지원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현 정부가 국정 100대 과제로 탈시설을 내세웠지만, 현재 탈시설 정책은 몇몇 지자체에서 독자적으로 수립·이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순화 활동가는 현재 중앙정부 차원의 체계화된 탈시설 계획과 개별맞춤형 서비스는 전무하다민간단체와 자립생활센터가 임의로 연계해 탈시설 지원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특히 지역별로 복지서비스 차이가 심한 국내 현실에서 중앙정부 차원의 계획은 더욱 요구된다. 박숙경 교수는 지방에서 서울의 복지시스템을 설명하면 유럽선진국 이야기를 듣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특정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탈시설 지원에 생기는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정부의 개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용재 기자 ildo114@

일러스트윤지수 기자 cho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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