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최우진 교수는 국방부검찰단 소속 군 검사였다. 당시 군무원의 비리 사건을 맡아 재판에 회부시켰다. 1심에서 유죄로 판결났지만, 뇌물 추징 과정에 재판부의 오판이 있었다. “양형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추징 금액에서 오판이 있어서 항소해야 했습니다.”

 피고인을 앉혀두고 상황을 설명했다. 일부 뇌물의 추징이 재판 과정에서 빠져서 항소해야 한다고. 피고인은 최 교수에게 항소를 포기하고 대신 그 돈을 가져라라고 답했다. “오해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화를 내며 내보냈지만 당황했죠.” 문제를 해결한 건 피고인 측 변호인이었다. 피고인의 행동이 잘못됐다 지적하며 상황을 정리했다.

 

최영홍 | 기억은 안 나지만, 내 스타일은 맞아요. 피고인이 잘못한다 싶으면 따끔하게 혼내기도 했죠.

 

마주 선 최영홍(왼쪽) 교수와 최우진 교수, 16년 만의 만남이다.
마주 선 최영홍(왼쪽) 교수와 최우진 교수, 16년 만의 만남이다.

 군 검사와 변호인으로 만났던 둘, 16년 후 본교 법학전문대학원의 신임교수와 퇴임교수로 재회했다. 학자로서의 서론과 결론에 놓인 그들이었지만, 극과 극의 대화가 사뭇 유쾌했다. 최영홍 교수가 관록 있는 목소리로 대화를 끌고 나가면, 최우진 교수는 사람 좋은 얼굴로 담백하게 답했다. 코로나19로 한적함이 가시지 않는 캠퍼스, 따뜻한 차 한 잔으로 시작한 그들의 담소에 몇 가지 질문을 보탰다.

 

- 캐모마일 차입니다. 눈을 맑게 해준대요. 온라인 강의 준비로 피로하실 것 같습니다

최우진 | 바빴습니다. 교수로서 첫 강의가 동영상 강의였어요. 학교 오면서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흘러가니까 당황하기도 했고, 강의 준비도 오래 걸려서 두세 배 정도 시간과 노력을 더 들여야 했지요.

 

 최우진 교수는 이번 학기 민사법종합연습과목을 맡았다. 로스쿨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판례와 학설 등을 바탕으로 민사 관련 사례를 분석하고 토론하는 강의다. 변호사시험 중 사례형 시험을 대비하기 위한 일종의 실전 과목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직접 토론하긴 어렵지만, 연구실로 학생을 부르거나 이메일로 문제풀이 답안을 받으며 피드백을 주고 있다.

 최영홍 교수는 상법 전공이다. 최 교수는 가맹사업(프랜차이즈) 분야 전문가다. 프랜차이즈라는 용어도 국내에 없던 시절, 관련 용어를 정립하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의 토대를 세웠다.

 

최영홍 | 가맹거래사 자격증을 따려면 제가 쓴 가맹계약론이라는 책을 공부해야 하는데, 2000년대 초반에 쓴 책을 아직도 공부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새 법이 많이 바뀌었는데, 여유있을 때 (책을) 어서 써야겠다고 생각 중입니다.

 

- 교수가 되기 전에는 두 분 모두 군 법무 관, 법관으로 종사하셨습니다

최영홍 | 14년 동안 군 법무관 일을 했습니다.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을 하던 전두환 정권 때도 보안사 대장들을 처벌하고 그랬습니다. 그게 일이니까 열심히 했는데, 결국엔 제가 가는 부대 사람들만 처벌받는 거예요. 나만 없었으면 처벌 안 받았을 텐데. 그래서 처벌보단 범죄 예방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교수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변호사 개업을 하고 서도요. 근데 공부할수록 체계만 잡으면 법은 쉬운데 왜 교수들은 이런 걸 설명 안 해줬을까, 내가 가르치면 법을 더 쉽게 가르칠 수 있을 텐데,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수 생활을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객기로, 오만으로 시작했습니다.

최우진 | 판사로 재판하다 보면, 개별 사안은 해결해도 다른 부분을 고민했을 때 풀리지 않는 지점이 있다는 걸 느껴요. 점점 그런 경험이 쌓이니까 방향을 바꿔서 법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깊이 공부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박사학위 논문인 손해배상산정에 관한 사실심법원의 재량: 재량의 규준 및 한계를 중심으로에도 최우진 교수가 법관으로서 느껴온 고민이 묻어나 있다. 민사소송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손해배상소송.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시행되며 범위가 확대되고 있지만 정작 배상 책임과 범위를 정하는 법원에선 명확한 기준 없이 재량대로 판단해왔다는 것이다.

 

최우진 | 나름의 고려할 요소는 법에 규정 돼있지만, 그것 자체도 추상적이고 배상금을 얼마나 산정할지는 사안마다 다르게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다 보니 법원의 판단이 자의적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습니다. 그 점을 앞으로 연구해보려고 합니다.

 

- 교수는 연구자이면서 가르치는 사람이 기도 합니다

최영홍 | 선생으로선 말 그대로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법학은 규범학문이잖아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기본 원리가 있고, 실천하고, 원리에 저촉될 때 처벌하고. 이때 법은 상황을 편리하게 하는 도구와 같아요. 근데 가끔 도구가 사람을 다치게도 하죠. 그래서 법학을 다루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그 정의의 원리를 인격에까지 담아내야 해요. 그걸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단순히 지식전달만 하려고 했으면 난 교수 안 했을 겁니다.

 

 강단에 처음 섰던 기억, 서강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최영홍 교수는 법과 생활이라는 대형 강의를 처음 맡았다. “그때 제일 성적이 뛰어나고, 성적이 많이 오른 두 사람에게 상금을 준다고 했어요. 나중에 그 두 사람이 주례를 서달라고 하더라고요. 건축학개론은 아니고 거의 법학개론이죠? 고려대에 와서도 지도학생들과 밥도 먹고 술도 마시고 친하게 지냈습니다.”

 

- 교수와 학생이 친밀하게 지내는 분위기가 요즘도 남아있나요

최영홍 | 그나마 고대는 남아있다고 하지 만, 로스쿨로 바뀌면서 많이 사라졌죠. 아무래도 변호사 자격을 따려는 사람이 모이는 직업학교니까, 시험에 안 나오는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돌리는 학생들도 생기기 시작했어요.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죠.

최우진 | 법학도 결국 실생활에 적용하는 학문이잖아요. 졸업하고 나면 바로 변호사로, 법률가로 활동해야 하는데, 시험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는 데만 치중하면 정작 나가서 책에 없는 문제를 접할 때 막막할 것 같아요. 틈틈이 세상이 돌아가는 일에도 관심 두고, 자기 생각도 가져보고. 이런 여유를 줄 수 있는 강의를 만들고 싶습니다.

 

- 연구자로서, 책에 나오지 않는 문제로 고민했던 적이 있으셨나요

최영홍 | 어려운 질문이라 답변에 자신이 없네요. 우리나라에서 프랜차이즈를 처음 공부해서 관련 법을 만드는 데 관여했는데, 문제는 그 법의 제정과정에서 내 의도와 다른 불순물들이 섞일 때가 많았다는 겁니다. 가령 가맹사업법에서 경제민주화 목적으로 기업에 과잉규제를 하는 게 아쉽죠. 내가 만든 법에 문제가 있다고 스스로 말해야 하니까요.

 민주화란 말만 들어보면, 약자도 돕고 정의로운 것 같죠. 하지만, 민주라는 말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거잖아요. 경제에서 국민과 가장 가까운 개념은 소비자예요. 골목상권 보호한다고 하면서, 마찬가지로 영세상인인 프랜차이즈 가맹점주에게 24시간 영업을 금지하면 결국 불리한 건 소비자입니다. 대기업 규제하면서 결국 소비자에게 불이익이 가는 정책을 쓰는 거예요. 물론 대기업이 탐욕을 부리거나 권한을 남용할 때는 분명히 규제해야죠. 정도와 방법의 문제예요. 경제의 효율성을 고려하지 못한,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정책 때문에 우리나라 기 업들의 활력이 많이 떨어졌어요.

 재벌은 무조건 악하고, 빈자는 무조건 선하다. 인간 정체성에 관한 규정부터 잘못됐어요. 강자와 약자, 그리고 선악의 논리는 구분돼야 해요. 하지만 정치적인 구호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죠. 이런 걸 생각하면 골치가 아파요.

 

머리가 아플 때면, 최영홍 교수는 법학관 신관 옥상에 마련된 동천동산에 올라갔다. “한쪽엔 시내가, 다른 쪽엔 산이 보여요. 사람 사는 모습과 자연의 모습이 같이 있죠. 아주 골치 아프고, 어렵고, 힘들 때 거기서 사색을 많이 했어요.”

 

최우진 | 그곳에서 아이디어도 많이 얻으셨겠네요.

최영홍 | 사실 교수는 닭장 속 1인 성주라서, 잘못하면 성격이 틀어질 수도 있어요. 우스갯소리로 벼룩 세 마리 몰고 가는 것보다 교수 한 사람 몰고 가는 게 힘들다고 하잖아요. 그만큼 주관이 뚜렷한데, 동천동산 같은 곳에서 세상을 멀리 보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겁니다.

 

- 최우진 교수님도 이제 고민 있을 때 동천 동산에 가보시면 좋겠네요

최우진 | 그래야죠. 제가 학교에 돌아온 건 대화할 사람을 찾기 위함이었어요. 학부 때부터였으니까, 어떻게 보면 인생의 거의 절반을 고대와 함께했죠. 내가 잘못한 것,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는 것, 이런 것들을 선후배, 교수님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화했던 기억. 그 분위기가 절 다시 고대에 오게 한 것 같아요.

최영홍 | 잘 왔어요. 저도 이성 말고 감성이 있다는 것을 고대 와서 알았어요. 인간이 꼭 논리고 이성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감성으로도 살 수 있구나. 나 혼자만 생각하지 않고 이제는 인격이 조금 전인격적으로 바뀌었다고 할까요?(웃음)

 저보다 더 교수 생활 잘하실 것 같습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로스쿨 교수님들 연구 열심히 하다 보면 건강 많이 상하더라고요. 아픈 분들도 많아요. 건강 유의하면서 앞으로 제자들 잘 이끌어주세요.

최우진 | 퇴직하셨지만, 말씀해주신 계획들 성사하시면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선배님으로 남아주세요. 학교에서 자주 뵀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글 | 이선우 취재부장 echo@

사진 | 양태은 기자 aur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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